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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청소년 일상 조여오는 도박 중독

중앙일보

입력

온라인 도박 빚 갚으려 또래 간 고리대금업까지 성행
부모도 온라인 세계 알아야 자녀 도박 중독 막을 수 있어

현장취재 # 17세 고등학생 장래 희망이 불법 토토 사장?

한 청소년이 PC방에서 온라인 도박을 하고 있다.

한 청소년이 PC방에서 온라인 도박을 하고 있다.

최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은 고등학교 1학년 이동현(가명) 군은 친구가 보내준 사이트에 접속하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고 털어놨다. 이군이 접속한 홈페이지는 ‘네임드’라는 스포츠 커뮤니티였다. 구글에 검색해도 쉽게 접속할 수 있다. 하지만 외양과 달리 홈페이지 내부 채팅방에서는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공유되고 있었다.

“사다리 37승 3패 연승구간 진행 중” 채팅방에 입장하면 곧장 1:1 대화를 요청하는 창이 뜬다. 채팅을 수락하면 “상담 후 무료 프젝(프로젝트를 뜻하는 도박 은어) 진행 가능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온다. 수수료를 안 받고 베팅을 해주겠다며 도박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다. 채팅을 요청한 사람은 일명 ‘픽스터’(불법 인터넷 도박 게임 결과를 예측해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고, 채팅방 제목에 자신의 승률을 홍보해 참여자 수를 늘린다. 픽스터는 참여자의 베팅을 받아 게임을 해주는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챙긴다.

국내 불법 도박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불법 도박 산업 규모는 2005년 53조원에서 2015년 83조8000억원으로 커졌고, 합법적 도박 시장 규모의 4배가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불법 스포츠 도박을 비롯한 온라인 도박은 대부분 서버가 해외에 있어 수사가 어렵다. 이 허점을 파고들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 오더니 이제는 도박 청정지역으로 여겨지던 학교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딸 듯 말 듯’ 청소년 유혹하는 도박 업체들

불법 도박을 유도하기 위한 1:1 채팅 요청 메시지는 수락할 때까지 전송된다./사진:네임드 캡처

불법 도박을 유도하기 위한 1:1 채팅 요청 메시지는 수락할 때까지 전송된다./사진:네임드 캡처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미성년자의 도박은 불법이다. 경마장이나 카지노 등 사행사업장은 만 19세 이상부터 출입이 가능하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스포츠 토토 사이트인 ‘배트맨’ 역시 19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 합법적으로 도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이하 관리센터)가 실시한 2018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 중 청소년의 6.4%가 도박문제 위험집단으로 분류됐다. 이는 15년 조사보다 1.3% 증가한 수치로 대략 14만5000명의 청소년이 도박 중독에 빠질 우려가 있거나, 이미 도박으로 심각한 폐해를 겪고 있다는 뜻이다.

불량학생만 도박하는 것이 아니다. 김연수 한국도박문제 관리 서울남부센터 팀장은 “도박 중독이나 도박으로 인한 금전적 고통 등 도박문제를 겪는 청소년의 증가 속도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빠른 게 사실”이라며 “중·고등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도박문제를 겪는 나이대도 다양해지고, 최근 3년간 센터에 상담을 오는 청소년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도박문제 상담을 책임지는 관리센터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14개 센터에 방문하는 청소년도 급증했다. 2014년 39명에 불과하던 상담자 수는 2018년 470명까지 늘었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따르면 사이버 도박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10대 피의자도 2017년 107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 청소년의 도박문제를 부추긴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도 돈 내기 게임은 있었지만, 교실에서 ‘판치기’ ‘짤짤이’ 등과 같은 재미 삼아 하는 오락 수준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도박장에 가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 도박이 가능해졌다.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리는 지금의 청소년은 사이버 공간에 대한 친숙함이 성인보다 높기 때문에 온라인 도박 접근성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8년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도박 경험이 있는 청소년 10명 중 7명은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도박사이트에 접속했고, 응답자의 29%가 본인 집이나 학교(교실)에서 도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소년이 주로 하는 온라인 도박은 크게 불법 스포츠 도박과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나뉜다. 특히 2013년 유행하기 시작한 온라인 게임을 활용한 불법 인터넷 도박이 최근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다. 김연수 팀장은 “학교로 예방 교육을 가면 학생들이 ‘요즘은 그 게임 말고 이 게임을 한다’고 알려줄 정도로 청소년에게 널리 확산돼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임은 순위를 맞히는 ‘달팽이 경주’, 홀짝을 맞히는 ‘사다리’, 그래프가 언제 멈출지를 맞히는 ‘소셜그래프’ 등이다. 스포츠 경기보다 게임 진행시간이 짧아 더 자주, 더 많은 금액을 베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게임이 5분 안에 끝난다. 한 시간에 12회, 하루에 288회가 진행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1분도 안 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게임도 증가하는 추세다. 도박은 진행 과정이 단순하고 승부의 결과가 빨리 나타날수록 더 쉽게 중독된다.

