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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탄소 0’ 수소경제, 원자력 없이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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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정부의 ‘수소 로드맵’ 현실성 있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수소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수소 연료탱크와 연료전지 스택으로 구성된 수소차 넥쏘 하부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19 대한민국 수소엑스포’를 찾은 관람객들이 현대자동차 부스에서 수소 연료탱크와 연료전지 스택으로 구성된 수소차 넥쏘 하부 구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2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국회수소경제포럼 주최로 사흘간 열린 ‘2019 대한민국 수소 엑스포’의 마지막 날. 현대차·두산·효성·한국가스공사 등 관련 기업과 스타트업, 지자체 등이 모여 수소 산업의 현주소를 소개한 자리였다. 가장 인기 있는 전시는 역시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였다. 일반인과 중·고생들이 넥쏘 완성차와 부품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행사장 한쪽에서 열리고 있는 수소 콘퍼런스는 200석 좌석에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수소 확보 위해 화석연료 의존 역설 #환경단체마저 정부 계획에 비판적 #‘미래형 원자로’ 대안 될 수 있지만 #탈원전 기조 속 로드맵에서 배제돼

수소차 홍보 대사를 자처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개회식에 “인류의 미래이자 대한민국 신성장 동력인 수소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축전을 보냈다. 정부는 2040년까지 수소차 620만대 보급, 수소충전소 1200개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지난 1월 발표했다.

수소경제에 비판적인 환경단체

로드맵은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는 무모한 투자라는 목소리가 높다. 특이한 점은 이런 비판이 현 정부 지지세력이라고도 볼 수 있는 환경단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대표적 비판론자가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이다. 양이 처장은 “전 세계에서 수소경제는 경제성이 의심받고 있는데, 세계 흐름에 맞지 않게 밀고 나가는 것은 스스로 갈라파고스의 함정을 파는 일”이라고 말한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도 “규모의 경제를 갖춰나가는 것은 수소차가 아니라 전기차라는 점에서 수소 로드맵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수소는 청정에너지라는데, 환경론자들이 우려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수소 확보 방법 때문이다.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하는 원소다. 그렇다고 해서 수소를 그대로 포집해 연료로 쓸 수는 없다. 탄소·질소·산소 등과 화학적으로 단단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결합을 풀어 수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현 기술 단계에서는 화석 연료를 태우는 수밖에 없다. 청정에너지를 얻기 위해 오염(탄소 배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역설이다. 이렇게 얻은 수소의 에너지 효율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

환경론자들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갖춘 뒤 남는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겨우 3% 수준인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율을 적어도 30%로 끌어 올려야 수소경제를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수소경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재생 에너지를 확충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관건은 ‘그린 수소’ 확보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에 있는 한 수소 생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에 있는 한 수소 생산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대안과 지향점은 다르지만 이런 우려는 과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수소의 경제적 생산을 가로막고 있는 열역학 법칙은 극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라고 단언했다. 결국 관건은 수소를 어떻게 확보하는가다.

수소를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석유화학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부생(副生) 수소’,  LNG 등 가스를 개질(改質)해 얻는 ‘추출 수소’, 물을 전기 분해해 얻는 ‘수전해 수소’ 등이다. 이런 방법은 제각각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부생 수소’는 생산량이 부족하다. 정부 계산으로는 25만대 이상의 수소차가 운행되면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 ‘추출 수소’나 ‘수전해 수소’는 막대한 화석 연료 사용이 불가피하다. 가스 개질은 메탄(CH4) 성분에 열을 가해 수소를 떼어내는 과정이다. 상당한 열이 필요하다. 수전해 방법 역시 막대한 전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이용하면 ‘탄소배출 0’을 지향하는 수소경제와 모순된다.

수소 수입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호주·중동 등 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에서 수소를 만들어 들여오는 방안이다. 정부는 수소경제 초기에는 ‘부생 수소’와 ‘추출 수소’를 중점적으로 이용하고, 향후에는 ‘수입 수소’와 ‘수전해 수소’ 비중을 늘려간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전 세계 수소 시장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공급이 얼마나 원활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운송 및 액화 비용도 부담이다. 게다가 수소 수입은 우리 환경을 위해 해외에 공해를 수출하는 셈이어서 윤리적인 문제도 없지 않다.

수소경제, 원자력 필요 없을까

세 가지 방법 외 수소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또 있다. 원자력이다.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방법은 전기를 이용한 ‘수전해 방식’도 있지만, 원자력에서 나오는 고온의 열을 이용한 ‘열분해 방식’도 있다. 실제 미국·일본·중국 등에서 수소 확보를 위해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이다. 그러나 올 1월 발표된 정부 수소경제 로드맵에는 이 방안이 빠져 있다. 정부의 탈원전 기조와 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에는 ‘중형헬륨실험동’이 있다. 헬륨가스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4세대 원전의 일종인 ‘초고온가스로’ 개발 현장이다. 원자로에서 생성된 열로 헬륨가스를 섭씨 950도까지 데운 뒤. 이를 이용해 물(H2O)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는 지금까지 13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원자력연구원 측은 “기술 실증이 완료된다면 수소 공급의 가장 강력하고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의 초고온가스로 개발 과제는 올해 말 끝난다. 당초 계획은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실증로를 완공해 실제 수소를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 예산이 깎이더니, 지금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 속에서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됐다.

수소 엑스포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하나같이 수소경제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적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은…”이라며 말을 흐렸다. 한 업체 직원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지금 정부 기조가 계속 갈지가 관건”이라는 말도 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미래 기술의 개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좋지만, 미완성 기술에 대한 섣부른 전망을 현실로 착각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설익은 기술의 맹목적인 보급에 아까운 예산을 쏟아붓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소경제에 대한 지나친 환상 대신 수소 확보 방안 등 현실 조건부터 차근차근 따지고, 글로벌 트렌드와도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수소경제에는 ‘원자력’이 있었다

노무현 수소경제

노무현 수소경제

수소경제 계획은 노무현 정부 때도 있었다. 2005년 9월, 당시 산업자원부는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지금과 대동소이했지만, 의욕은 오히려 더 넘쳤다. 2020년 연료전지차 195만대, 수소충전소 2800개 등의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 중 현실이 된 것은 거의 없다. 2020년을 1년 앞둔 지금 국내 보급 수소차는 1400여대에 불과하고, 운영되는 수소 충전소는 24개에 불과하다.

마스터플랜이 발표된 것은 당시 세계적인 수소경제 관심 때문이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래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주창하자, 이에 호응하듯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수소혁명』이라는 책을 내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한국에서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2003년 12월 노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를 올렸다. 노 대통령은 2005년 3월 청와대 경내에서 정몽구 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의 시험용 수소연료전지 자동차를 타보고 감탄했다(사진).

지금 돌아보면 ‘허황한’ 계획이었지만, 지금 로드맵보다 현실적인 면은 있다. 수소 확보 방법으로 원자력 이용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고온가스로’는 노무현 정부 수소경제 구상의 핵심전략 중 하나였고, 실제로 마스터플랜 발표 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관련 R&D에 착수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