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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왜, 유달리 날 것의 승부욕을 자극하는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9)

당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 게임보다도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 같다. 승부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친구조차 몇판 지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며 한 게임이라도 이겨보려 애를 쓴다. [사진 pixabay]

당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 게임보다도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 같다. 승부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친구조차 몇판 지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며 한 게임이라도 이겨보려 애를 쓴다. [사진 pixabay]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를 치다보면 당구에는 유난히 승부욕을 자극 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승부욕이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진화 전략으로 우리의 DNA에 각인된 본성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이 있으니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승부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승부욕이 강한 친구는 물론이고, 승부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친구조차 몇판 지게 되면 얼굴이 붉어지며 한 게임이라도 이겨 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왜 친구들끼리 어울려 즐기는 사소한 게임에서 그렇게 얼굴을 붉혀 가며 승리를 탐하는 것일까?

내가 이해하는 바로 모든 스포츠 게임의 본질은 승부 가르기다. 사람들이 왜 스포츠에 열광하고 승부에 집착하는지에 비록 깊은 이해와 통찰력이 없지만, 스포츠 게임을 통해 경쟁하고 이기려는 본성을 드러내고 해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당구는 다른 어떤 스포츠 게임보다도 이런 승부욕을 자극하는 것 같다.

일대일 진검 승부의 묘미

당구는 단체 게임이 아니라 일대일 게임이다보니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굴욕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몫이 된다. 당구 경기에서 우리는 경쟁하고 이기려는 본성을 드러내며 날것의 승부욕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사진 pxhere]

당구는 단체 게임이 아니라 일대일 게임이다보니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굴욕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몫이 된다. 당구 경기에서 우리는 경쟁하고 이기려는 본성을 드러내며 날것의 승부욕을 여과없이 표출한다. [사진 pxhere]

일단 당구는 축구나 야구와 달리 시간과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직접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이다 보니 게임의 열정과 흥분을 스스로가 직접 받아들이게 된다. 심지어 당구는 단체 게임이 아니라 일대일 게임으로 승리의 환희와 패배의 굴욕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다. 당구 경기에서 우리는 경쟁하고 이기려는 본성을 드러내며 날 것의 승부욕을 여과 없이 표출하게 된다.

당구는 공이라는 기구를 사용한다. 당구공은 다른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 등 고무를 사용한 것과는 전혀 다른 가장 현대 기술이 만들어낸 최첨단 놀이 기구다. 예를 들어 고무공이 무전기 크기의 초기 휴대폰이라면 당구공은 아이폰 10 이나 갤럭시 10에다 5G 기술이 장착된 휴대폰 같은 것으로 감각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당구에는 큐라는 다른 도구가 있는데,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큐를 잡고 있으면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와는 다른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데, 이게 약간의 공격성을 자극한다. 당구의 룰은 아주 단순하다. 테이블에서 자기 공으로 다른 공 2개를 맞추는 것이다. 게임의 룰은 단순할수록 몰입도가 높아지게 된다.

요약해 말하자면 당구의 룰, 당구의 도구, 일대일 게임에서의 직접적인 플레이는 우리를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에서의 캐릭터처럼 한판 대결에 사활을 걸도록 충분히 흥분시키고 열광하고 몰입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매일 크고 작은 패배를 경험한다. 승리보다 패배를 더 많이 경험했기에 승리를 갈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승부에라도 목숨 걸 준비가 되어 있다. [중앙포토]

우리는 학교, 직장, 그리고 일상에서 매일 크고 작은 패배를 경험한다. 승리보다 패배를 더 많이 경험했기에 승리를 갈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승부에라도 목숨 걸 준비가 되어 있다. [중앙포토]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는 경쟁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된 세대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삶의 궤적에서 승리보다는 훨씬 더 많은 패배를 경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학창 시절에는 입시 지옥 속에 무수한 쓴잔을 들이켰고,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아등바등 했던 사회생활 동안에는 크든 작든 얼마나 많은 패배를 경험했던가. 입사 지원에서의 좌절, 진급에서의 패배, IMF 시절의 퇴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조차 상사, 동료, 후배, 거래처로부터도 칭찬과 존경보다는 모욕과 멸시를 더 많이 들어야 했다.

