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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전기 먹는 하마’ 맞지만 전자파 발생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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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공사중단된 데이터센터 과연 유해시설인가

네이버가 두번째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던 경기도 용인 부지가 휑하니 비어있다. [사진 각 사]

네이버가 두번째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던 경기도 용인 부지가 휑하니 비어있다. [사진 각 사]

1일 오후 보라산(해발 215m)이 흘러내리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산 30번지는 종일 조용했다. 한쪽에 공세초등학교, 다른 쪽에 1300세대 아파트를 끼고 있는 산자락엔 펜스로 둘러싸인 채 공사가 중단된 흔적이 역력했다. 드나드는 차량이나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네이버는 당초 이 장소에 제2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다 지난달 포기했다. 포기 이유를 ‘회사의 피치 못할 사정’이라고 했지만 전자파와 오염물질 배출을 이유로 사업 중단을 요구해온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주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중단 장소를 보니 데이터센터가 님비(NIMBY)를 부를 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인 시설인지 궁금해졌다. 수도권의 다른 데이터센터를 돌아보며 의문을 풀기로 했다.

통신사 등 국내 50곳 가량 가동 #서버 돌리고 나오는 열 식히려 #바깥 공기 등 다양한 냉매 사용 #건설에 돈 많이 들고 소음 심해도 #일단 지어지면 조용하고 깨끗 #상주 관리인원 적은 건 약점 꼽혀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데이터를 모아 쌓아두는 장소다. 정보화와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과거 전산실이나 고객센터라고 불리던 곳의 하드웨어를 한데 모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엔 모두 50여개 기업이 자체 운영 혹은 임대 목적의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장벽 뒤에 가려져 있다. 데이터센터 위치나 사용기기는 물론 월 전기요금도 절대 비밀이다. 전기요금으로 미뤄 구비 장비나 규모를 알 수 있고 데이터를 어떻게 쓰는지까지 추론할 수 있어서다.

데이터센터 대부분은 수도권에 있다. 서울 17곳, 경기와 인천 14곳 등이다. 이는 정보를 쓰는 곳인 본사나 연구소에서 접근하기 쉬워서다. 데이터 관리나 운영에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엔 정보기술(IT) 산업이 발달한 경기도 판교나 서울 상암동이 인기 후보지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데이터센터를 누구나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꽤 까다로운 입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한전의 전력망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므로 그만큼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곳과 가까워야 한다.

네이버의 춘천 데이터센터 ‘각’. [사진 각 사]

네이버의 춘천 데이터센터 ‘각’. [사진 각 사]

네이버가 강원도 춘천에 지은 데이터센터 ‘각’의 1년 전력소모량은 춘천시의 3년 치라고 한다. 한전의 15만4000V 전력망이나 22만 2900V 전력망이 근처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데이터센터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충분히 남아 있어야 한다.

온도 1도가 월 전기료 몇억원 좌우

사실 수도권에선 이런 곳을 찾기 쉽지 않다. 수원 위는 서울 등 도심의 전력 수요가 많아서, 수원 아래는 삼성전자 등 대규모 기업의 공장이 자리 잡고 있어서다. 이런 위치를 찾아도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비상 발전기와 동력 공급장치(UPS)를 갖춰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을 한순간도 끊임없이 공급하기 위해서다. 변전소에서 데이터센터까지는 대개 지하터널로 전선을 끌어오므로 초기투자비를 좌우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온도 역시 중요한 요소다. 전산기기로 꽉 찬 데이터센터를 그냥 놔두면 과열로 기기가 멈추거나 고장 나기 십상이다. 온라인 서비스용 기기들은 더더욱 민감하다. 그래서 서버가 작동하기 좋은 20도 초반의 온도를 만드는 데 전기가 많이 쓰인다. 2000년대 초반까진 장비를 유지하는 전력만큼 냉각용 전기가 쓰이기도 했다. 기술 개발로 이 비율이 떨어졌다지만 아직도 전체 전력의 3분의 1이 서버 냉각용으로 쓰인다.

