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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희철의 졸음쉼터

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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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리(道理·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가 있는 것처럼, 운전자도 차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리(道理·도로의 이치)가 있다.

예컨대 편도 4차로에서, 맨 끝 차로는 1.5t 이상 화물차를 위한 길이다. 3차로는 승합차, 2차로는 승용차가 달린다. 2차로에서 추월하려면 1차로에 잠시 진입했다가 차량을 앞지른 뒤 2차로로 복귀해야 한다. 2차로에 공간이 있는데 1차로에서 달리면 지정차로제 위반이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 보면 고속도로 1차선에서 정속 주행하는 차량을 꽤나 자주 본다. 요즘 말로 ‘길막(길을 막고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고들 부르는 차로(遮路)행위다. 사고 차량이 없어도 이상하게 막히는 도로는 대부분 이런 차량이 범인이다.

1차로 ‘길막’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를 져버리는 행위다. 다수가 공유하는 도로를 개인이 홀로 독차지해서다. 공공재를 사적으로 점유하면서, 뒤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을 빼앗는다. 또 법적으로도 1차로 정속주행은 불법이다. 도로교통법 제60조 1항에 따라 범칙금과 벌점을 받는다.

패륜(悖倫·도리를 거스르는 행위)은 패륜을 낳는다. 도로교통법 3장 21조는 추월 시 왼쪽 차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뒤따르던 수많은 차량은 어쩔 수 없이 2차로로 이동해서 추월하는 수밖에 없다.

때론 후방에서 달리던 운전자가 초조하게 경적을 울려보지만 앞차 운전자가 곁눈질조차 하지 않고 전방을 주시한다면 도리가 없다. 이는 분노를 못 이기고 경적을 누르거나 상향등을 반복적으로 켜는 행위를 유발한다. 보복운전은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 대상이다. 1차로 길막 행위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범법자를 양산한다.

고속(高速)도로는 말 그대로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주행할 수 있도록 마련한 길이다. 하지만 1차로 정속주행 차량은 고속도로를 저속(低速)도로로 바꾼다. 오로지 정면만 바라보면서 1차로에서 저속으로 평온하게 정속 주행하는 한 대의 차량은 그렇게 좌충우돌 세상의 이치를 박살 내면서 달려간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