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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들이받고 잠적, 음주운전 무죄…제2의 이창명 사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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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카페를 들이받고 잠적한 60대 남성이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차로 카페를 들이받고 잠적한 60대 남성이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차로 카페를 들이받고 잠적한 60대 남성이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사고 7시간 이후 측정한 혈중알코올농도는 음주운전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2단독 조윤정 판사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이모(63)씨에게 지난달 25일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2월4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송파구의 한 커피숍 매장 전면 통유리를 차로 들이받았다. 이씨는 사고 직후 현장을 떠났고,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피의자를 특정하고 출석을 통보했다.

사고 후 7시간30분이 지난 그 날 오후 5시57분쯤 이뤄진 음주측정에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87%로 나타났다.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 이전에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오후 3시 이후 술을 마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세 번째 경찰 조사에서 “운전 전 소주 1병을 마셨고, 이후 오후 3시쯤 사무실에서 소주 1병을 또 마셨다”고 말을 바꿨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이씨가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172%의 술에 취한 상태로 차를 몰았다고 봤다. 운전자가 사고 전 섭취한 술의 종류와 음주량, 체중, 성별에 따라 계산해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하는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씨가 사고 당시 적어도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의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추정한 운전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최소 0.042%~최대 0.054%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윤창호법 시행 이전 단속 기준인 0.05%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제시된 것이다. 국과수는 “오후 3시쯤 소주 1병을 마시고 3시간 뒤 혈중알코올농도가 0.187%로 측정됐다고 해서 오전 8시쯤 마신 술로 인한 사고 발생 시각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172%로 확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음주 후 특정 시점에서의 혈중알코올농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 바, 피고인이 평균인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참조했다. 이어 “검사의 입증이 확신을 갖게 하는 정도에 충분히 이르지 못한 경우 비록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는 등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지난 2016년에도 있었다. 개그맨 이창명씨는 그해 4월 20일 오후 11시 18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앞 교차로에서 신호기가 설치된 지주를 차로 들이받은 후 차량을 두고 도주했다. 다음 날 경찰에 출석한 이씨는 “술을 못 마신다”며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이씨가 사고 전 지인들과 있던 식당 방에 술병이 들어가는 CCTV와 위드마크 공식으로 사고 당시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5%였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이씨는 결국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1, 2심 재판부는 “음주운전을 했다는 의심은 들지만, 검찰은 이씨가 술자리 동석자들과 균등하게 술을 나눠마셨을 것이라는 가정만 제시할 뿐 얼마만큼의 술을 마셨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씨가 섭취한 알코올의 양을 확정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는 지적이 있다. 윤예림 변호사(법률사무소 활)는 “최근 음주운전 처벌을 피하고자 ‘사고 후 자리를 뜨면 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는 분들이 많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라며 “주로 음주가 사람들과 이루어지고, 술집 CCTV나 참고인 진술 등을 통해 음주 사실이 밝혀지면 유죄 판결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음주운전 중 사고를 냈다가 도주한다면 오히려 일반 형량보다 더 큰 형량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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