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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13년 전쟁…동남권 날개를 정치의 끈에서 놓아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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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역사는 사진의 파노라마다. 문자와 글의 기억은 어렴풋해지지만 사진은 쉽사리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장의 사진 힘과 울림은 크다. 사진은 펜보다 강하다. 동남권 신공항 13년 반전(反轉)에도 몇장의 사진이 등장한다. 하나는 2015년 1월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서병수 부산시장·권영진 대구시장·홍준표 경남지사·김관용 경북지사가 손을 맞잡은 장면이다. 영남 5개 단체장이 신공항 합의서에 서명하고 포즈를 취했다. 합의의 요체는 정부 용역 결과 수용 재확인과 유치 경쟁 중지였다. 5명 간 용역 전 합의는 세 번째다.

당시 영남은 두쪽이 났다. 부산은 관내 가덕도를, 나머지는 경남 밀양을 밀었다. 2016년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용역 결과는 제3의 길이었다. 김해공항 확장으로, 기존 2본 활주로에 1본을 추가하는 안이었다. 확장안은 805점으로, 2위 밀양(활주로 1본 686, 2본 687)과 가덕도(1본 619, 2본 574)를 압도했다. 영남권 전체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가덕도 유치에 시장직을 걸었던 서병수 시장은 반발하다 엿새 만에 돌아섰다. 3개 합의서는 반란의 방패막이였다. 용역의 공신력을 따질 수도 없었다. ADPi는 공항 프로젝트 수주가 700개를 넘는 세계적 업체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검토해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성 문제로 백지화했던 동남권 신공항 10년 전쟁은 박근혜 정부에서 일단락됐다. 김해신공항은 지난해 말 청사진(기본계획)이 나왔다.

그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김해신공항안은 휴전협정일 뿐이었다. 지난해 부산·울산·경남(PK)의 지방 권력이 바뀌면서 사문화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오거돈 부산시장·송철호 울산시장·김경수 경남지사는 김해공항 기본계획 검증단을 꾸렸다. 세 명은 올 1월 김해신공항 불가를 선언하고 백지화를 요구했다. 새 입지는 말이 없었지 가덕도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오 시장은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 단체장이 당시 손을 맞잡고 찍은 사진은 2015년 영남권 5개 단체장의 컷과 오버랩된다. 5개 단체장 합의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새 권력 지도는 국책 사업의 지도도 바꾸는가. 대구·경북(TK)을 뺀 검증과 현상 변경 시도는 절차적 정당성에 결정적 흠을 남겼다.

PK 단체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위로 우회했다. 총리실의 김해신공항 재검토를 끌어냈다. 2월 문재인 대통령, 3월 민주당 지도부가 총리실 검증을 언급한대로 됐다. 여권이 하나로 돌아가는 형국이다.

공항의 파괴력은 크다. 한 해 이용객 1억5000만명 시대다. 지방 공항은 누구에나 친근한 존재가 됐다. 지자체에는 효자다. 국비 투입에 운영은 한국공항공사가 맡는다. 공항 입지가 정치인·지역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 신공항을 둘러싼 TK-PK 간 대립 축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이유다. 지역 언론의 대리전도 서슬이 퍼렇다. TK는 복잡하다. PK 독주에 대한 반발, 패싱(passing)의 자조가 뒤엉켜있다. 악마의 이간질, 사석(捨石) 작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남권을 갈라 PK 표심을 모으려는 고도의 정치공학이 꿈틀거린다는 얘기다. 지역 갈라치기는 신종 포퓰리즘이다. 분열의 정치는 또 다른 분열만 낳을 뿐이다.

국가 리더십의 원점은 통합이다. 정부는 지방 사업의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 이해의 용광로여야 한다. 갈등의 틈새를 과학과 데이터, 최대 다수의 축복으로 메워주는 것이 순리다. 관료는 정권의 이익이 아닌 국가 이익의 지킴이여야 한다. 동남권 날개를 정치의 끈에서 놓아주자.

오영환 지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