온도는 네이버나 삼성SDS가 강원도 춘천에 데이터센터를 지은 주요인이기도 하다. 춘천은 전국에서 평균 기온이 가장 낮은 곳이어서 그만큼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 네이버의 첫 데이터센터인 ‘각’은 바람으로 수백 년간 대장경을 간직해온 해인사 장경각처럼 온도를 낮추기 위해 사시사철 바람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게 온도 1도는 월 전기료 몇억원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안양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LG 유플러스가 경기도 안양에서 운영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사진 각 사]

LG 유플러스가 경기도 안양에서 운영하고 있는 데이터센터. [사진 각 사]

1일 오후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의 LG유플러스 인터넷 데이터 센터. 전철역과 잇닿은 디지털 산업단지 안에 위치한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15만4000V 전력을 변전소에서 바로 끌어와 쓰는 곳이다. 축구장 12개에 해당하는 8만5500㎡ 면적으로 올 연말이면 총 54만대의 전산기기를 들여놓을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로 자리 잡는다. 수많은 임차인이 사용할 서버들이 한 달에 쓰는 총 전력은 시간당 16만㎾에 이른다. 그런데도 운영 인력은 관리 및 경비 등을 합쳐 30여명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기계, 즉 서버를 입주시켜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데이터센터가 들어와 봐야 고용과 경기 부양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원인이 된다.

이곳에 들어가는 출입 절차는 겹겹으로 삼엄했다. 입구에서 방문증을 건네받고 홍채 인식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버들이 놓여 있는 전산동으로 가려면 또다시 방문증과 보안 출입문을 지나야 했다. 그러고도 임차인의 정보기기가 놓인 방엔 들어갈 수 없었다. ‘정보가 곧 돈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손지호 팀장은 “여름을 뺀 기간엔 외부 공기를 끌어들여 온도를 낮추고 3단 필터를 거쳐 서버실에 공급한다”며 “정전 시 가동할 비상 발전기만 수십대에 이를 정도로 관리가 철저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건물 전체는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돼 쾌적했다. 바람의 일정한 순환을 위해 건물 층고도 6m에 달해 다른 건물과 사뭇 달랐다.

온통 기계들로 가득 차 있는 곳에서 근무하는 그에게 물었다. “전자파나 유해물질 문제는 없느냐”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데이터센터에서 일한 지 십수 년인데 전혀 이상을 못 느낀다. 폐기물도 다 전자제품이어서 외부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는 얘기였다. 주민들도 데이터센터 입주를 반긴다고 했다. 이 센터 100m 이내에는 포스코 더샵과 힐스테이트 같은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데이터센터 설립 뒤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고 아파트 시세도 올랐다.

무분별한 님비, 과학으로 풀어야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업계에 따르면 전국 데이터센터 중 주거시설과 20m 이내로 근접한 데이터센터가 15개에 이른다. 초등학교가 50m 이내에 있는 센터도 3곳이다. LG유플러스 평촌과 KT 목동 센터, 삼성SDS의 수원 및 상암, 농협 의왕 센터, IBK기업은행의 용인, 우리은행 상암 센터 등 7곳에는 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서울 상암동에는 주변에 상암고등학교와 월드컵파크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중 어느 곳도 주민 등 외부인의 반대로 활동을 제한받지 않는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전자파 문제도 심각하지 않다. 네이버는 데이터센터 주변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1mG(밀리 가우스)로 가정의 거실 수준이며 전기밥솥(4.75mG) 등이 있는 주방 평균보다도 낮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네이버 데이터센터 무산으로 데이터센터를 유해시설로 지목하는 시각이 돌출했다. 양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전기나 전자파가 유해물질이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시선이 상식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KT 관계자는 “현대 문명은 전기에 기반해 있고 전파는 공기 중에 수천 가지가 날아다닌다”며 “무엇이 유해물질이고 어떤 게 유해 수준인지를 정확히 규명하는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데이터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기업들이 어떻게 지역과 상생할지를 더 고민해야 무분별한 님비도 사라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