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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퍼 예산과 특단의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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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 차장

하현옥 금융팀 차장

영국 런던의 금융가 시티에 이런 말이 있다. ‘그건 단지 OPM일 뿐이다.’ OPM은 ‘남의 돈(Other People’s Money)’의 약자다. 주가를 높이려 투자은행이 떠안는 위험의 책임은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다. 은행가는 보수 중 일부를 주식과 주식매수청구권(스톡옵션)으로 받는다. 주가를 올리려 위험한 투자도 감수한다. 손실은 주주와 납세자의 몫이다. 세계금융위기 때 본 그대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견하며 ‘블랙 스완’이란 말을 만든 나심 탈레브는 이런 현상을 ‘밥 루빈 트레이드’로 불렀다. 책임은 남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이익만 취하는 거래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의 이름을 땄다. 그가 회장이던 씨티은행이 금융위기 당시 지급 불능상태에 빠져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지만 그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탈레브는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집단은 밥 루빈 트레이드 방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피해자는 납세자나 주주인 탓에 문제에 대해 거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책 먹튀’인 셈이다.

한국판 ‘밥 루빈 트레이드’에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이름을 올릴까 걱정스럽다. 소주성을 주도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11월 “내년(2019년)에는 소주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주중대사로 자리를 옮긴 그의 호언장담에도 효과는 요원해 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4일 “경기 하방 리스크가 커져 하반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정도다.

나라 곳간은 이미 활짝 열렸다. 올해 예산 470조원에 추가경정예산(6조7000억원), 내년(499조원)까지 ‘수퍼 예산’ 행진이 예고됐다. 여기에 ‘특단의 대책’까지 가세하면 납세자는 아찔하다. 정치인과 관료에겐 단지 OPM일뿐이겠지만.

하현옥 금융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