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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조국, 그리고 말 값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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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아무튼 발언록이 남아있었다. “청와대가 특유의 오기를 부리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차마 하지 못했던 일이다.” “선거의 중립을 내팽개치고 어떻게든 여당에 유리한 판을 짜보겠다는 불순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정권 말 측근과 친인척 비리를 덮어보겠다고 방패막이 인사를 하자는 것인가.” “민정수석을 곧바로 법무부 장관으로 내리꽂으려는 최악의 회전문 인사, 최악의 불량 코드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심을 가진 인사로 민심과 대립한다면 나머지 잔여 임기가 대통령에게 불안한 임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조국-윤석열 조합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입장인가 싶겠다. 실제론 8년 전 이맘때 권재진-한상대 조합을 두고 민주당 긴급 의총에서 쏟아진 말이다. 발언자는 각각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노영민), 경제부총리 후보군(김진표), 그리고 현 정권의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전병헌)이다. 당시 대표(손학규)는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는 건 힘의 정치다. 그 힘의 정치는 대통령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성이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권력의 민주성도 그런가엔 회의하게 된다. ‘내로남불’의 무한루프도 한 요인이다. 권력의 논리를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들이 단죄한 잘못을 자신들도 반복하고 있으니 믿을만한 사람들을 요소요소에 박아두어야 할 절실함이 있을 거다. 하지만 내리막 권력에 충성심은 심리적 사치재일 뿐이다. 대통령사가 이를 증명해왔다.

그래도 달라졌으면 하는 게 있다. “말하는 자는 행해야 하고, 행하는 자만이 말할 수 있다”(나심 탈레브)는 쪽으로 말이다. 기대치가 너무 높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과거 발언과 엇나갈 땐 계면쩍어라도 했으면 좋겠다. 비록 가장(假裝)이더라도 말이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