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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 목줄 안했다고 싸우다 폭행죄…"증거 없어 취소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애완견에 목줄을 안 한 개 주인과 싸우다 폭행죄로 기소유예된 사건과 관련, 헌법재판소가 증거가 없으니 이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귀여운 애완견에게도 목줄을 안했다가 행인들 간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사진 박사라 기자.

귀여운 애완견에게도 목줄을 안했다가 행인들 간 싸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사진 박사라 기자.

헌법재판소는 28일 폭행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명(9명 중 1명 출장 중)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A씨가 폭행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기소유예처분을 내려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목줄 하고 다녀야죠" "뭐 이 새끼야"

 A씨는 2017년 5월 목줄을 하지 않고 개를 풀어놓은 개 주인에게 “개 목줄을 하고 다니셔야죠”라고 말했다가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견주는 A씨에게 “뭐야! 이 새끼가”라고 하면서 달려와 목을 졸라 풀숲으로 쓰러뜨렸고, 오른쪽 주먹으로 A씨의 왼쪽 뺨을 1회 때렸다. 전주지검은 견주에 대해 상해 혐의를 인정해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검찰은 A씨도 쌍방폭행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죄가 인정되지만, 범행 후 정황이나 동기 등을 참작해 검사가 재판에 넘기지 않고 선처하는 처분이다. 전과가 남진 않지만, 범죄경력을 조회하면 기록이 남는다. 그래서 기소유예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검찰 제출한 영상에 폭행 장면 부실

헌재는 A씨가 게 주인을 폭행했다며 검찰이 제시한 CCTV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영상이 먼 곳에서 촬영되고 화질도 좋지 않아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멱살을 잡히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견주의 진술도 믿을 수 없다고 봤다. A씨는 일관되게 멱살을 잡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견주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나도 쌍방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강아지에게도 목줄을 안했다가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사진 박사라 기자.

귀여운 강아지에게도 목줄을 안했다가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 사진 박사라 기자.

헌재는 “A씨의 유형력 행사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데도 검찰은 폭행 혐의가 인정됨을 전제로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으므로, 수사가 미진한 중대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소유예처분을 할 때 사안이 가볍다고 하더라도 피의사실을 인정하는데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헌재는 특수절도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한 중국인이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취소 결정했다. 해당 중국인은 남의 택배 상자를 무단으로 가져갔다가 6개월 뒤 돌려줬다는 혐의를 받았다. 헌재는 그가 금전적인 문제로 지인을 찾아갔다가 연락이 되지 않자 택배 상자를 가져온 것으로 보고 “절도의 고의 및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검찰은 두 사건을 재수사해 기소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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