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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중국'은 이렇다, 헐벗은 중국을 찍는 사진작가 왕칭쑹

중앙일보

입력

왕칭쑹(1966~)은 1978년 사회 개방 이후, 격변하는 중국의 모습을 특유의 시선으로 고발하는 사진 작가다. 그는 사진을 통해 현재 중국이 경험하는 각종 딜레마를 강렬하게 이야기한다.

왕칭쑹

왕칭쑹

2019년 8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왕칭쑹의 개인전 ‘생활예찬(The Glorious Life)’에서 그가 본 중국을 느낄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영광스럽지만은 않다. 왕칭쑹은 과도한 교육열, 이주민 문제, 도시 재개발 문제와 과소비 등 성장 이면에 서려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포착해낸다.

왕칭쑹은 현재 중국 사진계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다. 1990년대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에 머물러 있던 중국 사진계에 설치미술과 행위예술을 접목시켜 중국 현대사진예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사실 자신을 사진작가이기보단 사회의 단면을 담는 기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업물 역시 '사회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부른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멜라닌 우유 파동, 수입 분유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 풍자

Safe Milk, 150x300cm, 2009

Safe Milk, 150x300cm, 2009

2008~2009년 중국에서는 멜라닌 분유 파동이 일어났다. 단백질 함량을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신생아와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멜라닌 성분을 분유와 우유에 첨가한 사건이었다. 왕칭쑹은 이 사건과 관련해 작업을 구상하던 중, 2009년 2월 프랑스 잡지사에서 촬영 의뢰를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모델들을 섭외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연상되는 작품을 완성했다. 9m 길이의 테이블에 요구르트와 분유를 쏟고 가슴을 드러낸 10명의 여성으로 구성한 이 작업은, 국산 분유보다 수입 분유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중국의 현실을 작가의 유머로 풀어냈다.

이주민=무허가 인구?  

dormitory, 2005

dormitory, 2005

돈을 벌기 위해 대도시로 온 이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왕칭쑹은 이 작업을 위해 거대한 기숙사를 연상하게 하는 무대를 설치하고, 침대에서 부부를 연기하는 30쌍의 커플을 포함해 총 160명의 모델을 동원했다. 혼잡하고 무질서한 이곳엔 대도시에서의 새 출발을 위해 떠나온 이주민들의 꿈과 기대가 녹아있으나 닭장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만 하는 고충을 대변한다.

지식, 터득이 아닌 주입의 대상으로 변모

Follow You, 180x300cm, 2013

Follow You, 180x300cm, 2013

그는 세 딸의 아빠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그는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 문제를 주제로 많은 작업물을 남겼다. 왕칭쑹은 'Follow You' 촬영을 위해 대형 스튜디오에 거대한 칠판을 배경으로 120개의 책상과 240개의 의자를 배치하고, 책상에 엎드려 조는 역할을 할 모델 240명을 섭외했다.

회면 가운데 앉아 있는 작가는 흰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채 늙어가며 링거를 맞으며 수업을 듣는다. 그는 과도한 학업에 지쳐 더이상 버틸 수 없는 학생들이 낭비하게 되는 엄청난 양의 책과 시간을 시사하며, 지식의 척도를 시험으로만 삼는 중국의 교육을 풍자한다. 이 벽면에는 역대 중국 정권이 내세웠던 교육 구호가 쓰여있다. '好好学习,天天向上!' 구호 끝에는 본래 느낌표가 붙어 있으나, 작가가 느낀 현실에서는 물음표로 마무리 됐다.

중국의 미대 입시=돈이면 다 되는 거대한 산업

Moma Studio, 170x300cm, 2005

Moma Studio, 170x300cm, 2005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예술 교육이 상품화된 현실을 비판한다. 입시 성적이 낮아도 등록금만 내면 미대에 입학하는 고육 분야의 불평등함을 지적한 것이다. <뉴욕현대미술관 스튜디오Moma Studio>라고 명명한 이 작업에서는, 미술학원 입시생의 크로키를 위해 포즈를 취한 누드모델이 사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교육이 단순히 돈 벌기 수단으로 둔갑해 기업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회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치 이데올로기? 부와 성공이 우선인 중국

Take up the pen, fight till the end, 100x53cm, 1997

Take up the pen, fight till the end, 100x53cm, 1997

Take up the pen, fight till the end, 이 작품은 왕칭쑹의 초기작이다. 오른쪽의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선전 포스터를 차용했다. 왕칭쑹 작품에서는 '마오 주석 어록'이 단기간 합격을 보장하는 입시 서적과 명나라 화폐 금원보, 100달러 지폐, 위안화 등으로 대체됐다. 작가는 과거의 정치 이데올로기보다 돈벌이나 사회적 성공을 우선시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문화 현상을 지적했다.

물질로 위로를 얻는 현대인들

Requesting Buddha series No.1, 180x110cm, 1999

Requesting Buddha series No.1, 180x110cm, 1999

'Requesting Buddha series'에서의 부처는 더이상 관용과 연민이 아닌 돈과 상업적 재화를 향한 끝없는 욕망에 손 뻗고 있다. 천 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제해준 천수관음과 유사한 이 현대의 부처상은 경전 대신 수입 병맥주와 담배, CD, 달러, 트로피 등 다국적 상품을 들고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연화좌에 앉아있다. 그의 머리 위에서 휘날리는 오성홍기는 물질 만능과 소비 문화를 통해서만 편안함과 위로를 얻는 현대 중국인들의 위선을 상징한다.

the blood of the world

the blood of the world

the blood of the world

매우 추웠던 2006년 11월 어느 날, 왕칭쑹은 베이징 외곽에 위치한 한 격납고에서 15m 높이 비계 상단에 올라 이 사진을 찍었다. 그는 유진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에디 애덤스의 베트남 전쟁 보도 사진인 <사이공의 처형>을 차용해 이와 같이 거대한 세트와 설계를 고안했다. 그는 이 공간에 흙과 진흙을 이용해 언덕을 만들고 곳곳에 참호를 팠다. 그리고 연기가 자욱한 하늘까지 그리는 등 상황 연출에만 한 달의 시간을 들였다. 촬영 당일엔 말, 탱크, 트럭, 동물 사체와 더불어 진흙, 페인드를 뒤덮은 200여 명의 모델을 동원해 전쟁터 모습을 실감나게 연출했다.(중국 당국의 사전 허가 없이 20명 이상 모이거나 나체로 있는 것이 불법이라 극비리에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작가는 '중국답게' 아주 거대한 규모의 작업을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주는 웅장함에 먼저 눈길이 간다. 또, 모든 소품과 모델들을 허투루 배치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힘이 있다. 그가 대규모 세트를 구성하고, 나신의 모델을 배치하는 이유도 '강렬한 인상'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다.

그는 20여 년간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중국의 발전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병폐와 인간 소외,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메시지를 알려왔다. 자각하고, 반성하고, 질문하는 왕칭쑹의 작품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검열을 받았다. 몇몇 작품들은 오직 해외 전시에서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이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하나다. 빠른 발전 이면에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깨닫고, 잊고 있던 인간성과 정의를 회복하길 바라서다.

차이나랩 임서영

네이버중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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