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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11개월 신유빈, 한국 여자탁구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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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탁구 천재소녀’가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한국 탁구 역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갈아치운 신유빈은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탁구 천재소녀’가 ‘국가대표’로 성장했다. 한국 탁구 역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갈아치운 신유빈은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009년 9월,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5세 소녀가 어른 못잖은 탁구 실력을 뽐냈다. 자신의 키 높이와 맞먹는 테이블에 딱 붙어 한국 탁구의 전설 현정화(50)와 거침없이 랠리를 주고받았다.소녀는 "가족들에게 사이좋게 나눠주려고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 6개를 따겠다"는 깜찍한 포부도 밝혔다.

5세 때 TV 출연했던 탁구 신동 #중3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 #내일 개막 코리아 오픈 출전 #“올림픽 메달 따고 BTS 만나고파”

그로부터 10년 후, 탁구 천재 소녀는 중학교 3학년생이 됐다. 탁구 테이블에도 못 미쳤던 키는 어느새 1m70cm를 바라볼 만큼 훌쩍 컸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된 신유빈(15·수원 청명중)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달 28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그를 만났다.

“제가 국가대표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신기하기만 해요.”

2009년 5세 때 신유빈의 모습. [사진 더 핑퐁]

2009년 5세 때 신유빈의 모습. [사진 더 핑퐁]

6세 때인 2010년 12월 그랜드 파이널스 시범 경기에서 드라이브 공격을 하는 신유빈. [사진 더 핑퐁]

6세 때인 2010년 12월 그랜드 파이널스 시범 경기에서 드라이브 공격을 하는 신유빈. [사진 더 핑퐁]

신유빈은 지난달 21일 끝난 아시아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서 전체 선수 중 3위에 올라 최연소 기록(14세 11개월 16일)을 세우며 국가대표가 됐다. 15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았던 유남규 여자대표팀 감독, 이에리사 전 태릉선수촌장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그는 서효원(32)·전지희(27)·양하은(25) 등과 함께 어엿한 여자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오른손 셰이크핸드 전형의 신유빈은 “인생의 첫 목표를 이뤘다.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머릿 속엔 탁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신유빈은 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개막하는 코리아 오픈 탁구대회에도 출전한다. 코리아 오픈은 내년 도쿄 올림픽의 전초전으로 불린다. 중국과 일본·독일 등 탁구 강국의 스타들이 대부분 출전한다.

2011년 한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 신유빈.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진 더 핑퐁]

2011년 한 전국 대회에서 우승했을 당시 신유빈.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진 더 핑퐁]

2014년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신유빈. [사진 TV 화면 캡처]

2014년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신유빈. [사진 TV 화면 캡처]

신유빈은 국내 탁구 역사상 최연소 관련 기록을 모두 다 갈아치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 지난 2013년엔 종합선수권 1회전에서 대학생 언니를 꺾었다. 지난 2017년 주니어 대표로 발탁됐고, 지난해엔 성인 대표팀 상비 1군에도 뽑혔다. 지난해 11월 벨기에 오픈에선 단식 4강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 12월 종합선수권에선 혼합 복식 준우승을 차지했다. 모두 최연소 기록이었다. 성인 대회에서도 승승장구한 비결을 물었더니 신유빈은 “강점이라곤 없다. 약점이 훨씬 많다. 아직 섬세한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탁구 관계자들은 신유빈이야말로 한국 탁구의 미래라고 말한다. 조언래(33) 여자대표팀 코치는 “체구가 큰 데다 각종 기술이 웬만한 성인 선수 못잖다. 포핸드 드라이브 같은 공격은 웬만해선 받아내기 힘들다. 최근엔 힘도 실렸다”고 평가했다. 장우진(24·미래에셋대우) 등 남자대표 선수들은 요즘 틈날 때마다 막내 신유빈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다.

신유빈이 ‘탁구 천재 소녀’로 주목받은 건 탁구인 출신 아버지 신수현(47)씨의 영향이 컸다. 그는 탁구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따라 걸음마를 떼자마자 자연스럽게 탁구를 익혔다. 신유빈은 “친구들이 만화영화를 볼 때 나는 탁구 영상을 봤다. 만화영화보다 탁구 비디오가 훨씬 더 재밌었다”며 “좋은 기술이 나오면 식사중에도 곧바로 그 자세를 따라 했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라켓을 들고 아빠와 랠리를 하던 탁구장은 그에겐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신유빈은 아빠와 매일 통화하면서 탁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의 영향에 신유빈이 좋아하는 음식도 닭발, 곱창, 간장게장 등 어른들이 주로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좋은 탁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도 더해졌다. 그저 탁구 좋아하는 소녀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해 해를 거듭하면서 운동량을 늘렸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신유빈은 "올해 초에 세계선수권 선발전 때도 국가대표 발탁 기회가 있었는데 막판에 부진해서 탈락했다. 긴장하니 실수가 많아져서 이번엔 속으로 후회없이 자신있게 맞부닥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했더니 이기더라"고 말했다.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신유빈은 요즘도 탁구가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신유빈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 달리기 같은 체력 훈련을 할 때는 힘든 것도 사실”이라며 “그래도 실력이 늘면서 게임이 잘 풀리니까 탁구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방송인 강호동, 유재석, 그룹 샤이니의 민호 등 예능 프로그램을 찍었을 당시 연예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하단 신유빈은 "솔직히 그땐 긴장해서 많이 울고, 쑥쓰러워서 말도 잘 못 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언니들과 훈련하면서 성격이 더 밝아졌다. 지금 하자 하면 아마 방송에서 더 잘했을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밝아진 신유빈은 그만큼 관심에 대한 부담도 즐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아서 부담 없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난 하나도 신경 안 썼다. 오히려 응원을 해주신다는 생각으로 그 힘을 받고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사춘기 소녀인 신유빈이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다. 그의 가방엔 친한 언니에게 선물 받은 방탄소년단의 사진이 달려 있었다. 방탄소년단 멤버 중에서도 뷔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여자 탁구 최고 기대주 신유빈. 진천=프리랜서 김성태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방탄소년단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자 그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떨린다”며 수줍어했다. 그만큼 '기분 좋은 상상'이 신유빈의 머릿 속에 가득하다.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신유빈은 이제 내년도 도쿄 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 그는 “지금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게 우선”이라며 “앞으로 기회는 많다. 언니·오빠들과 함께 선수촌에서 즐겁게 운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그 좋은 일은 이랬다. "될 수 있다면 맨 꼭대기에 서고 싶다. 가능한 올림픽 같은 큰 무대였으면 더 좋겠다. 상상만 해도 너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진천=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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