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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09:32:14

강원 민통선안에 "경상도마을"

중앙일보

입력 1989.08.10 00:00

지면보기

종합 13면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l리.민통선북방에 있는 「경상도 마을」 이다.
이 마을은 남북분단이 가져다준 실향민들의 마을과는 달리 고향을 남폭에 두고온 이주민들의 마을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이 마현1리 이주민촌은 30년전 경상도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사라호 (59년9월17일)에 가옥과 전담을 모두 떠내려보낸 경북울진군 일대의농민 66가구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 삶을 시작한 곳이다.
이주 1세대중 상당수는 이미 타계했지만 2세들은 벌써 30세의 청년이 되었고, 손자·손녀까지 두어 처음 이주해온66가구는 현재 1백여가구로 늘어났다.
이들이 처음 마현1리에 정착한 것은 60년4월7일. 그로부터 30년세월이 흘러간 올해 8월10일 이마을 청년회(회강김종호)가 중심이 돼 선일대들의 위대한 개척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마을입구에 입주기념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이들 청년회 회원들은 비문에서 『그대들은 알아야한다. 조국강산의 가장 중심된 이 농토가 누구의 피땀으로 가꾸어졌는가를…. 괭이와 호미로 6·25동란이후 버려진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개척정신의 빛나는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이재민이라고해서 특별한 지원대책이 있을 수 없었던 당시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강원도지사 홍창섭씨 (현 국회의원동우회장) 의 주선으로 이들은 남한 최북단의 버려진 황무지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려 떠났다 (60년당시에 울진군은 강원도에 속했음).
조국강토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동족상잔의 흔적만을 안은채 갈가리 찢겨버려져 있던 민통선 안쪽황무지.
10여년 전까지만해도 기름진 철원평야의 한 부분이었지만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우거진 잡초더미와 6·25가 남겨준 온갖 잔재들만 눈앞에 가득할 뿐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국군과 인민군의 훈련 포성에 몸을 떨며 군용 천막을 치고 개간의 삽질을 시작했다.
부르튼 손으로 잡목과 온갖 무기 파편·돌등을 제거하고 우거진 싸리숲을 없애기 위해 몸에는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곳곳에 처박혀있는 불발포탄의 위험 속에서도『이 땅을 일구어야만 살수 있다』 는 생각에 개척의 삽질은 끝없이 이어졌다.
눈앞의 황무지가 옥탑으로 변할 생각을 하며1인당 2·5홉씩의 배급잡곡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이주당시 50대 초반의 장년이였던 김태암옹(81)은 『우거진 잡목들을 뽑아낼 때는 허리가 부러지는 것같은 괴로움을 당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 김옹은 『춘궁기에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인근 와수리 상인들에게 보리쌀 1말을 빌리면 가을에 쌀1말을 주어야 할 정도로 모든게 고난뿐이였다』 며 눈시울을 적신다.
인고의 노력은 마현1리를 옥토로 바꿔 현재주민들은 가구당 논4천평·밭1천여평의 중농으로 발돋움할 수가 있게 됐다.
그러나 이 마을도 다른 농촌과 마찬가지로 총각결혼문제·농가부채등 농촌특유의 어려움을 안고있다.
마을의 30세 넘은 노총각들은 민간인 통제구역안에 있기때문에 타지방보다 더욱 장가가기가 힘들며 속임수까지 써가며 결혼을 시켰다가 신부가 도망간 경우도 많다고 한다.
또 마을전체의 부채도 11억원이나 되는데다 올가을에는 또 몇가구가 떠나갈 계획으로 있어 주민들은 우울하다.
요즘 이들에게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러움을 이기며 애써 가꾼옥답에 대한 지주들의 소유권 주장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83년 정부의 수복지역내 소유자 미복구 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후 원소유주들이 나타나 등기를 했기 때문이다.
전체의 20%정도만이 자기소유의 토지를 갖고 있을뿐 개간한 땅을 넘겨줘야하는 주민들은 『개간할 당시에는 지주고 정부고간에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옥답이 된 후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니 하늘아 무너지는 것 같다』 며 정부의 대책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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