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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통보 받은뒤···70대 아버지, 22년 돌본 아들과 슬픈선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업재해를 당해 20년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40대 아들과 보호자인 70대 아버지가 병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일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천안의료원.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천안의료원.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5시 30분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의료원 4층 병실에서 A씨(45)와 아버지(76)가 숨져 있는 것을 회진하던 간호사가 발견했다. 간호사는 두 사람의 맥박과 호흡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응급실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산업현장 추락사고로 다쳐, 병원 옮겨가면서 치료받아 #병실서 독극물병 발견… 아버지 몸에서 농약성분 나와

경찰은 외부 침입이나 외상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두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병실에는 다른 환자는 입원하지 않은 상태였다. A씨 아버지 옆에서는 자필로 쓴 A4 용지의 유서와 독극물이 담겨 있던 병이 발견됐다.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부자를 발견한 간호사들은 경찰에서 “병실에 들어갔는데 보호자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여 맥을 확인했다”며 “보호자를 응급실로 보낸 뒤 A씨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마찬가지로 의식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3일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이뤄진 부검 결과 아버지의 몸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정확한 부검 결과는 한달 뒤 나올 예정이다. A씨 어머니와 여동생은 경찰에서 이번 사건과 직접 연관 지을만한 진술은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천안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다.

지난 2일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천안의료원의 병실 문이 출입이 통제된 채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천안의료원의 병실 문이 출입이 통제된 채 잠겨 있다. 신진호 기자

경찰과 천안의료원에 따르면 A씨는 1997년 대구의 한 산업현장에서 재해를 당해 22년간 치료를 받아왔다. 천안의료원에 입원한 건 지난해 10월로 이 병원에서만 다섯 번째 입원이었다. 천안의료원으로 오기 전에는 천안의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A씨는 ‘전신 마비’ 진단을 받은 뒤 그동안 여러 병원을 옮겨가면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숨진 아버지를 비롯해 어머니와 여동생이 돌아가며 그를 간호해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주로 야간에 병실을 지켜왔다는 게 의료원 측의 설명이다.

천안의료원은 지난달 27일 A씨 가족에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퇴원 통보를 받은 가족은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여러 병원에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설움과 피로감이 쌓인 데다 옮겨갈 병원이 천안의료원 수준의 의료시설을 갖추지 않은 요양원인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A씨 가족은 최근 천안의료원 관리·감독기관인 충남도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며 ‘퇴원 조치’의 부당함을 알렸다. 양승조 충남지사와의 면담도 요청했다. 충남도에서는 담당자가 현장에 나와 관련 내용을 조사했다.

이경석 천안의료원장은 “그동안 A씨가 입원한 병동에서 간호사가 여러 명 그만두는 등 문제가 발생해 다른 의료시설로 옮기도록 결정했다”며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원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오전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 중인 천안동남경찰서. 신진호 기자

지난 2일 오전 산업재해로 입원 중이던 40대 아들과 간병하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 중인 천안동남경찰서. 신진호 기자

경찰은 유족과 병원 관계자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하고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최종 수사결과는 부검 결과가 나온 뒤 마무리할 방침이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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