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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년 야구 '약물 게이트' 쇼크···현직 프로 선수도 조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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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단에서 아이들에게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식약처가 수사에 나섰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이미지 사진 [pixabay]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단에서 아이들에게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식약처가 수사에 나섰다.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이미지 사진 [pixabay]

유소년 야구교실에서 시작된 ‘금지 약물 게이트'가 프로구단으로 번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학 진학이나 프로야구 입단을 목표로 하는 유소년 야구선수들에게 밀수입 등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되는 아나볼릭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 등을 주사ㆍ판매한 유소년야구교실 운영자 이여상(35)씨를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수사중이라고 3일 밝혔다. 이씨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와 롯데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조지훈 식약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수사관은 “이씨가 아나볼릭스테로이드와 남성호르몬 등 10여개의 약물을 불법으로 입수해 야구교실 소속 학생 7명과 사회인 야구단(성인) 1명에게 투약했다”라며 “이 야구교실 출신으로 프로구단에 입단한 현직 야구선수 2명도 참고인 조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단백동화스테로이드)는 황소의 고환에서 추출ㆍ합성한 남성스테로이드(테스토스테론)의 한 형태다. 세포 내 단백 합성을 촉진해 세포 조직 특히 근육의 성장과 발달을 가져오지만 갑상선 기능 저하, 복통, 간수치 상승, 단백뇨, 관절통, 대퇴골골두괴사, 팔목터널증후군, 불임, 성기능 장애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단기간에 근육을 폭발적으로 키우고 근력을 강하게 하지만, 이 약물을 맞은 선수가 돌연사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이를 금지약물로 지정하고있다.

식약처가 이씨의 야구교실과 자택에서 압수한 약물과 스케줄표. 이에스더 기자

식약처가 이씨의 야구교실과 자택에서 압수한 약물과 스케줄표. 이에스더 기자

피의자 이씨는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10대 선수들에게 금지 약물을 투약시키고 그대가로 1년간 억대의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 결과 이씨는 유소년 야구선수들에게 “몸을 좋게 만들어주는 약을 맞아야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원하는 프로야구단이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속였다. 또 강습비 명목으로 무허가 스테로이드 제제와 각종 호르몬을 1회당 300만원을 받고 직접 학생들에게 주사해 1년간 1억 6000만원 상당의 이득을 챙겼다.

식약처는 “이씨는 전직 야구 선수로서 도핑 검사 원리를 파악하고 스테로이드 제제의 체내 잔류기간을 계산해 투여하는 등 치밀한 방법으로 도핑검사와 보건당국의 단속을 피해왔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씨가 ‘월요일 3알, 화요일 5알, 목요일 주사’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스케쥴표를 공개했다.

식약처는 불법의약품을 투약한 것으로 의심되는 야구교실 소속 유소년 선수 7명을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고교 선수 2명은 금지약물에 대한 양성으로 확정 판정을 받았고 5명은 도핑 검사가 진행 중이다. 이들은 위원회 결정에 따라 상당기간 선수 생활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식약처가 이씨의 야구교실과 자택에서 압수한 약물과 스케줄표. 이에스더 기자

식약처가 이씨의 야구교실과 자택에서 압수한 약물과 스케줄표. 이에스더 기자

이씨에게 속아서 고3 아들에게 약물을 2개월 가량 맞췄다는 학부모 A씨는 “미국 교수님이 가져온 정말 좋은 약이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며 권했다. 프로선수들도 자기들끼리 비밀로 맞을 정도로 좋은 약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A씨는 “애가 주사를 맞고나서 ‘걷지도 못할만큼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이씨가 ‘엄살 부리지 말라, 다들 맞는데 더 맞으라’고 권했다”라며 “아이가 평생 야구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선수생활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지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식약처는 금지약물 투약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구속 중인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식약처 조 수사관은 “지금까지는 야구교실에 현재 다니는 3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씨 조사 결과에 따라 조사 대상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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