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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화웨이 사태가 점화한 '상감령' 역사기억의 전쟁···승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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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저격능선과 상감령의 6·25 역사투쟁

이중섭의 표지화는 격렬하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켄타우로스가 등장한다. 몸짓은 강인한 자극이다. 몸에 피가 묻어있다. 초록 산마루다. 천재 화가의 시각적 언어는 유혈을 압축한다.

중국의 상감령 신화는 #국군의 저격능선 전적 앞에서 주춤 #기억의 전쟁 밀리면 ‘가짜 평화’ 득세 #한국은 중국한테 얕잡아 보여

책 제목은 『狙擊稜線(저격능선)』.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의 전시물(전쟁문학)이다. 사연은 이렇다. “군인 문중섭의 체험수기, 1954년 간행, 표지 장정(裝幀)은 화가 이중섭.”

DMZ 북쪽의 오성산과 저격능선, 삼각고지(철원 승리전망대 관측) 중국은 상감령으로 표시.

DMZ 북쪽의 오성산과 저격능선, 삼각고지(철원 승리전망대 관측) 중국은 상감령으로 표시.

저격능선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에 있다. 1952년 늦가을, 거기서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 그 전투는 6·25전쟁 3년(1950~53년 7월 27일) 중 가장 참혹했다. 한국군+미군 대(對) 중공군(중국 인민지원군)의 격투다. 적군 주력은 중공군. 북한군의 존재감은 희미했다.

그곳 지명은 상감령(上甘嶺)이다. 생소하다. 중국인에겐 익숙하다. 저격능선 옆은 삼각고지다. 중국은 두 군데를 묶었다. ‘상감령 전역(戰役)’ 하나다. 중국은 신화를 생산했다. 그 속에 과장과 거짓이 섞였다. “상감령은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 중 최대 승전 전역이다.” 중국의 6·25는 ‘항미원조’다.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저격능선 전투 전적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긴박해졌다.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회장 런정페이(任正非·임정비)는 다짐했다. “내년에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면 그들을 이끌고 상감령으로 진격할 수 있을 것이다.” (5월 26일 CCTV 대담) 중국은 상감령의 기억을 소환했다. 상감령은 승리의 상징이다. 그 정신은 위기 돌파의 집념이다.

는 이달 초 중부전선의 승리전망대를 찾았다. 저격능선과 상감령이 궁금해서다. 그곳은 지금 북한 땅이다. 전망대 위치(철원군 근남면)는 민통선 안쪽. 휴전선 155마일의 정중앙이다. 전망대(해발 459m)에 올랐다. 비무장지대(DMZ) 철책선과 붙었다. 북한 땅이 펼쳐진다. 관광해설사의 소개는 높고 먼 산부터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오성산(五聖山, 1062m) 꼭대기에 전파탐지탑이 보인다.” 그 탑은 북한군의 감청용이다.

중국의 상감령 동굴 진지(그림)

중국의 상감령 동굴 진지(그림)

오성산은 위압적이다. 남한의 철원과 김화를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 산등성이, 봉우리가 겹쳐 있다. 산세는 깊고 험한 느낌이다. 봉우리는 500~600m 고지들이다. 그중 하나가 저격능선(전망대 오른쪽), 길이 1㎞ 산등성이다. 가장 높은 곳이 538m. 전망대 왼편이 삼각고지(598m, 저격능선 남서쪽 2㎞)다. 지리책은 상감령, 하감령이다. 강이 보인다. 이름이 근사하다. 화강(花江, 남대천), 꽃강이다. 철길 흔적이 어렴풋하다. “금강산 구경 가는 전기철도다. DMZ 안이라서 강은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한다.” 말 속에 전쟁의 상흔이 담겼다.

1952년 10월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현상 타파에 나섰다. 휴전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선제공격이다. 목표는 200m 전방의 중공군 전초(前哨)진지.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다. 전투 양상은 고지 쟁탈, 진지전으로 바뀌었다. 그 1년 전, 미군은 중공군의 기습 사격에 쓰러졌다. 미군은 무명고지를 ‘스나이퍼 리지(Sniper ridge 저격능선)’로 불렀다.

저격능선과 상감령의 42일 혈전

저격능선과 상감령의 42일 혈전

10월 14일 새벽 공격 개시다. 저격능선 공략은 국군 2사단이 맡았다. 삼각고지 담당은 미군 7사단. 상대는 중공군 15군단의 45사단. 미군 야포가 불을 뿜었다. 전차의 포신도 뜨거워진다. 전폭기에선 융단폭격이다. 이어 보병의 돌격. 2사단 32연대가 저격능선을 점령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역습으로 퇴각했다. 뺏고 빼앗기는 혈투의 시작이다.

