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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미 간 성장률과 실업률 역전, 그 심각한 이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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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경제가 말이 아니다. 1분기 성장률은 -0.4%를 기록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해(한국 2.67%, 미국 2.86%)에 이어 올해도 미국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 실업률은 3.83%를 기록해 고용률은 9년 만에 가장 낮았고, 실업자는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올해도 사정은 그다지 변하고 있지 않다. 추이를 보면 지난해 우리보다 높았던 미국의 실업률(3.9%)이 올해엔 한국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 한국과 미국의 성장률과 실업률이 동반 역전되는 셈이다.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대표 주자다. 인구는 한국의 6배, 경제 규모는 12배에 달한다. 2차대전 이후 세계 맹주의 자리를 차지한 이후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에 롤 모델이 돼 왔다. ‘미국처럼 잘살아 보자’는 한국의 추격형 경제전략의 토대이기도 했다. 그런데 성장률과 실업률 추이를 보면 더 이상 추격형 경제전략이 먹히지 않는 것 같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에서 보듯 미국이 다른 나라에 큰 혜택을 주는 경제정책을 쓸 여력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어느새 미국의 어깨를 위협하고 있어서다. 이미 미국은 21세기 초부터 한국에 대해 관세나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같은 압력을 가해오고 있다. 1980년대 대처와 레이건이 만들었던 세계화라는 자유무역체제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로서 값싸고 좋은 물건을 만들면 된다는 그동안의 경험칙이 더는 진리가 아닐 수 있게 됐다. 저출산·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적응에의 혼선은 우리 내부의 성장 지체 요인이다.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지탱해 왔던 우수한 노동력이라는 요인의 장점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성공으로 이끌어 왔던 성공의 경험칙들이 사라지거나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출 진흥이나 신산업 육성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경제라는 차가 달리는 도로 자체의 문제보다 도로의 방향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는 건 정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어떤 길을 어떻게 달리면 좋은지 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들에 쓸모있는 내비게이션을 제공해야 한다. 차갑게 식은 성장 동력과 국민 열정을 되살려야 하는 우리 정부가 위기의 심각성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