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악재에 체력을 소진한 시장이 무너졌다. 미·중 무역갈등의 영향 등으로 국내 기업의 이익 전망치가 하락하는 가운데 한·일 무역갈등과 미국의 금리 인하 전망 약화 등의 부정적인 소식에 8일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외국인의 매도세가 몰리며 원화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일본 수출규제로 불확실성 커져 #삼성전자 등 대형주 2%안팎 하락 #미 금리인하 폭 축소 예상도 영향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2%(46.42포인트) 내린 2064.17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5월 9일(3.04% 하락) 이후 약 두 달 만에 최대였다. 기관투자자가 549억원을 순매도한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는 장 막판에 88억원 순매수로 돌아섰다. 시가총액 상위주는 대부분 하락했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2.74% 하락한 4만4400원에 마감했다.
미국금리·한일갈등·무역분쟁…트리플 악재에 증시·원화 휘청
SK하이닉스(-1.46%)와 현대자동차(-2.12%), LG화학(-2.68%) 등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시가총액 20위권 종목 중 삼성바이오로직스(0.8% 상승)만 소폭 상승 마감했다.
악재에 더 크게 흔들린 곳은 코스닥 시장이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67%(25.45포인트) 내린 668.72에 마감했다. 하락 폭은 지난해 10월 29일 이후 8개월여 만에 가장 컸다. 외국인 투자자(981억원)와 기관투자자(281억원)가 함께 주식을 내다 팔며 지수를 끌어내렸다. 원화가치는 급락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11.6원 내린(환율 상승) 달러당 1182.0원에 마감했다.
이날 증시가 급락한 것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며 국내 기업의 실적 등에 대한 우려가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윤희도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확대되는 듯한 일본과의 무역분쟁 이슈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의 주가가 많이 빠지며 지수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며 “일본이 (한국을 겨냥한) 많은 카드를 준비해놓고 적절한 시기에 이를 꺼낼 수 있는 만큼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일본과의 무역 갈등과 같은) 상황을 처음 겪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 요인이기 때문에 시장엔 악재”라며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서 미국이 어떤 반응을 내놓는지에 따라 상황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압력이 약해진 것도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 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고용지표가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자이언트 스텝(0.5%포인트)이 아닌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하에 그칠 수 있다는 예상에 무게가 실린다. 윤 센터장은 “경기 둔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Fed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고용지표상으로 상당한 경기 둔화가 나타나지 않은 탓에 미국은 물론 한국도 금리 인하를 미룰 수 있다고 해석돼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기초체력(펀더멘털) 약화와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시장이 흔들렸다는 시각도 있다. 서영호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 시점에서 올해 상장사 영업이익률 하락률이 29%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업이 이익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는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이 심화하면 한국 경제에 미칠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1%대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이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등 IT 산업의 수출과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성장률은 1%대로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KB증권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 국면에 접어들어 수출 물량이 10% 감소하면 경제성장률은 0.6%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2.4~2.5%로 하향 조정했다.
구용욱 미래에셋대우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 강한 만큼 이런 흐름이 언제까지 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며 “금리 인하와 무역 갈등 등이 함께 작용하면 변동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