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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스마트팜 장애인 청년농부들 "장애 잊고 예쁜 식용꽃 키워요"

중앙일보

입력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서울농원.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농부 7명이 블루베리와 식용꽃 등을 가꾸고 있다. 왼쪽부터 김도담(21), 강병진(26), 이해빈(21·여)씨. 고석현 기자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서울농원.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농부 7명이 블루베리와 식용꽃 등을 가꾸고 있다. 왼쪽부터 김도담(21), 강병진(26), 이해빈(21·여)씨. 고석현 기자

지난 26일 오전 10시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연평리 서울농원. '몸빼 바지'를 입은 청년 농부 7명이 노란 메리골드 꽃 가꾸기에 한창이었다. 세 명은 꽃을 수확하고 네 명은 곁에서 조리개로 물을 뿌렸다. 이 가운데 강병진(26)씨가 “아이고~ 바구니가 꽉 찼네. 선생님 저 한 번도 안 쉬고 했어요”라고 하자 옆에 있던 지도사는 “옳지 잘했어요” 하며 칭찬했다.

[함께하는 세상] #자폐·정신지체 등 발달장애인 7명 #서울농원서 식용꽃·블루베리 농사 #“사회 약자서 ‘돌봄 주체’로 성장” #스트레스 줄고 생활습관도 바뀌어

이곳 청년 농부는 모두 1~3급의 중증장애인으로, 자폐나 지적장애 등 발달 장애가 있다. 비장애인 지도사 3명의 도움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장경언(52) 서울농원 원장은 “장애 정도가 심해 다른 여러 훈련기관에선 입소를 꺼리는 장애인”이라며 “하지만 모두 농장 일에 잘 적응해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원장은 14년간 장애인 재활교육을 해온 전문가다.

운영 초기라 아직 수확과 판매가 안정적이지는 않다. 생산한 식용꽃 메리골드는 말리는 등 가공을 통해 꽃차로 만든다. 현재까지 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은 농장 관계자들이 선물용으로 구매했다. 고석현 기자

운영 초기라 아직 수확과 판매가 안정적이지는 않다. 생산한 식용꽃 메리골드는 말리는 등 가공을 통해 꽃차로 만든다. 현재까지 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은 농장 관계자들이 선물용으로 구매했다. 고석현 기자

서울농원은 서울시립 장애인영농직업재활시설로 1만2231㎡(3700평)규모다. 블루베리와 식용꽃(비올라·메리골드·꽃양귀비 등)·옥수수·딸기 등을 키운다. 푸르메재단이 지난 3월부터 운영을 맡아 지난 18일 본격 개장했다.

이곳의 특징은 또 있다. ICT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팜’이라는 점이다. 기후·토양의 상태에 따라 농장의 환경을 컴퓨터가 자동으로 바꾼다. 하우스 내부와 토양엔 측정기가 설치돼 있어, 실시간 기록을 서버에 전달한다. 서버에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평균치를 기준으로 부족하거나 넘지는 부분을 조절한다. 내부 온도가 평균보다 높아 더울 땐 보온덮개가 열리고, 토양에 수분이 부족할 땐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식이다.

장 원장은 “ICT 시설 덕분에 농사 경험이 없고 숙련되지 않은 장애인 농부도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정도의 단순 작업만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농부들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장 원장은 “약자로 보살핌을 받아왔던 이들이 식물을 돌보며 ‘돌봄의 주체’로서 거듭나고 있고 일상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많은 장애인은 집이나 복지관 등 한정된 공간에서 머문다. 직업 훈련도 대부분 가내수공업 수준이라 운동량이 적다. 하지만 이곳에선 농사일로 온몸의 근육을 쓰기 때문에 ‘혈기 왕성한’ 20대 장애인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생활 습관도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기후·토양의 상태에 따라 농장의 환경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스마트팜’이다. 덕분에 농사 경험이 없고 숙련되지 않은 장애인 농부들도 쉽게 적응 할 수 있다. 고석현 기자

이곳은 기후·토양의 상태에 따라 농장의 환경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스마트팜’이다. 덕분에 농사 경험이 없고 숙련되지 않은 장애인 농부들도 쉽게 적응 할 수 있다. 고석현 기자

토양엔 수분과 영양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실시간으로 측정치를 서버로 보내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동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준다. 고석현 기자

토양엔 수분과 영양 상태를 확인하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실시간으로 측정치를 서버로 보내고,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동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준다. 고석현 기자

어려움도 많다. 흐린 날엔 감정 기복이 심해져 소리를 지르거나 한 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그럴 땐 지도사가 장애인을 몇 분간 힘줘 안아주면서 안심시킨다. 강선희(26·여) 지도사는 “장애인 농부들이 안정을 찾아 맡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지난 몇 달간 꽃 수확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농원의 남은 과제는 농산물의 판로 확보다. 농장 운영 초기라 아직 수확과 판매가 안정적이지 않다. 현재까지 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은 농장 관계자들이 선물용으로 샀다. 장애인 농부의 평균 월급은 10만원인데, 이달 처음으로 푸르메재단의 지원 없이 농산물 판매 수익으로 인건비를 지급했다. 장 원장은 “오는 7월엔 식품가공업 허가를 받아 식용 꽃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계획”이라며 “장애인 농부들이 시민과의 접점을 늘릴 수 있는 꽃차만들기·농사짓기 등 체험프로그램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양주=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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