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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막내형’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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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팀 차장

김승현 정치팀 차장

막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살 많은 골키퍼 이광연의 볼을 어루만지며 위로했다. 그는 또 어떤 마음이었길래 우승컵을 놓치고도 웃을 수 있었나. FIFA 주관 남자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오르는 역사를 쓴 이강인(18)과 한국 대표팀은 눈물 대신 다른 것을 보여줬다.

이강인의 별명 ‘막내형’은 그 출발점이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라. 한국 사회에서 ‘막내’와 ‘형’이 결합하기 쉬운 일인지. 10살 때부터 시작된 스페인 축구 유학에서 쌓은 월드클래스 기량, 장난기 많은 그의 개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동시에 형 같은 막내를 포용한 팀 분위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막내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선배, 조직 문화가 없었다면 결승 티켓은 없었다.

정정용 감독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리더다. 마지막 경기 뒤 인터뷰에서 리더십의 ‘비밀’이 포착됐다. 팀의 TSG(테크니컬 스터디 그룹)에 감사를 표하면서다. “전략과 전술은 TSG 세 분이 뒤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저 또한 TSG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팀들을 분석하고 난 다음에 지도자들과 소통하는 부분이 아쉬웠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부탁을 했고 그런 부분을 발전시켰다. 너무나 감사드린다.”

새 역사를 쓴 힘은 소통이었다.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지 않는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명장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은 초기에 “지금부터 무조건 반말을 하라”고 지시했다. 과도하게 엄격한 선·후배 관계를 경기력의 ‘적폐’로 본 것이다. 김남일이 8살 형 홍명보에게 “명보야,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는 후일담은 유명하다. 그런 신화가 간절해 보이는 우리 정치에도 ‘막내형’이 나타날 수 있을까. 말로는 국민만 본다면서 실제론 윗선의 심기만 살피는 ‘형님들의 천국’에선 요원한 일이다.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