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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혁백의 퍼스펙티브

눈앞에 닥친 AI 로봇 확산, ‘노동의 위기’ 대책 마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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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미래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 도입된 바리스타 로봇 소여(Sawyer). 소여는 커피를 내리고 서빙하는 인력을 줄일 수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 도입된 바리스타 로봇 소여(Sawyer). 소여는 커피를 내리고 서빙하는 인력을 줄일 수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네 차례의 산업혁명은 공통적으로 노동력을 절약하고 대체하였다. 1차 산업혁명에서는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기계가 숙련공들을 대체하였다. 기계화는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으나, 숙련 노동자들에게는 기계에 일자리를 뺏기는 불행을 가져다주었다.

AI가 정규직·전문직 일자리 대체 #노동자는 ‘위험한 계급’으로 추락 #해법으로 로봇세·기본소득 제안 #사회 갈등 줄이는 방안 도출해야

1811년 러다이트(Luddites)로 불리는 노팅엄 직물공장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간 직조기계를 파괴하였다. 그러나 러다이트들은 기계에 패배하였다. 러다이트들의 기계 도입 저지는 노동자들만의 특수한 계급 이익인데 반해, 기계는 사회 전체의 복지를 혁신적으로 증대시키는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시민들은 기계 파괴 운동에 냉담했고, 정부는 러다이트들을 처형하고 탄압했다.

포디즘은 전기와 컨베이어 벨트를 기반으로 일어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혁명이다. 헨리 포드가 운영하는 디트로이트 피케트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 생산라인에서 단순 반복 작업을 해 제품을 조립한 결과 조립 라인 끝에서 ‘모델T’라는 자동차가 24초당 한 대씩 쏟아져 나왔다. 생산성이 폭발했고 포드는 모델T 자동차 가격을 3000달러에서 300달러까지 낮출 수 있었다.

플랫폼 기반 공유경제

그러나 대량 생산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량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자동차를 구매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지급했고, 고임금을 소비할 수 있도록 노동 시간을 줄여주었다. 포드는 임금과 이윤은 제로섬 관계에 있다는 마르크스 이론을 뒤집고 임금과 이윤은 동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포디즘 모델의 창안자가 되었다. 포디즘 체제에서 노동자의 고임금은 대량 소비를 견인하여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실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미국 노동자들은 마이홈에서 자가용차를 타고 출근하고 주말에는 레저를 즐기는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긱 이코노미’ 대표 업체로 꼽히는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루의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긱 이코노미’ 대표 업체로 꼽히는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루의 단기 계약직 배달원이 자전거로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차 산업혁명이 지식정보화혁명이라면 4차 산업혁명은 지능정보화혁명이다. 3차 산업혁명에서 컴퓨터·인터넷·온라인 기반 정보화 사회가 출현했고, 4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컴퓨팅·빅데이터·모바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초연결·초지능·무인자동화·적기주문(on-demand)·플랫폼 기반 공유경제가 출현했다.

자율주행차로 출근하고, 무인 드론으로 전쟁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이미 IBM의 AI 의사 왓슨(Watson)이 대장암을 수술하고, AI 알파고가 바둑 천재 이세돌을 꺾었으며, 노인들이 집에서 IoT를 통해 원격 진료를 받고, 아마존은 주문 상품을 드론으로 당일 배송하고 있다.

해고 통지서 발부된 노동자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노동 계급에는 희망보다는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기계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이다. 노동 계급에는 해고 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다”고 선언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AI가 노동력을 대체하여 노동자를 ‘쓸모없는 계급’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과 로버트 로런스는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는 외국의 값싼 노동력이 아니라 자동화 때문이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무인화와 자동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대규모의 노동력 대체와 고용 감축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존의 물류 로봇 키바. [AP=연합뉴스]

아마존의 물류 로봇 키바. [AP=연합뉴스]

2017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AI 트레이더를 고용하여 600명의 주식 트레이더 중 598명을 해고하였다. 살아남은 2명의 트레이더는 해고된 트레이더 몫까지 받으면서 수입이 급격히 올라가 엄청난 연봉을 챙겼다.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스마트팩토리 공장에선 20년 동안 생산량은 13배 증가하였지만, 노동자들은 1300명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마존의 거대한 시카고 물류센터에서 물류 관리 로봇 키바(Kiva) 1000대와 로봇을 관리하는 1000명의 인원이 하루 300만 건의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AI 로봇배송시스템을 통해 아마존은 미국 최대 온라인 소매 체인으로 부상하며 시어스 등 대형 백화점 체인들을 문 닫게 했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빈익빈 부익부 긱(gig) 경제

4차 산업혁명은 공유경제와 시장 경쟁을 두 축으로 하는 포스트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가속하고 있다. 현재 공유기업은 오픈소스 코드,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온라인 플랫폼 공유경제를 구축하고 있다. 플랫폼 공유경제는 유형·무형 제품과 서비스를 공동 소유, 공동 관리, 공동 사용하는 코먼스(commons)와 달리, 플랫폼 기업이 수많은 소비자와 공급자에게 공유된 온라인 플랫폼에서 연결해 주고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 이윤 추구 경제이다.

플랫폼 공유경제가 퍼지면 직장이 없는 실업자·주부·학생·노인에게도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플랫폼 기업들의 중개로 임시직·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직장과 직업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긱 경제’(gig economy)가 출현하고 있다. 긱 경제에서 공유 기업은 플랫폼을 운영하고 중개하면서 발생한 이윤을 집중하고 독점하나, 유휴 자원(시간·노동력 등)을 가지고 플랫폼에 참여해 일자리만 공유하는 프리랜서 긱 노동자들의 몫은 점점 줄고 있다.

‘위험한 계급’ 프레카리아트

포스트 자본주의 하에서 AI가 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전문직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일자리를 대체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불안한 임시직·일용직·비정규직·계약직·파견직·시간제·파트타임·프리랜서 노동자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로 추락하고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일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임금을 나누는, 자유롭지만 불안한(precarious) 노동자들이다.

프레카리아트는 직업 정체성이 없고, 고정된 작업장이 없고, 표준 근로 시간이 없으며, 비임금 형태로 보상을 받는다. 프레카리아트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과 달리 국가 복지의 수혜를 받을 수 없고,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온라인 플랫폼 경제에서 임시 노동, 대행 노동, 과제 노동을 하는 긱 노동자들은 유연한 스케줄에 따라 대기(on-call), 적기 주문(on-demand), 제로 시간 계약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는 높고, 노동 시간은 불확실하다. 또 소득의 불안정성은 높고, 임신과 질병과 같은 긴급 위험에 대한 대응력은 낮다. 그런데 임시 노동을 하는 긱 노동자들은 계급을 조직하여 집단 행동하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은 정규직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해체해, 불안하고 ‘위험한 계급’(dangerous class)인 프레카리아트로 추락시키고 있다.

‘바닥 향한 경주’ 멈춰야

AI 로봇이 노동자들을 대체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프레카리아트로 전락하면 프레카리아트의 초과 공급과 과소 소비로 포스트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프레카리아트로의 대량 추락을 멈추기 위한 해결책으로 로봇세와 기본소득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로봇세는 어떤 로봇에 대해 세금을 매길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과 AI 로봇산업을 위축시킬 위험, 전 세계적 차원에서 로봇세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반면 기본소득은 AI 기반 경제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조건 아래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일괄적으로 일정액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로서 로봇세보다 사회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보다 더 유효하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광주과기원 석좌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