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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국 못 믿어, 트럼프와 대화 안해" 퇴짜 맞은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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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나 중동의 긴장완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나 중동의 긴장완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발언은 믿을 수가 없다. 트럼프에게 줄 답변은 없다.”

하메네이와 면담 "1983년에 따뜻하게 맞아줘" #트럼프 메시지 전하자 "트럼프 말은 거짓말" #"트럼프에게 전할 답변도 없다"며 퇴짜 #트럼프는 아베 보내놓고 이란에 추가 제재

미국과 이란 사이 중개역을 자임했던 아베 총리가 이란의 최고지도자로부터 들은 반응은 차가웠다.

14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3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와 회담을 가졌다. 아베 총리는 회담 모두에서 1983년 당시 외상이었던 아버지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가 이란을 방문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외상의 비서관으로 동행했다.

하메네이는 당시 대통령이었으며, 아베 외상의 면담 상대였던 베라야티 외상은 현재 하메네이의 외교 고문이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5월 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이란에 가달라는 요청을 받은 직후, 6월 초순 이란으로 소노우라 겐타로(薗浦健太郎) 총리비서관을 특사로 파견했다. 소노우라 비서관은 세라야티를 만나 '이란이 미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다만 하메네이 본인이 미국과 대화의사가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한 채 “가서 승부를 보자”(총리 주변인사)는 생각으로 이란행을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이란으로 향하기 전 주변인사들에게 “미국에서는 ‘꼭 가달라’고 하고, 이란에서는 ‘꼭 와달라’고 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도쿄의 하네다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이란 방문을 마치고 도쿄의 하네다 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메네이는 “당시 (1983년 방문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선의와 진지함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는 단호히 거부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자, 하메네이는 “압력을 받으면서 교섭을 하는 인물이 어딨나”라며 곧바로 맞받아쳤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미국과의 교섭으로 입은 괴로운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또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체제전환을 할 계획은 없다”고 하자, 하메네이는 “체제전환할 생각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아베 총리의 말을 반박했다.

이란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며 일본 전통 고급 도자기인 쿠다니야키(九谷焼)까지 선물했던 아베 총리로선 당혹스런 상황이었다.

하메네이는 이어 “아베 총리의 설명이 있었지만 (미국의) 발언은 믿을 수 없다. 트럼프는 메시지를 교환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트럼프에게 전할 답변도 없다”며 쐐기를 박았다. 이 같은 하메네이 측의 반응은 일본 정부 설명에선 나오지 않았던 부분이다.

트럼프가 아베의 이란 방문 직후 올린 트위터. "아베 총리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만난 건 고맙지만, 이란과 합의에 이르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밝혔다. [트위터 캡쳐]

트럼프가 아베의 이란 방문 직후 올린 트위터. "아베 총리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만난 건 고맙지만, 이란과 합의에 이르기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고 밝혔다. [트위터 캡쳐]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을 두고 “시련의 중개외교”(요미우리 신문), “일본의 중개역할 재검토”(마이니치 신문)라고 보도하고 있다. 더구나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하메네이와 연관된 이란 기업과 관계자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도 발동했다.

아베 총리를 중개역으로 이란에 보내놓은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이란 지도자 면담이 끝난 뒤 트위터를 통해 “이란과의 합의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그들도 준비가 안 됐고, 우리도 준비가 안 됐다”라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긴장 완화를 위한 길은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앞으로도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해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내용에 대해선 “코멘트하지 않겠다”면서 말을 아꼈다.

아베 총리는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갖고 이란 방문 내용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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