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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오 저격수' 외무성 권정근 미국국장, 판문점에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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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북·미 판문점 회담에는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참석한 모습이 국내외 언론에 포착됐다. 북한 대외선전매체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저격수'로 나섰던 그가 미측과의 회동에 함께 한 모습이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4월 北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임명 추정 #"폼페이오 저질적" "말 통하는 사람이어야" 주장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권 국장은 판문점 ‘자유의 집’ 로비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 옆에는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담당 보좌관의 모습도 눈에 띈다.

 권 국장은 회담 성사 직전까지 미국에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달 27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한다”며 “조ㆍ미(북ㆍ미) 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를 향해선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우리와 미국이며, 적대관계의 발생 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고 비난했다.

 권 국장은 지난해까지는 ‘외무성 미국연구소 소장’ 명의로 대외선전매체에 칼럼을 써 왔다. 올해 4월 최선희가 외무성 제1부상으로 승진했을 때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으로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4월 18일 '조선외무성 미국담당국장' 명의로 ‘공화국에 갖은 망발과 궤변을 연일 늘어놓고 있는 미 국무장관을 규탄’한다는 글을 내면서 직함을 '미국 국장'으로 알렸다.

지난 5월 권정근 국장(가운데)이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안톤 클로프코프 에너지 안보센터 소장과 찍은 사진. "최근 러시아 에너지 안보 센터 소장 안톤 클로프코프가 평양을 방문해 권정근 외교부 미국연구소장과 회담을 가졌으며, 군축평화연구소와 북한 외무성에서 회담을 했다"는 내용이다. [주북러시아대사관, 트위터 캡처]

지난 5월 권정근 국장(가운데)이 평양을 방문한 러시아 안톤 클로프코프 에너지 안보센터 소장과 찍은 사진. "최근 러시아 에너지 안보 센터 소장 안톤 클로프코프가 평양을 방문해 권정근 외교부 미국연구소장과 회담을 가졌으며, 군축평화연구소와 북한 외무성에서 회담을 했다"는 내용이다. [주북러시아대사관, 트위터 캡처]

이 글에서 권 국장은 “폼페이오 장관만이 혼자 잠꼬대 같은 소리를 자아낸다” “평양을 찾아와 비핵화를 애걸하더니 (미국)국회 청문회에서 우리 최고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을 줴침으로써 저질적인 인간됨을 드러냈다”며 격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권 국장이 얼굴을 내놓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으로, 주로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측은 지난 5월 트위터에서 권 국장이 안톤 콜로프코브 러시아 에너지 안보 연구소장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 김정은 나오기 전까지 반신반의”

 이번 판문점 회담이 극적으로 성사됐음을 알려주는 정황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1일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상의 전언으로 “미국 측도 김 위원장이 (눈앞에) 올 때까지 반신반의했다”며 “지난달 29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올리고 한 시간 만에 북측에서 반응이 왔다”고 보도했다. 회담 성사 직전까지 아슬아슬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노 외무상은 판문점 회담 직후 폼페이오 장관과 전화 통화로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

 국내 정통한 외교 소식통도 “전날 밤(지난달 29일) 비건 대표가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를 접촉했지만, 해당 인사가 ‘김 위원장이 오겠다’는 답을 들고 온 것은 아니었다”며 “평양에서 답이 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고 설명했다. 회담 당일인 30일 새벽께 극적으로 회담이 확정됐음을 시사한다. 이 소식통은 또 “비건이 판문점에서 만난 북측 인사는 최선희 제1부상 보다는 급이 낮은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회담 당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회담에서는 영변 핵폐기안 등 구체적인 협상 내용보다는 협상 재개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2~3주 내로 열리게 될 실무협상이 또다른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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