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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 지키는 기백이와 누리 "왜 얘들은 개로 태어났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32)

목조 구조물은 자연 친화적이고 멋스럽지만 오래 쓰려면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식이 쌓이면서 느슨해져 흔들거리기도 하고 이곳저곳 손볼 일이 많아진다. [사진 권대욱]

목조 구조물은 자연 친화적이고 멋스럽지만 오래 쓰려면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식이 쌓이면서 느슨해져 흔들거리기도 하고 이곳저곳 손볼 일이 많아진다. [사진 권대욱]

목조 주택이나 구조물이 안온하고 자연 친화적이라는 장점이 많지만, 관리를 잘 해줘야 한다. 오래 쓰려면 잘 관리할 수밖에 없다. 사람도 기계도 나무도 마찬가지다. 벤치나 식탁 데크 등 직접 만든 물건들 또한 돈을 떠나 수리해서 쓰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연식이 십여 년 되다 보니 벤치도 흔들거리고, 원탁 테이블이며 사각 테이블도 이곳저곳 손볼 일이 많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정 박사에게 부탁해 아침부터 손을 본다. 볼트와 너트가 녹슬어 유격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흔들거리고, 다시 조이려니 너무 삭아 새로 갈아 끼운다. 드릴로 구멍을 뚫고 새 볼트를 끼운다. 스테인리스니 오래 갈 것이다.

산막의 재미, 물건들 수리하는 일

원탁 테이블은 비 가리개를 씌워주고, 사각 테이블은 옮길 때 상판에 힘이 가지 않도록 보강목을 대줄 예정이며, 군데군데 부서진 데크 몇 곳도 새로 교체할 생각이다. 아래 데크 스피커 쪽 난간이 흔들려 스테인리스 4각 파이프를 철골빔에 용접으로 붙여 확실히 보강했다.

한군데 더 미심쩍어 추가로 보강한다. 늘 조마조마했었는데 이제 안심이 된다. 아래쪽 세미나실에 의자 스무개와 빔프로젝터용 전동 스크린을 설치했다.

산막의 또 다른 재미는 연식 오래된 산막 물건들을 고쳐 쓰는 일이다. 수리를 할 때는 가지고 있는 공구들 모두 총집합이다. [사진 권대욱]

산막의 또 다른 재미는 연식 오래된 산막 물건들을 고쳐 쓰는 일이다. 수리를 할 때는 가지고 있는 공구들 모두 총집합이다. [사진 권대욱]

이제 스피커와 노트북만 설치하면 된다. 훌륭한 세미나실이요, 홈시어터가 될 것이다. 아래쪽 누수된 무대 지붕은 예쁜 텐트로 덧씌우기로 한다. 늘 느끼지만 작업은 준비가 반이다. 자재, 공구, 부품, 모두 확실히 갖춘 후 시작해야 한다.

아니면 뭐가 맞지 않고, 모자라고, 사러 가고 시간 다 보낸다. 연식 오래된 산막 물건들 고쳐 쓰는 일, 산막의 또 다른 재미다. 수리할 때는 가지고 있는 공구들 모두 총집합이다.

파라솔대 하나 고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살대와 파라솔 꼭짓점을 연결하는 핀이 부러져 이곳저곳 수소문해 부속까지 구했는데, 막상 부러진 핀을 뽑으려니 뽑히지 않는다. 핀 하나 뽑으려 각종 공구를 총집합시키고 보니 웃음이 난다. 내 힘으론 도저히 안 돼서 아예 살대 전체를 바꾸기로 하고 공구들을 철수시켰다. 다행히 때마침 등장한 정 소령의 도움으로 깨끗이 해결했다. 고맙다 정 박사! 공구들도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했다.

쉬운 일 하나 없지만 이래서 또 일 한 꼭지 배운다. 자 이제 남은 일은 또 무엇이냐? 사람이 죽고 사는 일로만 걱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거창한 일로만 행복한 것도 또한 아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호호-당당-담담이다. 모르긴 몰라도 수세식 화장실 갖춘 닭장은 무애지지(無碍之地) 우리 집뿐일 듯하다. 아주 오래전 만들 때부터 위생에 각별해 바닥엔 철제 메시를 깔고 그 아래 샌드위치 패널을 경사지게 깔아 원활한 물청소가 가능토록 했다.

계절 가리지 않고 주기적으로 물청소해준다. 수도전 노즐 압을 높이고 쏘면 잘 쓸려나가고, 후일 이거 잘 묵히면 훌륭한 퇴비가 되는 것이니, 사람의 생각이란 얼마나 기특한 것인가?

