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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무조건 비행기값 싸면 최고?" ..중동 항공사 저가·증편 공세의 명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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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레이트항공 등 중동 항공사들의 저가, 증편 공세가 거세다. [중앙포토]

아랍에미레이트항공 등 중동 항공사들의 저가, 증편 공세가 거세다. [중앙포토]

 요즘 세계 항공시장에서 중동 항공사들의 기세가 상당합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지역을 가릴 것 없이 경쟁항공사보다 훨씬 싸게 비행기 티켓을 팔면서 승객을 대거 유치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중동 항공사의 공세를 두고 다른 나라 항공사들의 반발이 상당합니다. 해당 정부들에서도 자국 항공사 보호를 위해 나서고 있는데요.

 얼핏 승객 입장에서만 보자면 싼 가격에 편하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면 최선일 겁니다. 굳이 비싼 국적기를 타지 않고도 원하던 해외여행이 가능하니까 말이죠.

 게다가 국적기가 여러 이유로 그다지 국민에게서 신망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더더욱이나 그럴 겁니다.

 중동항공사 공세에 여러 항공 피해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항공업계라는 양질의 일자리가 상당 부분 사라질 위험성이 크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아랍에미레이트항공·에티하드항공(이상 아랍에미리트), 카타르항공(카타르) 등이 대거 진출한 나라의 상황은 심각합니다.

에티하드항공은 인천에서 아부다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환승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에티하드항공은 인천에서 아부다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환승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앙포토]

 호주의 콴타스항공이 대표적인데요. 한때 호주를 대표하는 유명 대형 항공사로 다양한 유럽 노선을 운항하고 있었으나, 중동 항공사의 진출 이후 경쟁에 밀려 대부분의 노선을 폐쇄했습니다.

 싱가포르항공도 중동 항공사의 진출로 인해 수익이 50% 이상 감소하는 등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어프랑스도 여러 개 노선을 폐지했다고 하는데요.

 항공업계에선 노선(주 7회 운항 기준) 1개가 폐쇄되면 일자리 1500~1900개가량이 사라진다는 통계도 나옵니다. 실제로 EU에선 2010년~2015년 사이 항공 관련 일자리 8만개가 없어졌다고 하는데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해에는 델타항공 등 미국의 주요 항공사들이 중동 항공사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정부 지원금을 바탕으로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또 중동 항공사로부터 미국의 항공산업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상물까지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나라의 항공사들도 제대로 경쟁력을 갖추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요. 속사정은 이렇습니다.

 "국영 중동항공사, 막대한 보조금"  

 국내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동 항공사는 대부분 국영으로 사실상 왕실의 소유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에 막대한 규모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보조금을 바탕으로 초저가 공세를 펼치는 탓에 다른 나라 항공사들이 감히 요금 경쟁을 벌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중동 항공사들은 대부분 중동이 목적지가 아니라 유럽이나 아프리카, 미주 등지로 가는 환승객을 주로 유치하고 있는데요. 이 덕분에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공항은 환승률이 무려 50%를 넘습니다. 참고로 인천공항은 10%대 초반입니다.

 중동 항공사들이 이런 승객들을 대거 유치하면서 다른 경쟁 항공사들의 장거리 승객이 크게 줄어들게 되고 그만큼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 항공업계도 예외는 아닙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간 항공 여객은 65만명이었는데요.

 이 중 UAE 측 2개 항공사가 여객의 82%인 53만 명을 차지했습니다. 특히 아랍에미레이트항공의 경우 2016년 기준으로 인천~두바이 노선 승객 31만여 명 중 75% 가까운 23만여 명이 유럽 또는 아프리카가 목적지인 환승객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에티하드항공도 환승객 비중이 69%에 달했습니다. 결국 UAE와 한국 사이를 오가는 승객보다는 상당수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 환승객이었던 겁니다.

 UAE 측 항공, 한국 승객 70%유럽행  

 이렇게 UAE 측 항공사가 태운 유럽행 환승객은 우리 항공사의 유럽노선 수송객의 13%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무엇보다 저가 공세가 주 무기인데요. 예를 들어 최근 광고를 확인해보면 에티하드항공에선 서울~아부다비 노선을 최저 76만원가량에 판매합니다. 그런데 비행거리가 훨씬 긴 서울~파리 노선은 이보다 싼 74만원을 받습니다. 주로 우리 항공사와 경쟁하는 노선에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중동 항공사들은 자국에서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출혈 경쟁도 서슴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 항공사들은 그럴 수가 없기에 적지 않은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 항공사의 환승객 유치 규모가 커지면 커질 수록 인천공항 허브화는 더 어려워진다. [연합뉴스]

중동 항공사의 환승객 유치 규모가 커지면 커질 수록 인천공항 허브화는 더 어려워진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 최근 더 불안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UAE에 원전을 수출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인사치레를 해야 한다는 우리 외교라인의 압박에 상당하다는 겁니다.

 물론 UAE 측의 요구도 거셉니다. 현재 각 주 7회씩인 인천~두바이, 인천~아부다비 노선을 주 14회씩으로 늘려달라는 건데요. 지난해 6월 양국 간 항공회담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우리 측이 몇 가지 제한조건을 내세우면서 결렬됐습니다.

 UAE 증편 요구, 외교부도 거들어  

 하지만 이후에도 UAE 측이 집요하게 증편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만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UAE에서 특임대사가 올거란 소식도 들립니다.

우리나라가 UAE에서 건설한 바라카 원전 1호기.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나라가 UAE에서 건설한 바라카 원전 1호기.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원전과 노선 증편을 두고 어떤 식으로 '거래'가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게 우리 항공업계의 우려입니다.

 승객들이 저렴한 가격에 항공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혜택도 우리 항공산업이 무너져 경쟁력을 잃게 되면 다시 사라질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된 중동 항공사들이 요금을 다시 올릴 거란 얘기인데요. 항공사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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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우리 항공시장의 문을 열더라도 좀 더 객관적으로 국내 항공업계와 인천공항 허브화 등에 미칠 영향을 따져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에서 하자는 겁니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피해 사례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정치적인 계산에 치우친 항공시장 개방은 장기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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