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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최저임금 차등적용 무산…시장현실 또 외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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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저임금 심의 법정기한인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불참한 사용자 위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사용자 위원들은 지난 26일 최저임금이 업종별 차등적용이 무산된 데 반발해 집단퇴장했으며 27일 회의에도 불참했다. [뉴시스]

최저임금 심의 법정기한인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불참한 사용자 위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사용자 위원들은 지난 26일 최저임금이 업종별 차등적용이 무산된 데 반발해 집단퇴장했으며 27일 회의에도 불참했다. [뉴시스]

최저임금의 업종·규모별 차등적용이 결국 무산됐다. 26일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다. 따라서 내년에도 편의점을 비롯한 영세 사업장과 대기업에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대기업·영세업체 지불능력 격차 #숙박음식업 43% 최저임금 못받아 #심의 전면 보이콧 사용자위원들 #‘차후 계속 논의’ 조건부 복귀할 듯

이에 반발해 사용자 위원 9명은 27일 제6차 전원회의에 불참했다. 전날 집단 퇴장에 이어 전면 보이콧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계의 반발은 장외에서도 계속됐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이번에 공익위원이 전원 교체돼 기대했는데, (차등 적용은 안 된다고) 쐐기를 박아버리니 할 말이 없다”고 비판했다.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가 27일 제주도에서 연 ‘중소기업 현안 관련 간담회’에서다.

회의 보이콧에 대해 경영계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사용자 위원들은 최저임금위가 꾸려진 뒤 두 가지 사안에 대한 매듭을 요구했다. 업종·규모별 차등 적용과 시간·월급 병기를 폐지하고 시간급만 공표하는 방안이다. 지난해 심의 때도 다뤘다. 그러나 당시에는 공익위원 주도로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논의의 문을 닫았다. 결국 올해 심의에서 다시 불거졌다.

경영계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영세 사업장의 지불능력과 노동생산성 격차를 고려해서 대기업이나 제조업과 다르게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자 위원들은 “숙박음식업 근로자의 43%,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36%가 최저임금조차 못 받고 있다”며 “이는 최근 2년 동안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이 해당 업종·규모의 기업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현장에 적용 가능한 임금정책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노동계의 생각은 다르다. 근로자 위원들은 “최저임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저임금 노동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시간급과 월급을 함께 공표하는 문제와 관련, 경영계는 “주휴수당을 둘러싼 다툼이 일선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휴수당을 포함해 계산하는 월급 환산액을 공표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긴다”는 논리를 폈다.

노동계는 “주휴수당은 최저임금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정한 사안으로 별건”이라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26일 전원회의 투표 결과 공익위원 대다수가 표면상으로 노동계와 뜻을 같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동의하는지는 의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익위원은 “최저임금 심의결정의 법정 시한(27일)을 넘기는 상황에서 차등 적용과 월급병기 문제에만 매달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봉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추후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사용자 위원의 심의 보이콧에 따른 최저임금위의 파행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심의기간을 늦추더라도 다음 달 15일까지는 결정해야 최저임금의 법적 효력이 생긴다. 또 사용자 위원이 없는 상태에서 근로자 위원의 입김만 심의과정에 작용하게 되면 내년 최저임금이 또다시 확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외부 시선도 곱지 않다.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27일 입장문을 내고 “최저임금위 근로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며 “서로 상충하는 이해관계 때문에 협의가 순탄하지 않겠지만 지난 2년의 과오를 상기한다면 내년 최저임금 논의에 임하는 자세는 예년과 크게 달라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경영계의 입장도 다소 유연해졌다. 중기중앙회는 서귀포 간담회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의 차후 논의 계획 단서 조항이라도 달고 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논의를 이어간다고 약속하면 복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정민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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