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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오성과 한음도 '금수저'였다···실력보다 중요했던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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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 유년시절에 이순신이나 세종대왕만큼이나 많이 접하는 조선시대 인물입니다. 장난기 가득했던 두 친구가 나중엔 국가를 책임지는 인재로 자라나는 과정이 교육용으로 좋은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박수동 화백의 『오성과 한음』은 다른 만화책을 볼 때보다 부모님의 눈치를 덜 봤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교훈보다는 주변인을 골탕먹이는 재미가 중심이지만 부모님은 오성과 한음이니까 보게 둔 것이겠죠.

박재동 화백의 만화 『오성과 한음』

박재동 화백의 만화 『오성과 한음』

그런데 대학에서 과제를 하다가 이들의 가계(家係)를 보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일단 이항복을 보면 아버지는 형조판서(지금의 법무부 장관)를 지낸 이몽량이고, 옆집엔 영의정(지금의 국무총리)을 지낸 권철이 살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항복을 기특하게 봐온 권철은 아들에게 이항복을 사위로 삼게 했는데 그는 권율입니다. 권율은 한성부 판윤(서울시장), 호조판서(경제부총리), 충청도관찰사(충남북 도지사)를 거쳐 임진왜란 때는 전군을 총괄하는 도원수를 지낸 권력의 핵심 인사였죠.
이덕형도 외삼촌 유전과 장인인 이산해가 모두 영의정을 지냈는데, 특히 이산해는 선조 후반부터 광해군 시대까지 여당이었던 북인의 영수이기도 했습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즉, 이항복과 이덕형은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집안인데, 조선이라는 사회를 생각해볼 때 이들의 성공이 단순히 실력만으로 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 것이죠.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작동한 조선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 [연합뉴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 [연합뉴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배경이 중심되는 사회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지연, 혈연, 학연을 따지는 한국 특유의 문화가 조선시대의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초기만 해도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폭넓게 존재했습니다.

신분 제도가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건국 후 채택된 신분제는 양천제입니다.  중국 수ㆍ당 시대에 확립된 국가 운용시스템인데 이에 따르면 국가에는 양인(良人ㆍ자유민)과 천인(賤人ㆍ비자유민)이라는 2대 신분만 존재할 뿐입니다. 양인은 노비를 제외한 전부를 가리킵니다. 학계에선 조선 초 노비의 비율을 30~40% 정도로 추정합니다. 즉, 최소한 절반 이상의 국민이 과거도 보고 고관도 될 수 있다는 얘기죠

양반은 동반(東班ㆍ문관)과 서반(西班ㆍ무관)을 합쳐 부른 말이었습니다. 문·무반이라는 용어 자체가 실력 사회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경종(976년) 때인데 이전까지 혈통을 중시하던 골품제의 전통이 무너지고, 혈통뿐 아니라 능력도 중시하는 관료제가 수립되면서 탄생한 말이니까요.

즉 양반이라는 건 신분이 아니라 ‘관료 집단’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양반의 대립 개념은 상놈ㆍ천민이 아니라 무직자였습니다. 당시엔 서인(庶人) 또는 백성(百姓)으로 불렸습니다. 출신이 한미해도 양인이 관직에 오르면 양반으로 불렸던 셈입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조선 초기만 해도 무관은 문관과 함께 양반을 구성했으나 차츰 신분이 격하됐다. [중앙포토]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조선 초기만 해도 무관은 문관과 함께 양반을 구성했으나 차츰 신분이 격하됐다. [중앙포토]

