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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과학은 안다] 영화 ‘남극의 셰프’를 통해서 본 남극의 과학기지

중앙일보

입력

일본 영화 '남극의 셰프' 포스터

일본 영화 '남극의 셰프' 포스터

 ‘생선요리, 돼지고기 고명이 올라간 미소라멘, 새우 대신 랍스터요리, 스테이크ㆍ주먹밥….’ 2009년 개봉한 일본 영화‘남극의 셰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음식으로 시작해서 음식으로 끝난다. 마치 ‘남극 먹방’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가 ‘이타다키마스’(戴きますㆍ잘 먹겠습니다)이다.

남위 77도 해발 3810m의 남극 대륙 내에 있는 일본 과학기지 돔 후지가 이 먹방의 배경이다. 과학기지이지만, 러닝타임 2시간이 넘는 영화 속에서 과학연구를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은 얼음기둥 ‘빙상코어’가 사실상 유일하다. 수십만 년 동안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얼음으로 변한 빙상(氷床)에서 수직으로 뽑아낸 코어는 지구의 과거 모습을 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다. 주인공인 남극요리사니시무라의 “먹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빙하학자는“남극에 먹으러 온 게 아니거든”이라고 답하지만, 결국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밤마다 남몰래 라면을 끓여 먹던 기지 대장은 라면이 바닥나자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새우튀김을 먹고 싶어하는 돔 후지의 대원들을 위해 남극 기지 요리사가 랍스터 요리를 준비했다.

새우튀김을 먹고 싶어하는 돔 후지의 대원들을 위해 남극 기지 요리사가 랍스터 요리를 준비했다.

영화 남극의 셰프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식욕’이라는 본능이 얼마만큼 절실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어찌 보면, 남위 77도 극한의 공간인 남극과학기지 돔 후지는 인간의 본능과 욕구, 삶의 의미 등을 잘, 그리고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감기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영하 50도가 넘는 극한의 공간에 왜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지,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 것인지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 남극관측 대원으로서 조리를 담당했던 니시무라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남극에는 일본 돔 후지처럼 1년 내내 운영되고 있는 상설기지와, 여름 한 철만 운영되는 하계기지 등 세계 29 개국의 80개가 넘는 기지가 들어서 있다. 이 기자들의 운영 목적은 ‘과학 실험과 연구’이지만, 그 이면의 뿌리에는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남극 영토전쟁도 숨어있다.

장보고기지

장보고기지

한국도 남위 74도 테라노바만 인근의 장보고기지와 남위 62도 킹 조지 섬의 세종기지, 두 곳에 365일 사람이 상주하는 상설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의 돔 후지처럼 남극 내륙 깊숙한 곳에 제3의 기지를 세우기 위해 K-루트사업단도 가동했다.

장보고과학기지 5차 월동대원을 이끌었던 유규철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장보고와 세종기지 둘 다 남극대륙에 있긴 하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남극대륙 내부 연구를 위해서는 또 다른 기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극은 지금 한겨울을 통과 중이다. 22일 서울은 한낮의 기온이 최고 섭씨 30도를 웃도는 본격 더위가 시작됐지만, 특히 지구 반대편 남위 74도의 장보고기지는 영하 30도가 넘는 추위 속에 24시간 밤만 계속되는 극야(極夜)의 계절 한가운데 있다.

남극대륙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본 5월 극야의 하늘과 오로라. [사진 극지연구소]

남극대륙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본 5월 극야의 하늘과 오로라. [사진 극지연구소]

지금 장보고과학기지에는 지난해 11월 임무를 새로 시작한 제6차 월동대원 16명이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칠흑 같은 캄캄한 밤이 이어지는 답답한 환경 외에도 A급 태풍을 무색게 하는 폭풍설과 추위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기지 실내에서만 보내야 한다. 마치 미래 언젠가 달이나 화성에 세워질 기지와 그곳에서 생활해야 할 우주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보고기지에 국내외 연구자들이 찾아드는 등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기간은 남극의 여름인 12~2월이지만, 그 외의 계절에도 장보고기지는쉬지 않고 돌아간다.

장보고기지에는 중장비 기사도 필수다. [사진 극지연구소]

장보고기지에는 중장비 기사도 필수다. [사진 극지연구소]

그들은 한겨울, 기지 밖으로도 나올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월동대원들의 역할을 보면 장보고기지와 대원들의 미션을 알 수 있다. 월동대는 크게 총무반(총무ㆍ통신ㆍ의료ㆍ조리), 유지반(기계설비ㆍ냉동설비ㆍ발전ㆍ안전ㆍ전기ㆍ중장비)과 연구반(기상ㆍ대기ㆍ해양ㆍ생명ㆍ우주과학ㆍ지구물리)으로 나누어져 있다. 기본적으로 월동대원들의 주 임무는 기지를 지키는 역할이지만, 하계연구원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월동대원 중 전문 연구팀은 각자 맡은바 연구에 매진한다. 장보고기지에는 지구물리장비시험동, 기상관측시스템 등 다양한 과학장비를 365일 가동되고 있다.

2014년 2월 완공된 장보고과학기지는 최첨단 기지다. '남극의 셰프'의 배경 돔 후지에서는 전화도 어렵게 하는 정도이지만, 장보고기지에서는 위성통신을 통한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다. 돔 후지에서처럼 대원들의 식생활과 건강을 위해 한식·양식을 두루 섭렵한 조리사와 간단한 수술까지도 할 수 있는 외과 전문의까지…. 장보고기지의 식당 바는 라면이나 음료·과자 등 대원들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간식거리까지 마련돼 있다.

장보고과학기지 내 식당 바. 칸칸이 가득 진열된 다양한 라면이 눈에 띈다. [사진 극지연구소]

장보고과학기지 내 식당 바. 칸칸이 가득 진열된 다양한 라면이 눈에 띈다. [사진 극지연구소]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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