불법 도박 사이트는 해당 게임의 결과를 중계하며 참여자들에게 베팅을 받는다. 이용자는 계좌번호와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원하는 만큼 돈을 입금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배당률만큼 이익을 본다. 신분이나 나이를 확인하는 과정이 일절 없기 때문에 청소년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제도의 감시망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제동장치나 안전장치도 없다.

김 팀장은 “베팅 금액의 상한선이 정해진 합법 사이트와 달리 불법 사이트의 경우, 금액은 물론이고 빈도나 시간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도 쉽게 중독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기에 불법 온라인 도박의 구조는 성인보다 청소년에게 매력적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생활치안교육센터 교수는 “온라인 도박은 ‘딸 듯 말 듯한 구조’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소액으로 시작하는 게임 초반에는 돈을 딸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게임을 하고 싶게끔 만들어 주기에 청소년은 쉽게 빠져든다. 소액을 베팅하던 청소년은 한번 수익을 봤을 때의 짜릿함을 다시 맛보고자 베팅 금액을 수백만원까지 올리기도 한다.

만원으로 시작해 천만원 단위까지 껑충

불법 도박에 활용되는 온라인 게임은 홀짝을 맞히는 단순한 방식으로 게임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사진:유튜브 캡처

불법 도박에 활용되는 온라인 게임은 홀짝을 맞히는 단순한 방식으로 게임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사진:유튜브 캡처

임정민 서울북부센터 팀장은 “청소년이 걸어봤자 얼마나 걸고, 잃어봤자 얼마나 잃겠냐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천만원 이상을 잃고 센터에 상담을 오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베팅으로 얻은 돈을 다시 베팅하다 보니 천만원 단위로 금액이 늘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청소년은 대부분 주변인의 영향을 받아 도박에 발을 들여놓는다. 도박문제로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이동현(가명·17) 군도 “친구의 권유로 도박을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 함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군처럼 많은 청소년이 도박을 친구나 선후배와 함께 즐기다 보니 ‘오락거리’로 인식한다. 임정민 팀장은 “게임의 일종으로 치부하니 경계심 없이 중독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우려하며, “친구와 똑같이 베팅했는데 베팅 금액이 달라 자신의 수익이 적다면, 베팅 금액을 따라서 올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을 딸 수 있다는 생각이 헛된 희망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도박문제를 가진 청소년은 대개 게임의 결과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리센터 상담사례에 따르면 장래희망을 ‘토사장’(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자)이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있을 정도로 도박문제를 겪는 청소년에게 불법 온라인 도박은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부모님이 한 달을 힘들게 일해서 버는 돈을 자신은 클릭 몇 번으로 벌 수 있다는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에 베팅을 받아 대신 게임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픽스터’만 검색해도 돈 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영상이 5000건 이상 나오고, 누구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영상에 등장한 한 남자는 자신을 안전과 신뢰를 주는 픽스터라고 지칭하며, 자신과 함께하면 무조건 수익을 낸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리고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개하면서 이기는 정보를 공유하는 카톡방에 초대하겠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이 카톡방 역시 불법 도박 사이트로 연결되는 통로로 이용자가 카톡방에 입장하면 돈을 베팅하도록 유도하고 수수료를 챙긴다.

