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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보험 해지 못하는 당신, 왜 그럴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성진의 돈의 심리학(45)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말처럼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가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매 순간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인생은 멋진 스토리가 될 수 있겠지만 어리석고 멍청한 선택을 반복한다면 삶은 엉망이 되겠지요.

그런데 그 선택이 늘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투자, 소비 등 돈과 관련된 경제적 선택 뒤에 따라오는 후회와 안타까움은 자주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지혜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것 중 제대로 개념을 정리해봐야 할 두 가지 비용이 있습니다.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놈을 살펴보고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매몰비용, 엎질러진 물

우리는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미 투자해서 회수할 수 없는 돈과,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가장 큰돈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래픽 장미혜][MY LIFE]

우리는 돈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미 투자해서 회수할 수 없는 돈과, 하나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가장 큰돈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래픽 장미혜][MY LIFE]

매몰비용이란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합니다. 이미 지출해버린 광고비용, R&D비용, 건축설계비 등을 말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없는 비용으로 현재 및 미래의 경제적 가치는 제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이 비용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매몰비용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를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매몰비용의 오류는 참 다양한 곳에서 발생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봅시다.

현재 80% 정도 진행된 신상품 개발에 많은 돈이 투자된 상황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상품 개발이 완료되는데, 경쟁사에서 상품을 곧 출시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투입된 80%가 중요할까요? 앞으로 추가로 투입될 20%가 중요할까요? 합리적인 이성으로 풀기엔 쉬운 문제이지만 이미 투입된 개발비, 즉 매몰비용 때문에 개발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곤 합니다.

당신이 가입한 보험 상품이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믿고 가입했습니다. 제법 똑똑해 보이는 컨설턴트와 상담을 하면서 그 상품이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설계사가 권하는 대로 상품을 변경하는 것이 보장도, 수익도, 비용면에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만 이미 납입한 보험료 때문에 계속 그 보험을 유지합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자격증이 공부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좋은 일자리를 가져다주기 힘들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도 이미 투입된 돈과 노력 때문에 계속하고 있다면, 연인과 헤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사귀는데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출한 돈과 시간, 쌓인 정 때문에 이혼 못 하고 있다면, 당신은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매몰비용의 오류에서 빠져나오려면 이들 질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투입될 비용으로 그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상품을 개발하겠는가’ ‘당신이 지금 결혼한다면 현재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는가’ ‘당신이 지금 미래의 직업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다면 그 공부를 시작하겠는가’….

당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굴곡을 헤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위기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투자한 것에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련을 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매몰비용의 오류는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만듭니다. [사진 unsplash]

당신은 지금까지 수많은 굴곡을 헤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위기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을 내려놓을 수 있나요? 투자한 것에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미련을 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매몰비용의 오류는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만듭니다. [사진 unsplash]

우리는 너무 자주 본전 생각에 매몰돼 멍청한 선택을 합니다. 본전 생각에서 빠져나오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선택을 하려면 본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매몰비용과 달리 선택할 때마다 생각해야 하는 비용이 있는데, 바로 기회비용입니다. 사전적으로 기회비용이란 하나의 재화를 선택했을 때 그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 중 가장 큰 것의 가치를 말합니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 비용입니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1000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기로 합니다. 이때 이 1000억 원의 기회비용은 집행된 예산 1000억 원이 아니라 1000억 원으로 창출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일 수 있고, 1000억으로 지원할 수 있는 출산장려정책일 수 있습니다. 기회비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회계적 비용과 다릅니다. 회계적 비용이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원한 1000억 원이지만 기회비용은 1000억 원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댄 애리얼리가 『부의 감각』에서 실행한 간단한 실험을 하나 소개합니다. 도요타 자동차 매장으로 가 사람들에게 “신차를 사면서 무엇을 포기할 것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거의 아무도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살 경우 우리는 무엇을 포기해야 할까요? 여름휴가, 학자금대출 상환, 신혼집, 할부금 등 많은 것이 있겠지요. 그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지출한다면 우리는 좀 더 똑똑하게 지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요리를 배우고 싶은 고3 자녀가 있습니다. 부모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대학을 보내려고 지금까지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갔겠지만, 그것은 매몰비용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회비용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입학해 4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 등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1억 원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보통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비용을 1억으로만 생각합니다. 기회비용은 다릅니다.

댄 애리얼리(사진)는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실험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차 구입으로 포기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앙포토]

댄 애리얼리(사진)는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실험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차 구입으로 포기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앙포토]

자녀가 요리를 배우면서 4년 동안 취업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1억 원의 돈을 번다면, 대학생활에 들어갈 1억 원과 자녀가 번 돈 1억 원을 합쳐 2억 원이 기회비용이 됩니다. 4년 뒤 2억 원으로 경험과 열정을 살펴 가게를 오픈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대학 졸업장을 갖는 것을 비교한다면 부모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매몰비용은 과거를 보고 있고 기회비용은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때 과거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 회복할 수 없는 본전 생각나게 하는 매몰비용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대되는 이익보다 손실을 싫어하는 우리는 기회비용보다 매몰비용에 마음이 가기 마련입니다.

매몰비용보단 기회비용에 민감해야

매번 기회비용을 떠올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금요일 저녁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이 술값의 기회비용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의 크기’ 라거나 ‘영화 기생충을 가족들이 함께 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돈’ 등으로 생각하기는 절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선택을 통해 포기하게 되는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습관은 지혜로운 선택에 매우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을 바꾸고 이직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을 구분해 생각하면 선택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온 업종에서 변화가 필요할 때 어떤 사람은 지금까지 그 직업을 갖기 위해 받은 교육과 들어간 돈, 시간과 노력을 따집니다. '내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변화와 도전을 가로막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주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한다면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미 매몰돼 버린 비용이 아니라 기회를 생각하게 하는 비용에 좀 더 민감해지면 좋겠습니다.

신성진 한국재무심리센터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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