무애지지로 완성된 닭장. 복사꽃, 벚꽃을 거쳐 장미 덩굴을 이뤘다. 푸른 잔디밭에 장미꽃 정원까지 갖췄으니, 이만하면 닭장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사진 권대욱]

무애지지로 완성된 닭장. 복사꽃, 벚꽃을 거쳐 장미 덩굴을 이뤘다. 푸른 잔디밭에 장미꽃 정원까지 갖췄으니, 이만하면 닭장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사진 권대욱]

당시 한참 빠져 읽던 남지심의 책 이름을 따 ‘솔바람 물결소리’라 했고, 산복숭아 나무를 심어 자연 그늘을 마련해 주었다. 뿐이랴, 푸른 잔디밭에 장미꽃 정원까지 갖췄으니 이만하면 가히 닭장의 전범이랄 만 하다. 개 두 마리 모두 묶어놓고 일주일에 이틀의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니, 닭들아 너희는 내게 무엇을 주려느냐?

닭이 어디에서 누구의 새끼로 태어나던 그것이 그들의 의지가 아니듯, 사람 또한 이와 같다. 누구는 왕후장상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찢어지게 가난한 비렁뱅이의 아이로 태어난다. 이 무엇인가? 무애지지의 닭장 앞에서 생각이 깊어진다.

기백이와 누리가 성치 않아 읍내 동물병원 원장(페친 김원홍 선생)님을 모셔왔다. 눈을 씻어주고 다리를 만져주고 예방주사를 맞히고 하다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얘들은 사람 아닌 개로 태어났고. 왜 하필 이 강원도 산간 오지에서 나를 주인으로 만났을까? 얘들은 무슨 생각하며 그 외로운 나날을 견딜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급기야는 우주와 생명과 공평과 공정으로 퍼진다.

모든 생명은 공평한가? 공정한가? 모든 사람은 공평한가? 그러기를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늘 아니오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다. 어떤 아이는 부잣집에 어떤 아이는 가난한 집에, 전쟁의 와중에 불구로 태어나기도 하고 왕후장상의 아들로 태어나기도 한다. 잘 생기게 나기도 하고 추하게 나기도 한다. 공평한 게 있다면 누구나 반드시 멸한다는 사실. 어느 누구도 영생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 정도일 게다.

모든 우주 존재가 다 그렇듯, 모든 생명은 반드시 멸하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이별하면 또 만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원칙이다. 이 세상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것이 아니라 평등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왜 이런 차이와 불평등이 생기는 걸까?

전생의 업, 카르마  

늘 산막을 비워두는 관계로 개들에게 산막을 맡기다 보니 만날 때마다 정겹고 든든하고 미안한 감정이 크다. 산막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누리와 기백. [사진 권대욱]

늘 산막을 비워두는 관계로 개들에게 산막을 맡기다 보니 만날 때마다 정겹고 든든하고 미안한 감정이 크다. 산막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누리와 기백. [사진 권대욱]

전생의 업, 카르마! 이 한마디로 모든 불평등의 이유와 열심히 선해야 할 이유를 갈파한 오타마 싣달타보다 논리적이고 정교한 논리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곡우도, 저 기백이와 누리도, 그리고 이 산막을 거쳐 간 수많은 생명도 모두 다 카르마인게다.

저 하늘은 누가 만들었는가? 저 별과 달은 누가 만들었는가? 138억년 전의 우주 태초의 빛은 무엇이며 그 이전은 무엇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세상.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우주에서 나의 존재는 얼마나 가벼운가? 나는 무언가? 그냥 한세상 왔다 돌아가면 되는가?

너는 무엇이고 그는 또 무엇인가? 너와 나는 또 무엇인가? 이런 원초적 의문을 간직하면서도 세상은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또 존재해 갈 것이다. 앞날을 알지 못하면서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간다.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삶의 숙명이거늘. 이 세상 모든 철학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 존재 이유와 지향점을 밝히는 것일 것이다.

누리와 기백이의 진료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 너희는 무슨 이유로 이 세상에 나와 이런 인연으로 나와 만나는가’이다. 참으로 알 수 없고 알 수 없다. 나라는 존재의 시원이 우주의 역사만큼이나 창연하다는 생각이 다소 위안이 될 뿐. 아니라면 인생 일장춘몽.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호접몽과 다를 바 없는 인생. 사랑과 자비, 화해와 용서가 그 대안이지 싶다. 선한 의지, 호연지기, 역사의식 또한 다름 아닐 것이다. 산막을 비워두는 관계로 개들에게 산막을 맡기다 보니 만날 때마다 정겹고 든든하고 미안하고 뭐 그런 살가운 감정이 무척 크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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