게임 구조상 이용자가 이익을 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법 사이트기 때문에 운영자가 언제든 사이트를 폐쇄하고 돈을 챙겨 사라지는 일명 ‘먹튀’가 허다하다. 이런 사이트는 대부분 대포통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사를 통해 베팅한 돈을 회수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하다.

상습적 도박으로 청소년은 자신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는 빚을 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또래 간에 일종의 ‘불법 대부행위’도 성행하고 있다. 인천센터를 방문한 김영수(가명·19) 군은 지난해 8월 같이 도박을 하던 친구에게 40만원을 빌렸다가 고리 사채의 늪에 빠졌다. 일주일에 이자만 25만원을 요구했다. 법정 최고금리인 24%를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돈을 빌려준 친구는 김군이 집에 없을 때, 다른 학생 10명을 거느리고 찾아와 김군의 아버지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김 군의 아버지는 “학생들이 ‘자식 교육 똑바로 해야지. 아들이 못 갚으면 아버지가 갚으라’는 식으로 위협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군의 아버지는 또 “학생들이 학교에서 아들이 ‘노름꾼’이라며 공공연하게 소문을 내는 모양”이라며 “아들이 심리적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고 걱정했다.

서민수 교수는 “도박 청소년의 대출행위는 빌리는 사람이 스스로 이자를 높게 부르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용돈이나 아르바이트로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는 청소년이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결국 지인이나 SNS 대출계정에서 돈을 빌리는 방법뿐이다. 돈이 급하게 필요한데 신용이나 담보가 없으니 결국 스스로 이자를 높게 부를 수밖에 없고, 이자는 적게는 50%에서 1000%까지 불어나기도 한다.

세심한 주의 기울이지 않으면 도박 징후 못 잡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감시 인원은 9명에 불과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감시 인원은 9명에 불과하다.

빚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결국 청소년은 부모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부모는 그제야 자녀의 불법 도박을 인지한다. 다수의 도박문제 전문상담사는 “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의 도박문제를 인식하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은 대부분 금전적 문제가 해결 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야 학교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상담기관을 찾는다. 김연수 서울남부센터 팀장은 “청소년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도박 중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돈문제만 해결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몇 년 전부터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조금씩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김연수 팀장은 “3년 전만 해도 학생들이 무슨 도박이냐며 예방 교육이 필요 없다던 학교들도 이제는 와서 교육 좀 해달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청소년은 학교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교육 당국의 적극적 대응도 필요하다. 하지만 도박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마련 움직임은 더디다. 2018년 관리센터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70%가 도박 관련 예방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고 답했지만, 약 60%가 청소년의 도박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도박문제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한 시·도는 현재 17개 중 9개다. 조례가 제정된 시·도 교육청은 자체적으로 예방교육 계획을 세워 진행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사이버 전반의 역량을 키우는 프로그램을 올해 개설했다고 밝혔다. 교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학생이 건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실태조사가 다소 과장되지 않았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학교 현장의 한 관계자는 “400만 명에 이르는 재학 중 청소년 중 1만7520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전체로 일반화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무작위로 선정된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위험군 6.4%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과도한 해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버 도박 관련 수사를 받은 10대 피의자가 2015년 133명, 2016년 347명, 2017명 107명이나 되는 것은 청소년 도박문제가 실체 없는 허상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또한 배상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기에 도박 관련 매체 노출 경험이 많으면 성인이 되어 실제 도박을 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하면서, 청소년 도박에 ‘무지(無知)’한 청소년·부모·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실효성 높은 예방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정에서의 관심이다. 보호자가 청소년이 하는 온라인 도박의 징후를 빨리 발견해야 한다. 매년 700회 이상 청소년과 상담을 진행하는 서민수 교수는 “도박은 흡연·음주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중독’이므로 부모가 주의를 기울이고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관심을 넘어서 평소 자녀 행동을 ‘관찰’해야 도박문제가 심각해지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상률 연구위원 역시 “주변인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도 청소년 온라인 도박 이용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림 월간중앙 인턴기자 rim_k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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