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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돈많은 재력가 집안···변호사 써서 가석방 무섭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처 고유정(36)에게 살해된 강모(36)씨 방. 작은 상 위에 강씨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모자와 안경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다. 강씨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올려 놨다고 한다. 제주=김준희 기자

전처 고유정(36)에게 살해된 강모(36)씨 방. 작은 상 위에 강씨 영정 사진이 놓여 있다. 모자와 안경은 강씨가 생전에 쓰던 물건이다. 강씨 아버지가 아들을 그리워하며 올려 놨다고 한다. 제주=김준희 기자

"아버지는 아직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직 아들 죽음 안 믿겨 생전 물건 올려놔 #강씨가 6살 아들 위해 만든 바람개비 그대로 #동생 "한 번도 못 날려보고 떠났다" 탄식 #양육비 보내느라 9900원·철 지난 옷 사 #한 달간 블랙박스 보니 '학교-집'만 오가

지난 11일 제주시 한 빌라. 전처 고유정(36)에게 살해된 강모(36)씨 집이다. 강씨 방에는 그의 영정 사진이 작은 상 위에 놓여 있었다.

강씨와 세 살 터울인 남동생(33)은 "형 영정 사진을 모신 상에 매일 물건이 하나씩 늘어 간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버지는 이틀 전에는 형이 쓰던 안경, 어제는 모자를 올려놓으셨다"고 했다. 유족은 아직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 고유정이 강씨 시신을 심하게 훼손해 바다와 육지, 쓰레기장 등에 나눠 버려서다. 이 탓에 유족은 강씨 방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러 향을 피우고 '살아있는 사람처럼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강씨가 아들(6)과 함께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도 책꽂이 위에 그대로 있었다. 동생은 "형은 조카와 함께 '노루도 보러 가고, 아쿠아리움도 보러 가야지' 하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 번도 날려보지도 못하고 떠났다"고 탄식했다. 그는 "형은 아들 장난감과 옷가지, 양말까지 하나도 안 버렸다"고 했다. 강씨 옷은 옷걸이 봉 하나에 걸려 있는 게 전부였다. 동생은 "형은 9900원짜리 옷이나 유행 지난 이월 상품을 가져 왔다"며 "(매달 40만원씩 보내는) 양육비가 우선이었다"고 했다.

강씨가 아들(6)과 함께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가 책꽂이 위에 그대로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강씨가 아들(6)과 함께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가 책꽂이 위에 그대로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동생은 "최근 한 달간 블랙박스 영상을 봤는데 형은 '학교-집'만 오갔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꽃도 못 피워 보고 갔구나' 생각하니 서글펐다"고 했다. 동생과의 인터뷰는 강씨 집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그 사이 친척들이 방문해 강씨 어머니 등을 위로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형 방인가.
"형이 보던 책이며 쓰던 물건이 그대로 있다. 형은 아들 장난감과 옷가지, 양말까지 하나도 안 버렸다. 형 옷은 이게 전부다.(※강씨 옷은 옷걸이 봉 하나에 걸려 있었다.) 9900원짜리 옷이나 유행 지난 이월 상품이다. (매달 40만원씩 보내는) 양육비가 우선이었다. 형은 연구실 일이 바빠 주말에 이벤트 회사에서 물품을 나르거나 시험 감독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뼈 빠지게 일했다. 그래도 밤새워 논문을 썼다. 최근 한 달간 블랙박스 영상을 봤는데, 형은 '학교-집'만 오갔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는데, 꽃도 못 피워 보고 갔구나' 생각하니 서글펐다."

-영정 사진 앞에 있는 안경과 모자는 뭔가.
"형 영정 사진을 모신 상에 매일 물건이 하나씩 늘어 간다. 아버지는 아직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틀 전에는 형이 쓰던 안경, 어제는 모자를 올려놓으셨다."

-책꽂이 위에 바람개비 2개가 있다.
"형은 조카와 함께 '노루도 보러 가고, 아쿠아리움도 보러 가야지' 하면서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 번도 날려(돌려)보지도 못하고 떠났다. 아들을 그리워한 게 죄인가."

강씨 영정 사진 옆으로 강씨가 끔찍이 사랑한 아들 장남감과 옷가지가 쌓여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강씨 영정 사진 옆으로 강씨가 끔찍이 사랑한 아들 장남감과 옷가지가 쌓여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형은 어떤 사람이었나.
"형은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제일 사랑했던 아들이자 제가 제일 존경했던 사람이다. 앞날도 창창했다.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도 여러 편 냈다. 중간에 유수 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있었는데 형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거절했다. 그런데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형이 (고유정에게) 폭행과 폭언을 했다거나 그 여자 돈이라도 가져갔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 같다."

경찰은 12일 "고유정이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며 '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보냈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아들을 만나러 온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해 최소 3곳 이상 장소에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손괴·은닉)를 받고 있다.

이날 고유정 모습을 보기 위해 강씨 부모와 동생 등 유족과 지인 10여 명은 제주 동부경찰서를 찾았지만, 끝내 얼굴은 보지 못했다. 유치장에서 호송차로 이동하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꼭꼭 숨겨서다.

-심정이 어땠나.
"크게 세 가지를 원했다. (피의자) 신상 공개와 형님 시신 수습, 사형 청구였다. 신상 공개 하나는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여자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려 '셀프 비공개' 했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저희가 뭘 이뤘는지 모르겠다. 그 여자는 돈 많은 재력가 집안이어서 좋은 변호사를 써서 몇십년 살다 (형기) 3분의 1을 채우고 가석방될까 봐 무섭다. 우리 아픔은 누가 치유해 주나."

강씨 동생이 숨진 형이 조카와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를 가리키고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강씨 동생이 숨진 형이 조카와 날리려고 만든 바람개비 2개를 가리키고 있다. 제주=김준희 기자

강씨 방에 있는 아들 장남감과 옷가지. 동생은 "형은 아들 양말까지 하나도 안 버렸다"고 했다. 제주=김준희 기자

강씨 방에 있는 아들 장남감과 옷가지. 동생은 "형은 아들 양말까지 하나도 안 버렸다"고 했다. 제주=김준희 기자

제주=김준희·최충일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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