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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 참 쉽네” 초심자 때 부풀어 오르는 ‘근자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인근의 당구 오디세이(8)

당구를 치기 시작하면 잠들기 전 천장에 당구 테이블이 그려지곤 한다. 나이가 들어 너나 할 것 없이 당구에 몰입하는 친구들이 많다. 혼을 쏙 빼버리는 당구만의 매력이 있다. [사진 pxhere]

당구를 치기 시작하면 잠들기 전 천장에 당구 테이블이 그려지곤 한다. 나이가 들어 너나 할 것 없이 당구에 몰입하는 친구들이 많다. 혼을 쏙 빼버리는 당구만의 매력이 있다. [사진 pxhere]

당구에는 말 그대로 뇌살적(머리를 혼미하게, 혹은 혼을 쏙 빼버리는)인 매력이 있다. 소싯적 당구에 처음 입문해 4구 기준 80이나 100쯤 됐을 때 잠자리에 누우면 천장 벽지에 당구 테이블이 삼삼하게 그려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뒤늦게 당구를 배우는 친구들에게 천장에 당구 테이블이 그려지냐고 물으면 피식 웃어넘긴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보자면 천장뿐 아니라 온통 사방이 당구 테이블로 가득 차 있을 듯하다.

이제 나이 들어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어진 즈음 기왕에 당구를 좀 쳐 봤던 친구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친구도 너나 할 것 없이 당구에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을 강력하게 흡인하는 당구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당구가 쉬워 보이는 착각의 오류 

당구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도 남들처럼 당구를 잘 칠 수 있다는 착각, 당구를 치다보면 근거없는 자신감에 빠져들 수가 있다. 하지만 고수와 당신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진 pxhere]

당구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도 남들처럼 당구를 잘 칠 수 있다는 착각, 당구를 치다보면 근거없는 자신감에 빠져들 수가 있다. 하지만 고수와 당신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진 pxhere]

당구에는 몇 가지 착각의 오류가 있다. 첫 번째는 당구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구에 쉽게 입문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당구라는 것이 꽤 쉬워 보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당구는 무척 어렵다. 정확히 말하자면 당구는 처음 배우는 사람도 쉽게 큐를 가지고 공을 칠 수 있지만, 잘 치고 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당구는 2차원적 평면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라 쉽게 보이는 것 같다. 실상은 두께, 속도, 회전, 스트록등의 모든 요소가 긴밀하게 작동하는 아주 세밀하고 복잡한 종목이다. 우리 친구들을 보면 재미 삼아 치기 시작한 당구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게 되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쯤 되면 이미 당구의 매력에 빠져 있어 포기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두 번째는 자신도 남들처럼 당구를 잘 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사실 TV에서 프로선수들의 당구 게임을 보면 정말 유연하고 쉽게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따금 현란한 공의 궤적이나 맛세이 또는 곡구 같은 기술에 놀라기도 한다.

당구에 빠지는 이유를 말하라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당구장에서 먹는 자장면이 그냥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치다보면 해볼만 하다는 자만심도 충만해진다. [사진 pxhere]

당구에 빠지는 이유를 말하라면 '재미있기' 때문이다. 당구장에서 먹는 자장면이 그냥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치다보면 해볼만 하다는 자만심도 충만해진다. [사진 pxhere]

선수들의 게임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득점은 익숙한 모양의 배치에서 이루어져 자신도 그 정도는 맞출 수 있겠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져든다. 사실상 일반적인 공 배치에서 고수도 맞추고 당신도 맞춘다면 근자감이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수와 당신 사이엔 애버리지(같은 배치에서 10번 친다고 가정할 때 고수가 맞추는 확률과 당신이 맞추는 확률)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더욱이 고수일지라도 자신과 비슷한 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 “야 이거 별거 아니네. 해 볼 만하겠어” 라는 자만심이 충만해져 묘한 승부욕을 자극한다.

이러한 승부욕은 인류가 오랜 수렵 생활을 거치며 DNA에 각인한 경쟁이라는 생존 본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심지어 게임에 졌을 땐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이 없어서라는 ‘승부 불복 심리’가 생기며 다음엔 이길 수 있으리란 비논리적 근자감과 다시 교묘하게 뒤얽힌다.