물론 양인 내부에서도 비공식적인 서열이 존재했습니다. 다만 서열은 혈통이 아니라 직업의 귀천에 따라 결정됐습니다. 김성우 교수에 따르면 당시의 양인의 서열은 ①관원 ②고관 자제나 생원ㆍ진사, 서리 ③ 농업에 종사하는 양인 ④ 상공인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존재한 신분이라기보다 당시 인식에 따른 사회적 계층 정도였습니다.
가장 숫자가 많은 것은 ③번 그룹이었습니다. 조선 정부는 양인에게 세금을 거두고 군역(軍役)을 맡기는 대신 사환권(仕宦權), 즉 관료로 임용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③번 그룹은 ①번과 ②번으로의 진출을 노리는 대기자이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일반 국민과 연결지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②번 그룹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특징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계층입니다.
당시엔 ‘문음(門蔭)’이라고 해서 유력 가문에 대한 혜택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고관의 자제들은 사실상 특별 전형을 통해 서리(胥吏)로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 서리는 지방 관청에서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직입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를 잘 두면 쉽게 공공기관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이죠. 다만 서리는 조선시대엔 그리 높게 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고관 자제들은 어떻게든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나가려고 했죠.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SBS드라마 '녹두꽃'의 주인공인 백이강(조정석, 왼쪽)과 백이현(윤시윤). 중인 출신인 이들은 신분 차별을 받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과거를 치르는 것이 보장되어 있었다. [SBS]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SBS드라마 '녹두꽃'의 주인공인 백이강(조정석, 왼쪽)과 백이현(윤시윤). 중인 출신인 이들은 신분 차별을 받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과거를 치르는 것이 보장되어 있었다. [SBS]

④그룹도 노비가 아니고 엄연히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양인이지만 6~9급의 기술직이나 무관으로 취업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조선 세조 대까지는 기술직이나 무관이 무시되지 않았기에 이들도 엄연히 양반으로 대우받았습니다.

이렇게 각 신분 안에서 계층 구별은 집안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따른 성취였고, 이러한 신분 이동의 개방성은 조선 초기의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결속을 가져다준 조건이었습니다. 이처럼 개방성을 보장해준 것은 군주를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 국가의 성공 여부는 양인층이 세금과 군역(軍役)에 얼마나 활발하게 참여하는지에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흔들리는 신분의 사다리  

정암 조광조 적려 유허비. 전남 화순 능주 조광조 유배지의 영정.[중앙포토]

정암 조광조 적려 유허비. 전남 화순 능주 조광조 유배지의 영정.[중앙포토]

양천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성종 대입니다.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들이 대거 중앙 관료로 진출했는데, 성리학적 지식으로 무장된 이들은 자부심도 높았고, 자신들이 중심이 돼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도 강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술직 양반을 중인 신분으로 격하시키고, 자신들처럼 문사적 기능을 담당하는 계층은 사족(士族)이고 나머지는 서족(庶族)이라며 차등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고위직으로의 진출도 사족이 독점하는 등 계층간 이동이 폐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부터 양반은 사족을 가리키는 단어가 됐고, 서족은 중인이나 노비와 동급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묶어 평범하다는 의미로 ‘상놈(常漢)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결국 훈구파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사림이 조정을 장악한 명종 5년(1550년)엔 아예 사족에 대한 정의를 법령으로 지정합니다. “친가나 외가에서 4조(아버지~고조부) 내외에서 한쪽이라도 과거나 음서로 정6품 이상 진출한 관료를 배출한 가문의 후손이나 현재 생원이나 진사”는 사족이 됐는데 이전까지 관념적으로 통용되던 사회적 계층을 법적으로 공인해 준 것이죠.

충남 논산 돈암서원. 서원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사림의 세력을 형성하는 근거지이기도 했다. [뉴스1]

충남 논산 돈암서원. 서원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사림의 세력을 형성하는 근거지이기도 했다. [뉴스1]

그래도 여전히 ③번 그룹이 과거를 통해 관직으로 진출해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는 열려 있었습니다. 이것마저 무너진 것은 연산군 대였습니다.
연산군 재임기에 왕실 및 중앙 재정의 지출이 급증하면서 정부의 만성적인 적자가 심화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각종 세금을 대거 증액했는데 경제 기반이 취약한 일반 양인층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때 상당수는 세금 납부와 군역을 지는 대신 차라리 국가 기관이나 유력층의 노비로 편입하는 길을 택했고, 이에 따라 노비층이 많이 늘어납니다. 반면 양인층 몰락이 가속화되고 노비가 늘어나면서 국가 기관이나 유력층의 경제력은 더 늘어나는 역설적 상황도 나타났습니다.

과거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특권 

이런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 됩니다. 당장 세금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양인층에겐 학업은 사치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대부들은 겉으로는 물욕에 거리를 두고 참된 도를 깨우치라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경제적 기반을 증진하는 데 주력합니다. 전략적 혼인관계로 재산을 불린다든지, 자신의 노비를 양인과 결혼시켜 그사이에 낳은 자녀를 노비로 확보하는 ’우생학적‘ 방법까지 고안합니다.

