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용실·관광객 많은 이대 앞 대신 기찻길 옆 '이화52번가'

중앙일보

입력

이대 정문 앞 메인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이화 52번가. 추리 소설만 전문으로 파는 서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일본 가정식집, 이대 앞 ‘빅이슈 할아버지’도 매주 강의를 하러 찾는다는 문학다방 봄봄 등 특성있는 가게들로 채워져있다. 박해리 기자

이대 정문 앞 메인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이화 52번가. 추리 소설만 전문으로 파는 서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일본 가정식집, 이대 앞 ‘빅이슈 할아버지’도 매주 강의를 하러 찾는다는 문학다방 봄봄 등 특성있는 가게들로 채워져있다. 박해리 기자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이화여자대학교 앞은 서울을 대표하는 패션거리였다. 트랜드에 민감한 20대 여대생이 많은 지역 특성상 이곳은 유명 프랜차이즈의 테스트베드의 역할도 컸다. 스타벅스가 1999년 한국에서 1호점을 낼 때 선택한 곳도 이곳이었으며 1990년에는 미스터피자, 2002년에는 미샤도 이곳에 1호점을 낸 후 전국으로 뻗어 나갔다.

[2019 대학별곡 ⑦] - 新 대학가 핫플레이스

이후 주변의 다른 상권이 뜨며 이대 앞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10년 이후에는 이대가 중국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떠오르며 이곳을 찾는 내국인의 발길은 더욱 줄어들게 됐다. 하지만 대로변과 다르게 골목에는 과거의 이대 앞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거리가 최근 몇 년 사이 조성됐다. 이대 정문 앞 메인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이화 52번가다.

문화가 공존하는 기찻길 옆 골목길

이대 정문 앞 메인거리.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이 늘며 관광객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박해리 기자

이대 정문 앞 메인거리.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이 늘며 관광객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박해리 기자

이화52번가는 2016년 이대 산학협력단과 서대문구청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중소기업청 등 지원을 받는 청년몰 사업에 선정되며 시작됐다. 상권을 부활시키는 동시에 청년사업가 양성을 위해 청년들에게 이곳 상점의 임대료를 지원하며 창업을 도왔다. 1년여간 진행된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종료 후에도 이화52번가에는 다양한 상점들이 입점하며 거리를 채웠다.

문학과 인문학 위주 책방인 생활의 지혜를 운영하는 전지혜(33)씨는 “이전에는 옷가게가 많았는데 선배로서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싶어 책방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전씨는 책방을 특색있게 꾸몄다. 책마다 작가의 말이나 설명 등을 메모로 붙여놓기도 하고 블라인드 코너에는 책 제목 대신 3가지 키워드로만 책 설명을 해놓기도 했다.

5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은 문학다방봄봄 김보경 대표는 “52번가가 시작된 2016년부터 거리가 훨씬 활성화됐다”며 “뒷골목의 한계가 있지만, 손님을 유인하는 킬러 카테고리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문학다방봄봄은 독서 낭독모임과 모임 공간을 위해 만들어졌다. 김 대표는 “기찻길 옆이라 30분마다 기차가 한 대씩 지나가는데 낭만이 있다”며 “먹을거리 놀 거리에 문화적 코드가 결합해 재밌는 상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이화52번가 해쉬태그로 검색하면 이화52번가에 위치한 다양한 특색있는 가게들이 나온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 이화52번가 해쉬태그로 검색하면 이화52번가에 위치한 다양한 특색있는 가게들이 나온다. [인스타그램 캡처]

이화52번가 거리의 맛집으로 유명한 일본 가정식 파파노 다이닝 이수종(50) 대표 “올해 이 가게를 인수했는데 초기 대표가 가게 열 때 이대 다니는 딸이 있었다”며 “딸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뒷골목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에는 대기 줄도 이어진다. 이 대표는 “3분의 1이 이대·연대 학생, 3분의 1은 동네 분이나 관광객, 나머지는 소문 덕에 이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라며 “앞길보다 임대료가 싼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방문객 미니북 만들어주는 이벤트도

여전히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한 대로변에 비해 이화52번가는 한적한 운치가 있다. 이대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인 허수정(24)씨는 “관광객이 늘며 학교 앞에는 화장품가게나 액세서리 샵, 옷 가게들이 많이 생겼고 유행 타는 음식점이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52번가는 아무래도 관광객이 잘 몰라 한적한 편이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여러 다양한 가게들이 몰려서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정모씨는 “전공수업으로 52번가에서 직접 일주일간 팝업스토어를 열어 제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했다”며 “휴식공간도 더 많이 생기고 거리가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화52번가에 위치한 이화쉼터. 이곳은 서대문구청이 운영하는 곳으로 신촌글다방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청년작가들은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눈 후 그 대화를 엮어 미니북 형태로 만들어 준다. 박해리 기자

이화52번가에 위치한 이화쉼터. 이곳은 서대문구청이 운영하는 곳으로 신촌글다방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 상주하는 청년작가들은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눈 후 그 대화를 엮어 미니북 형태로 만들어 준다. 박해리 기자

서대문구청에서는 거리를 활성화 시키려고 ‘신촌글다방’ ‘이화쉼터’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신촌 글다방은 이화52번가 상점을 이용한 후 이화쉼터를 방문하면 상주하고 있는 청년작가들이 방문객들의 이야기를 엮어 미니북을 만들어주는 이벤트로 7월 초까지 진행된다. 추후에는 이 미니북을 토대로 뮤지컬 연극도 제작할 계획이다. 서대문구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신촌의 문화적 특색을 살리며 주변 상권 활성화와 연계할 아이디어를 찾다가 신촌글다방을 운영했다”며 “이화52번가를 찾는 손님들은 이곳이 과거의 이대거리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앞으로도 문화반상회 등을 통해 주변 상권을 활성화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 명성을 되찾기에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골목사진쌀롱 이창용(40) 대표는 “상권형성이 되면 외부인이 들어와야 하는데 아직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라서 방학 때는 상권이 죽는다”며 “방학 동안 잠깐 폐점하는 상점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이윤지(23)씨는 “학교 앞이라 싸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이 생기길 다들 바라는데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식당이 많이 없다”며 “유행 따라 가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없어지는 점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김혁준 인턴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