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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 좁아 큰 배 못 다녀, 출발부터 경제성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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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오가는 배는 보이지 않고 한적하다. 심석용 기자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오가는 배는 보이지 않고 한적하다. 심석용 기자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은 2012년 5월 전면 개통했으나 배가 다니지 않는 운하, 돈만 집어먹는 하마 신세가 됐다.

민간사업자들 "사업성 없다" 판단 #뱃길 주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무동력 선박 운항은 법으로 금지 #캠핑시설 등 설치 겹규제 풀어야

조삼훈 한국수자원공사 인천김포권지사 항만관리부 차장은 “무엇보다 큰 배가 다닐 수 없어 민간사업자들이 사업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라뱃길 중간중간에는 수면에서 높이가 16m 정도인 교량이 설치돼 있고, 수로 폭이 80m로 좁아 4000t급 이상 되는 큰 선박은 이용하기 어렵다. 많은 양의 화물을 한번에 실어나를 수 없어 작은 바지선으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철도나 자동차로 나를 수 없는 화물을 나른 사례가 없지는 않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주로 초중량 화물을 운송하는 선박들이 비정기적으로 아라뱃길 수로를 이용하고 있다.

서울 월드컵대교 건설을 위한 교량 상판과 당인리 화력발전소 리모델링 공사를 위한 설비를 운반하기도 했다. 경기도 서북부의 민간 열병합발전소에 들어가는 가스터빈 등 발전설비 부품도 아라뱃길로 운반했다. 한강 임시 선착장에 화물을 내린 뒤 전문 운송 차량에 실어 현장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운하 찾는 관광객들 연간 600만명

경인아라뱃길 주운수로. 폭이 80m로 좁고 교량이 있어 큰 배가 다닐 수 없다. 강찬수 기자

경인아라뱃길 주운수로. 폭이 80m로 좁고 교량이 있어 큰 배가 다닐 수 없다. 강찬수 기자

이처럼 비정기적으로 아라뱃길을 이용하는 선박을 제외하면 오가는 화물선은 거의 없다. 2012년 5월 전면개통 이후 7년 동안 처리한 화물이 사업계획 대비 8.4%에 머무르는 이유다. 물류단지는 분양률이 96%에 이르지만, 운하 이용과는 무관하다. 그나마 일부는 계약이 해지돼 분양률이 지난해 11월 98%보다 떨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국토교통분야관행혁신위원회’에서는 타당성 조사, 경제성 평가 등 아라뱃길 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운영 방식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관행혁신위 일부 위원들은 “아예 운하를 헐어버리고 재(再)자연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인천시 계양구 등 인근 지자체나 수상 레저 동호회 등에서는 지난해 아라뱃길을 찾는 관광객이 590만 명이나 된다는 점을 들어 수변 레저 공간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내놓는다. 수면에서는 윈드서핑이나 보드로잉(board rowing)을 하고, 주변에는 카페촌이나 캠핑시설을 설치해 더 많은 관광객이 찾도록 하자는 것이다.

운하와 레저 기능을 동시에 유지하자는 주장도 있다. 안승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유럽이나 미국 등 사례를 보면 운하 기능과 관광 기능을 동시에 유지하는 사례가 많다”며 “운하 기능을 바탕으로 관광·레저를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하에 레저 관광 기능을 보태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현행 '해사안전법'과 ‘인천항·경인항 선박 통항 규칙’에서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화물선이 다니는 주운수로에서는 무동력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고 있다.

또 최고속력 5노트 이하인 선박, 초단파 무선설비(VHF)나 선박 자동식별장치(AIS)를 갖추지 않은 선박의 운항을 금지하고 있다. 아라뱃길에서 소형 선박은 다른 선박의 통항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현재는 인천터미널과 김포터미널 일부 구역(갑문 바깥쪽)에서만 수상 레저 활동이 가능하다.

캠핑시설이나 카페촌 등을 설치하려면 다른 규제도 풀려야 한다. 아라뱃길 주변은 개발제한구역으로, 일부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수도권 정비계획법'에 따라 아라뱃길 북쪽 지역은 성장관리권역, 남쪽 지역은 과밀억제권역으로 지정돼 있다.

수질 5급수 '나쁨' 레저활동 부적합 

2011년 여름 굴포천이 온갖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여 있다. [사진 인천환경운동연합]

2011년 여름 굴포천이 온갖 쓰레기와 오물로 뒤덮여 있다. [사진 인천환경운동연합]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수질이다. 아라뱃길의 수질은 5급수 ‘나쁨’ 수준이다. 호수 같은 정체 수역이다 보니 여름철에는 녹조가 심해 엽록소a 농도가 ㎥당 100㎎ 이상으로 치솟는다.

박천홍 수자원공사 인천김포권지사아라청관리부 환경과 차장은 "수질관리에 연평균 3억6000만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며 "바닷물과 한강 물을 유입시키고, 수중 폭기시설 6기를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5급수는 레저 활동에 쾌적하지 않다.

물관리 일원화에 따라 아라뱃길 업무를 넘겨받은 환경부는 ▶굴포천 유역 홍수방지를 위한 방수로(치수) 기능만 유지하는 방안 ▶치수 기능은 유지하고, 인천터미널은 인천항의 보조항으로, 김포터미널은 항만이 아닌 내륙 물류단지로 전환하는 방안 ▶항만과 주운수로 등 기존 기능을 유지하면서 관광·레저를 활성화하는 방안 ▶친환경 수상 레저스포츠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안과 공론화 절차에 대해서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서 연구용역 중이다. 김익재 KEI 연구위원은 “현재 과거 경인아라뱃길 사업 결정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는 작업과 함께 공론화 절차와 관련해서는 이해당사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 절차는 물류·관광·수질·갈등조정 전문가와 업계·지자체 이해당사자 등 40~50명이 논의하고 공청회를 통해 결론을 내는 방식과 일반 시민 300~400명이 공론조사 형식으로 참여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될 전망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인천=심석용 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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