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폭풍 현지지도’에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잠행 모드’에 들어갔다. 정부 당국자는 16일 “김 위원장이 지난 4일 군인가족예술소조 공연 참석자들과 기념사진 촬영(보도일은 5일)을 한 뒤 12일 동안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 기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축전(국경절 기념)을 보내고,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에 조화를 보내긴 했지만,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배경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6월초 ‘잠깐’ 건재 확인뒤 12일간 공개활동 중단
김 위원장은 지난달 9일 북한군이 단거리 미사일을 동원해 실시한 화력 타격 훈련 참관을 끝으로 22일 동안 공개활동을 멈춘 뒤 지난달 31일부터 5일간 모두 11회의 공개활동을 했다. 그러나 이후 다시 모습을 감춘 것이다. 당국자는 “김 위원장은 한국과 외국의 언론 보도를 꼼꼼하게 챙겨보는 것으로 안다”며 “지난달 김 위원장이 공개활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방 언론이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자 하루에 6차례(5월 31일)나 공개활동을 펼치는 등 건재를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큰일을 앞두고 두문불출하는 경향을 보여 왔는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올해 들어 열흘 이상 공개활동을 하지 않는 횟수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다섯 차례다. 그는 지난 1월 김영철 당 부위원장이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했을 때 12일 동안 활동을 멈췄다. 2월에는 2차 북ㆍ미 정상회담(2월 27~28일)을 앞두고 두 차례나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3월 역시 11일부터 24일까지 모습을 감춰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충격을 보여줬다. 지난달엔 단거리 미사일 발사(9일) 이후 22일 동안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당국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회담 준비와 회담 결렬 이후 대책 수립, 휴식을 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잠행과 관련해선 하반기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뒀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달 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장고(長考)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를지켜보겠다고 했다”며 “북한이 명운을 걸고 진행하고 있는 북ㆍ미 대화 전략을 짜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지난해 5월 22일과 9월 24일 열린 한ㆍ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남북 정상회담(각각 5월 26일, 9월 19일)을 통해 한국에 기댄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두 차례의 북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직거래 라인이 생겼고, 김 위원장이 올해 말까지라는 시한을 정한만큼 미국과 최후 담판을 위한 새판짜기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남북 간에 원 포인트 정상회담을 할 것인지, 또는 지난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따른 시나리오를 짜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