실제로 이정수·김희호 교수는 1590년부터 1900년까지 영호남의 여덟 집안의 전답매매 내역 1810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 기간 양반층의 토지는 약 47%가 증가했지만 중인·상민·노비는 30~8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조선시대 경북과 전남 지역 여덟 가문의 1590~1900년 토지 매매 이력. 이정수·김희호『조선후기 양반층의 토지소유규모 변화』에서 인용

조선시대 경북과 전남 지역 여덟 가문의 1590~1900년 토지 매매 이력. 이정수·김희호『조선후기 양반층의 토지소유규모 변화』에서 인용

그 결과 많은 유력 양반 집안은 거대 재산을 축적하는데, 퇴계 이황의 경우엔 36만 3500평의 토지와 367명(노 203명, 비 164명)의 노비를 둡니다. ("부귀를 경계하라"던 퇴계 이황은 어떻게 재산을 늘렸나)

당시 생계 걱정 없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가문의 평균 재산은 전답 300~500두락(약 3만평)과 노비 100여명이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었던 조선 초기의 건강성은 거세돼 버린 거죠.

다시 이항복과 이덕형의 이야기입니다.
이항복은 16세에 고아가 돼 어려움도 있었지만 24세에 과거에 급제합니다. 부모도 없고 직업도 없는 그가 처자를 두고도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는 유력 가문인 처가(19세 결혼)의 도움이 적지 않았겠죠.
이항복과 이덕형은 과거 급제 후 이율곡의 추천을 받아 나란히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게 되는데, 이는 능력 있는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한동안 공부에 전념하게 한 제도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연수라고 할까요. 사가독서를 마친 이들은 최고 엘리트 부서로 꼽히는 홍문관에서 벼슬을 시작하게 됩니다.
과연 이들의 과거 성적만으로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었을까요

청탁은 없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숙명여대를 방문,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0일 오후 숙명여대를 방문,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아들 자랑‘이 정치적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황 대표는 20일 숙명여대 특강에서 "학점은 3점이 안 됐고 토익(TOEIC) 점수도 800점이었는데, 대기업 다섯 군데 붙었다"면서 "고교 영자신문반 편집장, 장애 학생 대상 봉사, 대학 조기축구회 조직 등 경력이 좋은 점수를 얻은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황 대표는 "학점이나 토익 같은 점수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자신의 취미·특기 등을 살려 나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황 대표의 발언에 여론이 냉랭했던 것은 고교에서 영자신문반 편집을 하고 장애 학생 대상 봉사를 다니며 대학 조기축구회 등의 스펙 쌓기조차도 사치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조기 축구 대신 알바 전선에 나가야 하는 학생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니깐요.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하면서 취미 활동을 병행하며 공부에 전념하는 환경이 이젠 ‘특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도 한국고용정보원이란 공공기관에 귀걸이를 한 사진을 붙인 채 1:1 경쟁률로 합격해 논란이 됐습니다. 또 2007년 1월 입사 후 14개월 만인 2008년 3월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휴직하고 나서 이후 복직한 것을 두고서도 뒷말이 나왔습니다. 과연 '누구의 아들'이라는 배경 없이 가능한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죠. 당시 권재철 한국고용정보원장은 문 대통령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때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017년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의 응시원서와 이력서 위변조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017년 4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의 응시원서와 이력서 위변조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조선시대 양반은 과거를 통해 신분이 결정되는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생각했고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사실 동시대의 유럽 등과 비교해도 공정한 선발시스템이자 신분 이동의 사다리이긴 했습니다. 그 사다리를 치운 건 대단한 부정부패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면에 작동하는 각종 '특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겨난 누적된 결과였습니다.

조선 건국 후 300년이 지난 시점에 올라온 한 상소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정치권에서 가졌으면 합니다.

“큰 도의 감사와 큰 고을의 수령은 오직 이력(履歷)의 다소에 따라서 임명되고, 맑은 벼슬과 아름다운 직책은 단지 문벌이 좋은 자제들만 임명합니다·사람을 등용하는 길이 넓지 않은 것은 이미 고질적인 폐단이 되었습니다.” (『정조실록』 4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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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김성우 『양천제설의 대두와 조선 초기 사회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정수·김희호 『조선후기 양반층의 토지소유규모 변화』, 지승종 『조선초기 신분개념에 대하여』, 정재훈 『조선 중기 사족의 위상』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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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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