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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이유로 수출 제한, WTO 인정한 건 한 번밖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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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에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 수출을 제한한 일본이 30여 년 전 유럽에 비슷한 조치를 내렸다가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올 러시아·우크라이나 무역분쟁 #“사실상 준전시…한·일과 달라” 분석 #한국 ‘후쿠시마 어퍼컷’ 팀 투입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할 때 걸고넘어질 규정 중 하나로 꼽는 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WTO의 전신) 11조다. 회원국을 대상으로 관세 등에 따르지 않는 수출입 수량의 제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GATT 11조는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등 예외를 제외하고 수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다”며 “일본 조치는 GATT 11조를 명백히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GATT 11조와 관련한 대표적인 국제 분쟁 사례는 WTO 체제 출범 전인 1986년 EC(EU의 전신)가 일본의 미국 반도체 수출에 대해 GATT에 제소한 건이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직후 미국에 수출하던 반도체에 대해 양자협정을 맺고 수출을 빨리 할 수 있도록 혜택을 줬다. 이에 EC는 (EC에 대한) 사실상 수량 제한이자 차별적인 조치라며 GATT에 제소했다. GATT는 EC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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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이 ‘안보상’ 전략물자란 이유로 수출 제한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WTO가 안보상 이유로 수출 제한이 정당하다고 본 경우는 현재까지 1건에 불과하다. WTO는 지난 4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무역분쟁에서 러시아가 안보상 이유로 수출을 제한한 조치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러시아는 2014년 무력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등으로 수출하는 우크라이나 제품이 군수물자를 포함했을 우려가 있다며 자국 영토 통과를 막았다.

해당 사례에 대해 한 통상 분야 전문가는 “양국이 사실상 전쟁에 준하는 긴급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나왔던 판결”이라며 “워낙 민감한 데다 상대방이 똑같이 걸고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안보 이슈를 수출 제한 조치의 이유로 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대응팀의 주축인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는 지난 4월 일본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관련 WTO 통상 분쟁에서 1심 패소를 뒤집고 최종 역전승을 거뒀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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