엉터리 분석은 이제 각설 하고 당구에 빠지는 이유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다. 마치 당구장에서 시켜 먹는 자장면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당구의 이런 묘한 심리는 가끔 유치한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친구일지라도 몇 게임을 연달아 지게 되면 얼굴이 굳어지면서 사소한 농담이나 자극에도 신경질을 부린다.

학구파와 실전파 친구 사이의 해프닝

당구를 치는 스타일은 다양하다. 학구파는 당점, 입사각, 반사각까지 메모지에 적어 보면서 공부한다. 실전파는 그저 힘껏 냅다 질러댄다. 두 친구 모두 본인의 방식에 심취해있는데, 당구 치수는 같다. [사진 pxhere]

당구를 치는 스타일은 다양하다. 학구파는 당점, 입사각, 반사각까지 메모지에 적어 보면서 공부한다. 실전파는 그저 힘껏 냅다 질러댄다. 두 친구 모두 본인의 방식에 심취해있는데, 당구 치수는 같다. [사진 pxhere]

내게는 이제 막 당구를 시작한 친구들이 있다. 약 3년 전부터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그들의 사부 역할을 자처하며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 그중 한 친구는 학구파이고 다른 친구는 실전파다. 힉구파 친구는 메모지에 당점, 입사각, 반사각, 여러 가지 시스템을 적어 놓고 당구 칠 때 꺼내 보곤 한다.

실전파 친구는 가끔 당구장을 헬스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근력을 과시하려는지, 혹은 당구공은 깨지지 않는다는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함인지 있는 힘껏 냅다 질러대는 스타일이다. 두 친구의 당구 치수는 동일하다.

이들이 당구를 배운지 일년쯤 지났을 때 생긴 에피소드다. 하루는 둘이 게임을 하는데, 유난히 학구파가 잘 안 되었다. 이럴 때는 한, 두판만 쳐야 한다. 그러나 실전파 친구가 승리에 도취돼 여러 판을 치게 되었고, 급기야 바짝 약이 오른 학구파가 당구 큐를 부러뜨리겠다며 씩씩거렸다.

집에 가겠다는 학구파를 위로해주려고 호주머니 사정을 무릅쓰고 그가 좋아하는 생선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았는데도 아무 말이 없던 학구파는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나와 실전파는 즐겁자고 당구를 치는 건데 이건 아니지 않냐며 학구파를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화장실에 간 학구파가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화장실에 가보았더니 아 글쎄, 이 친구는 화장실 구석에서 자신의 당구 메모지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것 아닌가.

나를 보고 계면쩍게 웃는 친구를 데리고 테이블로 돌아와 밝아진 분위기에서 술 몇잔을 더 마셨다. 학구파 친구는 아까 자기 계산법이 틀렸지만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 다시 당구를 치러 가잔다. “에이구, 이 화상” 하고 면박을 주며 전철이 끊기는 시간까지 당구를 치고 택시를 잡아 집으로 오는데 자꾸만 실소가 나왔다.

이쯤 되면 당구의 매력이 아니라 마력이다. 당구, 그놈 참….

깨알 당구 팁

[사진 pixabay]

[사진 pixabay]


당구 테이블은 2대1 장방형…15C 佛왕실서 처음 제작

현재 당구 테이블의 모양은 2 대 1 장방형 즉, 정 사각형 두개를 붙인 직사각형이다. 초기에는 정사각형, 긴 직사각형, 심지어 타원형 테이블등 다양한 모양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가장 자리에 구멍(포켓 )을 만들어 그 곳에 공을 넣는 방식을 개발했고, 프랑스 에선 구멍 없이 몇 개의 공을 올려 놓고 맞추는 현재의 캐롬 방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15세기 프랑스 국왕 루이 11세는 열렬한 당구 마니아로서 당구를 무척 즐겼다고 한다. 왕실 공장장이었던 앙리에게 완벽한 당구 테이블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정사각형 테이블에서의 개임은 너무 쉽고 긴 직사각형과 타원형 에서는 너무 어려워 앙리가 고안 한 것이 2 대 1 장방형 테이블로 게임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게 만든 것이라 한다.

이인근 전 부림구매(주)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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