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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력' 과제 안은 김상조, '소주성' 방향전환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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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경제수석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한 것은 김수현 전 정책실장과 윤종원 전 경제수석에 대한 문책성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눈에 보이는 경제 성과 도출을 추진했지만, 경제성장률과 고용ㆍ수출 등 경제 지표가 나아지지 않자 경제정책 입안의 축인 이들을 전격 물갈이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한국의 지난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은 -0.4%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기관이 성장률 전망치도 계속 내리막이다. 정부는 당초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여 왔지만, 여전히 지표는 부진하다. 이 때문에 김수현 전 실장과 윤종원 전 수석의 조합에 의구심이 제기돼 왔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번 인사는 7월 초로 예정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앞두고 정책라인의 전면 쇄신을 통해 성과 창출에 ‘올인’하겠다는 구상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김 실장과 이 수석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른바 민간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관료 출신 ‘늘공’(늘 공무원)의 조합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이번 인사에서는 정부의 3대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중 김 실장이 맡은 공정경제 부문에선 유일하게 성과가 있었던 점이 고려됐다. 고용과 분배 지표 악화,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정책과 달리 공정경제 부문에선 대기업의 순환출자 감소, 지주회사 전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크고 작은 변화를 끌어낸 것은 김 실장의 성과다. 김 실장은 전공인 공정경제와 함께 소득ㆍ일자리 성과 창출 정책 방점을 둘 전망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김 신임 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서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정책실장의 역할을 충분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번 인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 신임 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를 추천한 사람도 그였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주제로 한 TV토론 등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 대변인’ 역할을 도맡았다.

김 신임 실장은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경질된 이후 개혁적 경제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은 인사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과 학계에서 수정 요구를 받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방향 수정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되려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만큼 경제 활력 위주 정책보다 재벌 개혁 등 개혁적 경제 정책에 힘이 실릴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날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자리에서 김 실장은 “과거의 밝은 면은 계승해야 하나,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면 실패를 자초하게 된다”며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대 축으로 국민 모두가 잘사는 사람 중심 경제의 길을 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휴대전화 컬러링(음악이 나오는 통화연결음)을 ‘You raise me up(당신이 날 일으켜 세웠어요)’ 바꿨다고 소개하며 “이 가사에서 ‘당신’은 ‘국민’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개혁 후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진 점도 김 실장을 정책실장에 앉힌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경제 정책에 크게 관여하진 않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았지만, 홍 부총리가 별다른 색깔을 내지 않다 보니 정부의 개혁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자주 받았다. 정부로선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 경제라인에 있을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호승 경제수석은 김 실장과 경제관료 간 가교 역할을 할 전망이다. 자타공인 거시경제 전문가로, 기재부 핵심 경제정책 라인을 거쳤다. 기재부 1차관을 역임하기 전엔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을 맡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이해도가 높다.

새 청와대 경제라인은 홍남기 부총리와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 경제부처 장관들 간의 팀워크도 신경 써야 한다. 김 실장이 공정위원장 시절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에서 한목소리를 낸 최 위원장은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아싸’(아웃사이더의 준말) 논란이 일고 있는 홍 부총리다. 색깔이 강한 김 실장의 목소리에 묻혀 기재부의 청와대화(化)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이 수석은 “경제팀이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조율되고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도록 충실히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핵심 관계자는 “김 실장이 학계에 있을 때부터 홍 부총리와 알고 지냈고 국무회의에서도 함께 일한 바 있어 예전 김동연 전 부총리와 장하성 전 정책실장과 같은 불협화음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도년ㆍ손해용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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