그뿐 인가. 그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익명의 ‘옆집 아빠’로부터 의문의 일패였다. 옆집 아빠는 왜 그렇게 돈도 잘 벌어 오면서도 가정적일 수 있는지, 한번 만나면 비결을 묻기보다는 시원하게 한 대 갈겨 주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승리보다 패배를 더 많이 경험했기에 승리를 갈구하는 것이고, 아무리 사소한 승부에라도 목숨 걸 준비가 되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자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웃통을 벗고 거울 앞에 서면 머리가 듬성듬성 빠진 배불뚝이가 아닌 잘 생기고 근육질의 모습이다. 물론 자신에게만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거울 속의 자신을 힐끗거리며 아직 쓸 만한데 하면서 싱긋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근자감은 어쨌거나 우리의 승부욕을 자극 한다.

당구 게임에서도 우리는 승리의 기쁨 만큼이나 패배의 굴욕을 경험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뇌 기능은 지난번 게임에서 패배한 원인은 실력 부족이 아니라 운이 없었거나 사소한 실수였기 때문이라는 긍정적 해석을 내려준다. 결국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우리의 승부욕은 무한 증식하는 것이다.

무한증식하는 승부욕  

당구는 언제나 승부욕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자아낸다. 승부에 연연하게 만들며 우리를 꿈틀거리게 한다. 친구들과의 당구 한판은 그래서 더욱 쫀쫀하고 쫄깃하다. [사진 pxhere]

당구는 언제나 승부욕을 자극하고 긴장감을 자아낸다. 승부에 연연하게 만들며 우리를 꿈틀거리게 한다. 친구들과의 당구 한판은 그래서 더욱 쫀쫀하고 쫄깃하다. [사진 pxhere]

이렇듯 당구는 이제 다음번에는 당신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신기루를 보여주며 승리는 도달 불가능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당구는 이 부분에서 마력적인 것으로 바뀌게 된다.

사실 환갑을 넘긴 우리 나이에는 심장이 벌렁거릴 일도, 긴장할 일도, 아쉬워할 일도 별로 없다. 이런 즈음에 당구는 승부욕을 자극하고 긴장하게 하며, 집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승부에 연연하게 하며 우리를 꿈틀거리게 한다.

친구는 집에서 핀잔을 듣고 왔다며 게임의 승리로 위안을 삼겠다는 듯이 큐를 집어 든다. 나 또한 관용은 호모 사피엔스의 덕목이 아니라고 한 어느 학자의 말을 상기하며 비장한 모습으로 큐를 뽑아 든다. 우리 친구들과의 당구 한판은 그래서 더욱 쫀쫀하고 쫄깃하다.

깨알 당구 팁

[사진 pxhere]

[사진 pxhere]

한국은 4구를 즐기는 유일한 나라

캐럼 당구에는 3구와 4구가 있는데 사실 4구는 오래전 공식 경기에서 사라진 종목이다. 4구 경기가 폐지된 것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고무 쿠션의 개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득점 방식인 4구에서 쿠션을 이용해 공을 모아 치는 기술이 개발돼 한 이닝에 1000점씩 올리게 되자 오히려 당구는 재미없는 게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에 새로운 게임 형식이 고안됐는데, 바로 쿠션을 이용한 보다 훨씬 재미있고 활발한 3쿠션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현재 4구에 대한 정식 규정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으며 우리에게 당구를 소개한 일본에서도 지금은 4구를 치지 않는다고 한다.

당구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12년경으로 이미 4구 종목이 사라진 후였으며, 4구를 아직도 즐기고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뿐이다. ( 아라의 당구 홀릭 3에서 발췌)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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