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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이게 정상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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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난감할 것이다. 탄도 미사일을 발사해도 다들 “괜찮다”고 한다. 심지어 “단거리 미사일은 어느 나라나 발사한다”(트럼프)고 감싸준다. 도발을 통해 어떻게든 북미 협상의 판을 바꿔보려 한 김정은 입장에선 이런 황당함이 따로 없다. 하노이에 이은 2차 오산이다. 결국 시진핑을 끌어들여 반전에 나설 채비다. 사실 상식으로만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를 정면으로 위반했다. 그런데도 미 국방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안보리 결의 위반”, 국무장관은 “아마도 위반”, 대통령은 “위반 아님”이라 한다. 코미디 같은 비정상적 상황이다. 한국 국방부는 한술 더 뜬다. 발사 한 달 반이 다 되도록 그저 “분석 중”이란다.

북 미사일 발사 “괜찮다”는 비정상 #북한의 친서 두고 “봤다”는 비정상 #비정상의 정상화, 결코 오래 못 가

‘김정은 친서’ 소동도 비정상이다. 친서란 지도자의 뜻을 상대국에 전달하는 고도의 외교 행위다. 해당 국가 지도자도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친서 자체가 국가 기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문제됐던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이 미국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를 두고, 제 3국인 한국의 청와대가 이해못할 발언을 내놓았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그것(친서)을 보긴 했다. 보고 예상한 것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편지를 보게 되면 ‘참 아름다운 편지’라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명백히 우리가 미리 친서를 봤다는 뉘앙스였다. 나중에 “‘봤다’는 것은 내용을 알았다는 것”, “‘미국으로부터 내용을 통보받았다’가 맞다”고 수습했지만, 참으로 외교적 절도가 있는 청와대인지 의심스럽다. ‘봤다’와 ‘알았다’, ‘봤다’와 ‘통보받았다’가 같은 뜻인가?

또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친서에)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지 않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고 말한 것도 문제다. 사전에 봤거나 들었다 해도, 그게 아무리 솔깃한 내용이었다 해도 당사국은 가만있는데 제 3국인 우리가 거론할 일이 아니었다. 아니 나서선 안 됐다. 외교의 기본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제 3자인 아베 일본 총리가 트럼프로부터 ‘전달’받았다. 그걸 들은 아베가 “아, 내가 들었는데, 한미 정상 사이에 공개하기 힘든 미묘한 대화가 있었다고 하던데”라 말한다. 어떻게 될까. 우리는 가만히 있었을까. 우리의 외교 민낯이 지금 이렇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오래 갈 수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제재 위반 아니다”는 발언은 협상 타결을 위한 고도의 전략도, 치밀한 전술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시간 끌다 내년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가지치기다. 재선을 확정하는 순간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김정은을 ‘폭군’이라 부르는 조 바이든이 승리하는 순간 대북 외교는 원점으로 유턴한다. 찰떡궁합 ‘바이든-시진핑’이 손잡고 북한에 어떻게 나설지 장담할 수 없다. 한마디로 북한으로선 지금 ‘비정상 국면’이 마지막 기회다. ‘정상’으로 돌아간 걸 깨닫는 순간은 이미 늦었다.

우리의 비정상 외교도 마찬가지다. 동맹도 우방도 멀어져간 ‘북한 올인 외교’는 한계에 직면했다. 지금이 그 한계점이자 전환점이다. ‘대북제재 완화’와 ‘완전한 비핵화’사이에서의 줄타기는 결국 아무런 도움도, 효과도 없었음을 우리는 1년 넘게 목도했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최근 북한에 먼저 핵 폐기 의지를 보이라고 촉구한 것은 좋은 신호다. 차선을 바꾼 만큼 이제 대한민국 외교의 실무 사령탑도 바꿀 때가 됐다. 군기만 잡고 책임은 안 지는데, 조직의 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리더십의 대가 러셀 유잉은 “보스는 비난을 돌리고, 리더는 잘못을 바로잡는다”고 했다. 국민은 보스를 원할까, 리더를 원할까. 답은 나와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