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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의 사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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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사회에디터

강주안 사회에디터

믿기지 않았다. 방금 본 동영상 속에서 낯뜨거운 행위를 하는 중년 남성이 대한민국 법무차관이라는 주장에 눈과 귀를 의심했다. JTBC 사회2부장을 맡던 2013년, 한 제보자가 이 영상을 내게 디밀었다. 어떻게 확인 취재할지 고민하던 터에 다른 언론에 기사가 나와버렸다. 영상 속 인물의 정체를 둘러싼 오랜 논란은 지난 4일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이 맞다”고 밝히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김 전 차관의 공소장에는 6년 전 봤던 영상이 재연돼 있었다. 김 전 차관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다른 여성과의 얘기도 적혀 있다.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이제 공소장 내용이 맞는지, 성접대가 뇌물에 해당하는지 법정 다툼이 벌어질 텐데 ‘성관계=뇌물’이란 판례를 만들어 준 장본인도 검사다. 2012년 서울동부지검의 전모 검사가 절도 혐의를 받던 여성을 검찰청사로 불러내 검사실에서 유사 성행위를 했다. 모텔과 승용차로 무대를 옮겨가며 벌어진 성접촉을 법원은 뇌물로 인정해 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또 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자신이 성추행했던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언론은 당분간 검찰 고위직 출신들의 민망한 재판을 보도해야 한다.

전 차관·검사장 성추문 관련 재판 #검찰서 끊이지 않는 성 의혹 스캔들 #새 지휘부, 이것만이라도 근절해야

안태근 전 검사장(왼쪽)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안태근 전 검사장(왼쪽)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의혹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오죽하면 김웅 대검 미래기획·형사정책단장이 『검사내전』이라는 책에 ‘내가 검찰에 들어온 뒤 이 조직은 늘 추문과 사고에 휩싸였다’고 썼을까. 요 몇 년 사이 굵직한 사건만 떠올려도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중도하차하는가 하면 제주지검장은 여고생이 보는 데서 음란행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검찰이 왜 이럴까.

밖에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일탈로 보는 시각이 많다.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영국 역사가 액튼 경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검사들은 재산이 많거나 퇴직 후 전관예우로 풍족하게 벌 수 있으니 돈을 직접 받는 경우는 드물다”며 “대신 호화접대로 권력을 맛보려는 검사가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어느 로스쿨 교수는 “우리 땐 시보로 현장에 나가도 ‘영감님’ ‘시보영감님’이라고 불렀다”면서 “사회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그런 대접을 받아온 검사들에게 아무런 견제도 없었으니 문제가 안 터지면 이상한 일”이라고 꼬집는다.

검사 성접대에 관한 증언은 차고 넘친다. 한 여성 변호사는 검사 시절 부장검사가 들려준 향응 무용담을 SNS에 올렸다. ‘(지역유지의) 호화 요트 위에서 자신이 오일을 발라주던 아가씨의 탄력 있고 날씬한 몸과 매끄러운 피부에 대해서 상세히도 묘사하셨던 기억이 난다.’

서소문 포럼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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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는 일부 검사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라는 검찰 내부의 반론도 많다. 하지만 검찰 안을 들여다보면 억울할 게 없다는 자백이 나온다. 한 지청장 출신 변호사는 “검사들이 법률지식은 뛰어나지만 윤리 수준이 그에 못 미치기에 벌어진 사태”라며 “검사 시절 윤리 의식을 깨우쳐 주는 선배는 못 만났지만 호기롭게 술 마시는 걸 가르쳐 주는 부장은 여럿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전직 검찰 간부는 “물의를 빚은 개인의 잘못이 크지만 이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힌 검찰도 문제”라며 “함께 근무했던 검사들 사이에서 ‘아무하고나 어울리는 사람’ ‘여자 문제가 석연치 않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나오는 인물들이 거침없이 승진했다”고 지적했다.

의혹이 불거진 뒤 목격된 검사들의 행태 역시 실망스럽다. “사람을 잘못 본 거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발뺌했다. 당사자들이 강력히 부인하는 바람에 검찰과 경찰은 CCTV를 죄다 분석하고 산부인과 기록을 뒤져야 했다. 일련의 성추문 사건을 다루며 알게 된 팩트는, 허물이 발각된 검사의 경우 자신의 법률지식과 수사경험을 십분 활용해 도주·잠적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크다는 사실이다.

지금 검찰은 변화의 기로에 섰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을 시작으로 지휘부가 대거 교체된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논의도 무성하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검사의 사생활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지면과 전파를 ‘19금(禁)’ 기사로 뒤덮는 일만큼은 더는 벌어지지 않게 해달라. 그것만 달라져도 세상은 한결 환해진다.

강주안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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