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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부품 수출 승인 절차에 90일…日, 사실상 금수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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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ㆍ일 경제 전쟁이 일촉즉발로 치달으면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1일 한국에 반도체 제조 핵심 소재를 수출하는 것에 대해 규제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대한 일본 측의 보복 조치다. 일본측 소식통은 “사실상의 대한(對韓) 경제제재”라고 표현했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7시30분 녹실(綠室)회의를 열었다. 녹실회의란 경제부총리가 관계 부처 장관을 비공개로 불러 주요 경제 현안을 비공개로 조정하는 회의다. 홍 부총리가 주재한 이날 회의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외교부를 중심으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이슈를 관리해왔으나 일본 정부 조치에 따라 범정부적 대응 모드로 돌아섰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맨 뒤의 인물)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관련해 초치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야스마사 대사는 취재진을 피해 지하 4층 주차장을 이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교부로 들어갔다. [연합뉴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맨 뒤의 인물)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관련해 초치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야스마사 대사는 취재진을 피해 지하 4층 주차장을 이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교부로 들어갔다. [연합뉴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경제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 직접 관련되는 조치인 만큼 영향은 미미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관계 부처 및 기업들과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익명을 전제로 “한ㆍ일 양국은 경제적으로도 긴밀히 엮인 만큼 전면전은 막아야 한다”며 “한국 기업이 타격을 받는다면 일본에도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조치의 핵심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품목인 3가지 품목에 대해 4일부터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한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것이다. 승인 절차는 계약별로 약 90일이 소요된다. 사실상의 금수 조치라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엔 직격탄이다. 발표 직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가는 오전 11시 기준 4만6650원으로 전일 대비 0.74%p 하락했다.

일본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8개월 만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그간 (한ㆍ일 청구권 협정상의) 외교적 협의 및 중재위원회 구성 등을 한국 정부에 수차례 제의했으나 한국 정부는 무시로 일관했다”며 “일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다는 기조 하에 나온 조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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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 중공업 및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들에 잇달아 하급심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달 27일에도 서울고법 민사8부(설범식 부장판사)가 1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인당 9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일본 기업들의 한국 내 자산을 실제로 현금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 않느냐”라며 “일본으로서도 대응 조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9일 한ㆍ일 양국 기업이 자발적 출연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일본 정부가 거부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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