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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피해 땐 대응 안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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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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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얼굴) 대통령은 8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 일본 수출규제 첫 언급 #일본에 조치 철회와 협의 촉구 #유명희 미국 보내 중재 요청키로 #한·일 정부 이르면 주중 첫 협의 #“민관 비상 대응체제 구축도 검토” #10일께 재계와 대화서 후속 논의 #일본 “한국 개선 없으면 철회 안해”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다만)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이후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대일(對日)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또한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의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며 “무역은 공동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서도 노력해 나가겠다”며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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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맞대응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예상보다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청와대에선 전날까지 “원론적 입장 정도만 낼 것”이라고 전했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번 사태에 대해 “상호 호혜적인 민간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보복적 성격’이라고 규정한 것의 연장선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가령 일본의 화산 위험 지대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역 일대를 여행경보 지역으로 지정한다 등의 보복 조치를 언급하면 맞대응이겠지만 그런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다”며 “주권 국가에서 국가 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문 대통령은 “상황의 진전에 따라선 민관이 함께하는 비상 대응 체제 구축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 간 소통을 통한 대책 마련도 주문했다. 중장기적 대책으로는 핵심 부품·소재·장비 국산화를 골자로 하는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을 언급했다. “예산·세제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겠다”며 “한·일 양국 간 무역 관계도 더 호혜적이고 균형 있게 발전시켜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 “맞대응의 악순환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의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 둘째부터 국가안보실 정의용 실장·김유근 1차장·김현종 2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국의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 둘째부터 국가안보실 정의용 실장·김유근 1차장·김현종 2차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초당적 협력도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경제력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는 경제 강대국이다. 여야 정치권과 국민들께서 힘을 모아주셔야 정부·기업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늘 세계적인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우리 신용등급을 중국이나 일본보다 두 단계 높은 Aa2의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발표를 했다”며 대외 경제 지표가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문 대통령 발언에 따른 후속 논의는 10일께 청와대에서 열리는 30대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보다 자세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을 자극하기보다는 내부 대책 마련에 집중하는 논의의 자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반일 감정을 조장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기업들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게 민관이 함께 협조하는 내용을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르면 이번 주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무역 갈등 관련 회의를 갖는다. 지난 1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한·일 정부 간 처음 이뤄지는 소통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해 한·일 간 갈등 중재를 요청키로 했다.

산업부는 8일 지난 2일과 3일 일본 경제산업성에 양자 협의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일본이 일단 ‘만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면서 구체적인 협의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다만 일본은 한국 정부와 만나더라도 수출규제 자체는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밝힌 상태다. 이번 협의가 무역 갈등을 풀 계기가 될지는 미지수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 철회와 협의를 요청한 데 대한 일본의 1차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 측의 개선이 보이지 않으면 철회에 응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NHK가 보도했다. 경제산업성은 NHK에 “한국 측은 일본에 수출규제 강화에 대해 문의했지만 양국 간 협의와 관련한 정식 요청은 하지 않았다”고 알렸다. 일본 정부는 또 다음달 중순께 대한 수출 규제 강화 대상 품목을 공작기계·탄소섬유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NHK는 전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한·일 간 대화와 합께 국제 공조로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는 전략도 동시에 펴고 있다. 미국에 파견되는 유명희 본부장은 미국 주요 통상 당국자와 만나 일본 수출규제의 국제법 위반 이유, 애플·퀄컴 등 미국 기업 피해 가능성 등을 설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세종=김도년, 서울=김상진·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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