공군의 갱도 진지 전법은 교묘했다. 아군의 포격 동안 중공군은 동굴 참호에 숨는다. 밤이면 땅굴에서 나온다. 『저격능선』 수기의 저자 문중섭은 2사단 정보참모(중령)였다. 그는 중공군 포로를 심문했다. 갱도 전략을 파악했다. 2사단장은 정일권 중장이다. “근거리에서 총탄이 날고 수류탄이 터졌다. 총검과 야전삽으로 맞붙는 백병전이 다반사였다 ··· 27번 빼앗기고 28번 탈취했다.” (『정일권 회고록』)

미 7사단은 고전했다. 갱도작전에 말려들었다. 10월 25일 미군은 삼각고지 공략을 포기했다. 임무를 한국군에 넘겼다. 그 직후 부임한 2사단장은 강문봉 장군. 11월 5일 강문봉은 삼각고지 작전을 중단했다. 고지의 가치는 낮다. 희생이 많아서다. 전투는 42일(10월 14일~11월 24일)간 계속됐다. 한국군은 저격능선의 고지 셋(A·Y·돌바위) 중 두 곳(80%)을 확보했다. 중공군은 삼각고지를 방어했다. 하지만 저격능선에서 패퇴했다. 중국은 한국군 전과를 깔아뭉갠다. 2사단의 저격능선 공략은 미완성이다. 하지만 중국의 상감령 신화도 절반의 진실이다.

중국판 상감령 영웅 황계광 묘지(중국 선양)

중국판 상감령 영웅 황계광 묘지(중국 선양)

원로 백선엽 장군의 증언은 이렇다. “저격능선에서 중공군은 패배했고 희생도 아군의 2배로 막대했다. 중국이 최고 승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체 선전일 것이다.” (회고록 『나를 쏴라』)  1953년 7월 휴전 직전, 상황이 재역전됐다. “중공군의 최후 공세에 국군은 전격능선에서 전술적으로 후퇴, 싸워보지도 않은 채 적에게 넘겨줬다.” (국방부 전사편찬 『한국전쟁전투사』)

중국의 승전 기록은 미군 격퇴, 오성산 방어에 맞춘다. 지하갱도의 고난은 신화의 소재다. “동굴진지는 물이 적다. 겨와 풀을 먹으며 버텼다(吃糠咽菜·흘강인채). 그 정신으로 미군을 제압했다.”(중국 선양 항미원조열사능원)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는 이렇게 강조했다. “오성산을 잃으면 조선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13년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성산을 찾았다. 중국에 ‘상감령’이 깔려 있다. 박물관·기념관·묘지에서 만난다. 상감령은 영화로 제작된다(1956년).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지시다.

2011년 당시 중국 주석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의 미국 백악관 방문 때다. 피아니스트 랑랑(郞朗)의 연주곡은 ‘나의 조국(我的祖國)’. 영화 ‘상감령’ 주제가다. 이런 가사가 들어 있다. “승냥이와 이리(豺狼·시랑)가 오면 엽총으로 맞이하겠다.” 승냥이는 미국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속절없이 당했다. 영웅담은 다듬어진다. 중국판 상감령의 특급 영웅은 황지광(黃繼光·황계광)이다. 전사 장소는 삼각고지. "가슴으로 적의 기관총 화구를 막았다”고 한다. 랴오닝성 선양에 항미원조열사능원이 있다. 그곳에 그의 묘가 있다. 시멘트 봉분이다.

이중섭의 표지화

이중섭의 표지화

는 신철원에 갔다. 노병(이기호·76)을 만났다. 그는 관록의 2사단 17연대 부사관 출신이다. ‘저격능선 전투 전적지’로 이동했다. 철원 쉬리공원 옆 동산이다. 1957년 7월 김종오 5군단장이 세웠다. 비문은 단호하다. "오만한 적 중공군과 용감히 싸운 불멸의 투혼” 이기호씨는 "중공군은 국군의 전투력을 깔보았다. 저격능선에서 오만함이 드디어 분쇄됐다.” 노병의 낯빛이 씁쓸해진다. "6·25전쟁 69주년인데, 저격능선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중섭의 작은 그림도 잊혀졌다.

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 ‘6·25전쟁 전사자 영웅기’가 있다. 저격능선 조정훈 이등중사(병장)의 활약이 담겼다. 현충원의 조정훈 묘지는 평범·간략하다.

‘1952년 11월 18일 김화에서 전사’라고 적혀 있다. 저격능선이란 글자는 없다.

한반도는 기억의 전쟁터다. 한국은 그런 문화전투에서 부실하다. 보수우파의 그런 기량은 미흡하다. 그 전투에서 밀리면 치명적이다. 가짜 평화론이 득세한다. ‘정의로운 평화’의 요소는 군사력과 안보 의지다. 그것 없는 평화는 비굴하고 수세적이다.

‘상감령’은 역사의 시위다. 북·중 결속의 원동력이다. 한·미동맹의 기억은 소홀해졌다. 그로 인한 손실은 결정적이다. 중국은 한국을 얕잡아본다. 북한도 한국을 무시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마감했다. 선택의 전환점이다. 화웨이 사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처방은 미숙하다. 사드 논란의 복사판이 될 조짐이다.

역사 기억은 리더십에 지혜와 투지를 넣는다. 국민적 단합을 투사한다. 저격능선의 기억은 당당하다. 상감령의 위세는 그 앞에서 주춤한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