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송지훈의 축구.공.감] ‘남수단 네이마르’, 마틴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코리안 드림'을 품고 남수단에서 건너온 스무살 유망주 마틴(오른쪽).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코리안 드림'을 품고 남수단에서 건너온 스무살 유망주 마틴(오른쪽).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4골 1도움. K3리그 베이직(5부리그에 해당) 소속 클럽 고양시민축구단에서 활약 중인 남수단 올림픽대표 마틴(20)이 지난 6일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거둔 성적표다. 원맨쇼에 가까운 마틴의 활약을 앞세운 고양은 서울을 5-0으로 완파하며 감격적인 올 시즌 2번째 승리를 거뒀다.

시즌 전적 2승11패 승점 6점. 고양은 경기 전까지 8팀 중 꼴찌였지만 귀중한 승점 3점을 추가하며 평창 FC(5점)를 밀어내고 7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한꺼번에 4골을 추가한 마틴은 시즌 득점을 8골로 끌어올리며 득점 부문 리그 단독 2위로 뛰어올랐다.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전주시민축구단 간판 공격수 오태환(11골)과는 세 골 차다.

고양시민축구단은 지난 5월 관중석에서 홀로 응원하는 열혈 서포터 라대관(31) 씨의 동영상이 화제가 되며 함께 주목 받은 팀이다. 해당 영상에서 라 씨는 평창 FC와 경기 도중 고양이 1-1 동점 상황에서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추가해 2-1 승리를 거두자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영상에는 고양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흑인 선수가 나오는데, 그가 ‘남수단의 네이마르’라 불리는 마틴이다.

남수단 청소년축구대표팀 공격수 마틴.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남수단 청소년축구대표팀 공격수 마틴.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마틴은 기능성 스포츠웨어 전문업체 스켈리도(대표 윤진혁)가 지난 2016년부터 진행 중인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의 1기 멤버다. 피지컬과 운동 능력이 뛰어나지만 체계적인 훈련 기회가 부족한 아프리카 축구 유망주를 발굴해 한국 축구 시스템 아래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스켈리도는 ‘아프리카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임흥세 남수단 축구대표팀 총감독과 의기투합했다. 지난 2016년 ‘아프리카 최빈국’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서 ‘축구 영웅 만들기’ 오디션을 개최했다. 남수단의 내로라하는 축구 유망주들이 모두 도전한 이 행사에서 마틴은 100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했다.

이후 몇 달 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마틴은 2016년 가을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스켈리도는 혈혈단신 한국에 건너온 마틴의 국내 적응을 돕고 생활비와 학비,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위한 개인 훈련 비용까지 무상 지원했다.

아버지처럼 여기는 임흥세 남수단축구대표팀 총감독(왼쪽 세 번째)과 함께 포즈를 취한 고양시민축구단의 '남수단 삼총사'. 왼쪽부터 공격수 마틴, 수비수 팔, 수비수 스티븐. [사진 스켈리도]

아버지처럼 여기는 임흥세 남수단축구대표팀 총감독(왼쪽 세 번째)과 함께 포즈를 취한 고양시민축구단의 '남수단 삼총사'. 왼쪽부터 공격수 마틴, 수비수 팔, 수비수 스티븐. [사진 스켈리도]

민첩성과 발재간, 집중력 등 잠재력을 두루 갖춘 마틴이지만, 초창기엔 뛸 팀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문제였다. 입국 당시 17살로 학업을 병행해야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으로서 국내 축구 클럽에 등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마틴의 잠재력을 알아 본 프로축구 K리그2 소속 클럽 안산 그리너스가 산하 18세 이하 팀에 합류시켜 훈련을 도왔지만, (외국인 신분이라) 공식 경기엔 나설 수 없었다. 윤진혁 스켈리도 대표는 “마틴은 경기 출전 여부와 상관 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개인 훈련 및 피지컬 트레이닝을 꾸준히 진행했다”면서 “하루하루 눈에 띄게 성장하는 마틴의 체격과 기량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에 입단한 건 마틴의 유일한 약점인 ‘실전 감각’을 가다듬기 위해서다. 마틴은 입단하자마자 특별한 적응기 없이 곧장 주축 골잡이로 자리잡았다. 고양 홈 팬들의 투표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도 뽑혔다.

남수단 올림픽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마틴(맨 앞).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남수단 올림픽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마틴(맨 앞). [사진 마틴 페이스북 캡쳐]

올해 초엔 남수단 20세 이하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23세 이하)에 잇달아 선발돼 부쩍 성장한 기량을 인정 받았다. 두 대표팀을 총괄하는 임흥세 총감독은 “마틴의 경기력은 세 살 많은 올림픽팀 주축 멤버들을 능가했다”면서 “남수단 현지 언론이 ‘한국에서 훈련한 마틴이 몰라보게 성장해 돌아왔다’고 대서특필해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마틴이 성공사례로 떠오른 이후 고양시민축구단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남수단 선수들의 전진기지가 됐다. A대표팀 수비수 스티븐(20)에 이어 최근에는 청소년대표팀 수비수 팔(19)이 합류하며 세 명의 남수단 선수들이 K3리그 무대를 누비게 됐다. 팔은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의 2기 멤버다. 신장(2m)에 비해 빠르고 발재간이 뛰어나다. 남수단 20세 이하 대표팀 주장이자 23세 이하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 중이며, 수비형 미드필더도 겸한다.

윤진혁 스켈리도 대표(왼쪽 세 번째)는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남수단 축구 기대주들이 한국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진 스켈리도]

윤진혁 스켈리도 대표(왼쪽 세 번째)는 '아프리카 축구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남수단 축구 기대주들이 한국에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진 스켈리도]

‘남수단 3총사’의 간판격인 마틴은 조만간 프로무대에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다. K리그 진출이 최우선 목표지만, 해외 클럽에서 새출발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 중이다. 마틴은 “나는 남수단 출신이지만 한국 축구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다는 사실을 한 시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조국인 남수단에서 나를 롤 모델로 여기며 훈련 중인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아프리카의 ‘하드웨어’에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덧입혀 만든 ‘남수단의 네이마르’는 어떤 선수로 성장할까. ‘하이브리드 골잡이’ 마틴을 바라보는 두 나라 축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궁금증이다.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남수단 올림픽축구대표팀 멤버인 수비수 팔(왼쪽)과 공격수 마틴. 나란히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에서 뛰며 K리그 도전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 스켈리도]

남수단 올림픽축구대표팀 멤버인 수비수 팔(왼쪽)과 공격수 마틴. 나란히 K3리그 고양시민축구단에서 뛰며 K리그 도전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사진 스켈리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