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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중심, 철도] ‘모갈 1호’에서 첨단 고속열차까지‘국민의 발’ 120년 역사를 달려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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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철도의 날 계기로 돌아본 어제와 오늘

우리 철도는 2004년 세계 5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한 데 이어 우 리 자체기술로 첨단고속열차인 KTX 산천을 개발했다. [중앙포토]

우리 철도는 2004년 세계 5번째로 고속철도를 개통한 데 이어 우 리 자체기술로 첨단고속열차인 KTX 산천을 개발했다. [중앙포토]

1899년 9월 18일.

"일제의 잔재 지우고 우리의 철도 역사 발굴” # 작년부터 철도의 날 9월 18일→ 6월 28일로 #"고속철도 강국 위상 걸맞은 철도의 날” 평가

서울 노량진에서 인천 제물포를 연결하는 총연장 33.2㎞의 경인선 철도가 개통했다. 당시 ‘모갈(Mogul) 1호’라는 이름이 붙은 증기기관차가 목재로 된 객차 3량을 달고 경인선 구간을 시속 20~30㎞ 속도로 운행했다. 모갈이라는 명칭에는 ‘거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찻길이 뚫리고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순간이다.

세계 최초의 철도로 불리는 영국 스톡턴~달링턴 사이 40㎞ 구간을 스티븐슨이 제작한 증기기관차가 시속 16㎞로 주행한 지 74년 만이기도 하다.

경인선 개통 당시 최초로 운행한 모갈 1호. [사진 코레일]

경인선 개통 당시 최초로 운행한 모갈 1호. [사진 코레일]

우리나라, 즉 당시 조선에 기차가 처음 선을 보였을 즈음 땅에서 다니는 교통수단이라고는 우마차, 가마, 인력거, 조랑말 등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거대한 철제 몸통에 승객과 짐을 잔뜩 싣고, 철로 된 길을 달리는 열차는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사실 조선 조정에 철도가 소개된 건 경인선 개통 23년 전인 1876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일동기유’의 저자인 김기수가 우리나라에 철도를 처음 알린 사람으로 적혀 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빌미로 이듬해 일본과 체결한 강화도 조약에 따라 예조 참의 김기수가 수신사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철도를 본 것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4년 전인 1872년 철도가 개통됐다.

그해 여름 귀국한 김기수는 수신사일기로 쓴 ‘일동기유’에 요코하마에서 신바시까지 기차를 탄 시승기를 적었다. 책에는 기차를 ‘화륜거(火輪車)’로 적었다고 한다. 아마도 증기를 내뿜으며 철로 된 바퀴를 굴려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 같다.

이후 조정에서는 서구에서 운행되고 있는 철도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철도부설을 검토하거나 추진하려던 움직임도 있었다고 한다. 마침내 1896년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모스가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얻었지만 자금조달에 실패한 데다, 일본이 ‘경인철도 건설의 일본 정부 사전 승낙 필요의 건’이라는 항의 공문을 보내 조약 위반 등을 주장하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일장기와 성조기가 눈에 띈다. 경인선 건설에는 우리 국민이 대거 동원됐다. [사진 코레일]

일장기와 성조기가 눈에 띈다. 경인선 건설에는 우리 국민이 대거 동원됐다. [사진 코레일]

일본이 1897년 ‘경인철도 인수조합’을 결성해 모스로부터 경인선 철도 부설권을 사들인 것이다. 이로부터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2년 뒤 경인선 철도가 개통했다.

2년 전인 2017년까지 매년 ‘9월 18일’을 ‘철도의 날’로 기념한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가 완공된 날을 축하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철도의 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우선 철도의 날을 정한 건 우리가 아닌 일본이었다. 일제 치하이던 1937년 경인선 개통을 기념한다며 ‘9월 18일’을 ‘철도 기념일’로 선포한 것이다. 이날이면 철도 종사자들을 모아 신사참배를 했다고 한다. 이게 ‘철도의 날’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일제가 건설한 철도는 우리나라의 물자를 수탈하고, 중국·러시아 등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병력을 대량으로 실어나르는 수단이었다. 코레일에 따르면 당시 대한매일신보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철도가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리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

이 시절 일제의 수탈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철도를 부설한다며 땅을 헐값에 사들이고, 주민들을 철도 건설에 강제 동원도 했다. 철도 건설을 위한 목재 조달 탓에 산림도 크게 훼손됐다.

이처럼 ‘철도의 날’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제기되면서 새로이 ‘철도의 날’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선순위로 거론된 게 ‘6월 28일’이다. 이날은 1894년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현재의 국토교통부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공무아문’ 산하에 철도국이 처음 만들어진 날이다. 당시 김홍집을 중심으로 하는 개화파는 의정부 산하에 중앙부처를 이루는 8개의 아문을 설치하고 근대적 개혁인 ‘갑오개혁’을 추진했다.

‘조선왕조실록’ 중 고종실록 제31권에는 철도국의 역할을 ‘도로를 측량하여 철도가설에 대처하는 등의 일을 맡아본다’고 기록돼 있다. 철도업계에서는 “우리 민족 스스로 철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물류와 교통망 구축을 위한 자주적인 노력과 실천을 보여준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 2016년 10월 26명의 국회의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기관인 철도국 창설일(6월 28일)을 ‘철도의 날’로 삼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숭고한 자주성을 회복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 발의안을 계기로 이듬해 5월 국무회의 심의와 의결이 이뤄졌고, 마침내 ‘6월 28일’을 ‘철도의 날’로 새로이 지정하게 됐다.

프랑스, 독일, 일본, 스페인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2004년 고속철도를 개통했고, KTX산천과 HEMU-430 등 첨단 고속열차도 자체 개발한 우리나라 철도의 위상을 고려하면 ‘철도의 날’ 재지정은 의미가 깊다는 목소리가 철도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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