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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도리 없는 우투리를 이성계가 두려워했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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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35)

'로봇다리 세진이' 김세진 수영선수(왼쪽)와 '사지 없는 인생' 대표 닉 부이치치(오른쪽). 이들은 신체적 장애를 부정적인 맥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며 남다른 삶을 살았다. 만약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억압하기만 했다면, 날개를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앙포토]

'로봇다리 세진이' 김세진 수영선수(왼쪽)와 '사지 없는 인생' 대표 닉 부이치치(오른쪽). 이들은 신체적 장애를 부정적인 맥락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하며 남다른 삶을 살았다. 만약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이들을 억압하기만 했다면, 날개를 펼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중앙포토]

우리 말에 ‘반편이’란 표현이 있다.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모자라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모자라다’라는 의미에서 ‘모지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전라도 방언이고 표준어로는 ‘머저리’이다. ‘반편이(半偏-)’에서 ‘반(半)’은 한자 형상이 나타내듯, 하나를 둘로 갈랐을 때 그중 한쪽을 의미한다.

그런데 단순히 2분의 1이 아닌,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한, 반쪽밖에 안 되는, 되다 만, 모자라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맥락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온전하지 못함’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하는 유명한 언술처럼, 더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과 아직 채우지 못했다는 불안을 함께 안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온전함’에 대한 관념은 아버지·어머니·아들·딸로 온전하게 이루어진 가족이라야 정상이라는, 나이 차면 이성 짝을 만나 연애를 해야 온전하다는, 그리고 나아가 결혼해 온전한 부부를 이루어야 정상이라는, 정상성의 추구와 연결된다. 따라서 반을 더 채울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다는, 모자라는 반을 빨리, 어떻게든 채워야 한다는 불안을 강제하며 반편이, 머저리를 몰아세운다.

팔·다리가 하나뿐인 반쪽이

반쪽이와 우투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말 그대로 몸 자체가 그냥 반쪽밖에 없는 인물들이다. 반쪽이는 세로로 반쪽이라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 우투리는 가로로 반쪽이라 아랫도리 없이 윗도리만 있다. 세로 반쪽이는 실제로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 가로 반쪽이는 의외로 자주 보아 왔다.

2001년에 『오체불만족』이란 책으로 스타가 된 오토다케 히로타다나, 2010년 닉 부이치치의 『허그 : 한계를 껴안다』는 선천성 사지결손(혹은 사지절단증)의 사례다. 하체 없이 태어나 스포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카니아 세서가 우투리의 모습과 좀 더 흡사할 것이다. 강연과 발송 활동을 하며 기대를 받았던 오토다케 히로타다. 결혼 후 불륜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지가 없는 모습이지만 강연과 발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기대를 받았던 오토다케 히로타다.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왼쪽)을 썼다. 결혼 후 불륜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지 없는 인생’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희망 전도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닉 부이치치. '허그'라는 책(오른쪽)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알라딘 홈페이지]

사지가 없는 모습이지만 강연과 발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기대를 받았던 오토다케 히로타다.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왼쪽)을 썼다. 결혼 후 불륜설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사지 없는 인생’이라는 재단을 설립하고 희망 전도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닉 부이치치. '허그'라는 책(오른쪽)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 알라딘 홈페이지]

반쪽이와 우투리는 둘 다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났지만, 서사는 완전히 달랐다. 둘 다 자식을 간절히 원한 부모가 치성을 드려 낳았다. 반쪽이의 부모는 꿈에 나타난 하얀 노인이 준 물고기를 먹고 반쪽만 남겨 놓았다. 우투리는 태어날 때 가위와 낫, 작두로도 잘리지 않던 탯줄이 억새로 자르니까 잘렸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에 지리산 산신이 점지해 태어난 아이가 우투리라는 내용을 더하기도 한다. 탄생 과정의 신이함은 이들이 보통 인물은 아님을 드러낸다.

반쪽이는 두 형이 있었는데, 이들은 몸이 반밖에 없는 동생을 무척 경멸하고 따돌렸다. 형들이 과거 보러 길을 떠나는데 반쪽이가 따라나서니까 큰 바위나 나무에 묶어 놓기도 하고, 나중엔 칡으로 묶어 호랑이 앞에 버려두기도 했다. 그때마다 반쪽이는 천하장사 같은 힘으로 바위와 나무를 번쩍 들어 올리고 뽑아버렸다. 호랑이와는 칡 끊기 내기를 하여 이긴 덕분에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얻었다.

그 가죽을 가지고 길을 가다 어느 집에 묵었는데 가죽을 탐낸 주인이 자신의 딸을 걸고 장기 내기를 두었다. 물론 반쪽이가 이겼고, 자기 딸을 빼앗기게 생긴 주인이 딸을 숨겨두고 사람들을 시켜 지키게 했지만 반쪽이는 이마저 해결하고 딸을 업고 가서 잘살았다.

카니아 세서(kanya sesser)의 인스타그램. 카니아 세서는 하체가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스포츠 모델로 활동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카니아 세서(kanya sesser)의 인스타그램. 카니아 세서는 하체가 없는 한계를 극복하고 스포츠 모델로 활동한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몸이 반밖에 없는 반쪽이는 모자란 존재로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반쪽이가 그 누구보다 힘이 센 사람이었다는 것, 위기에 처했을 때 전혀 겁내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갔다는 것, 기지를 발휘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줄도 알았다는 것에서 반쪽이에 대한 기대의 시선을 읽어낼 수 있다.

우투리는 아랫도리가 없이 태어난 데다가 겨드랑이에 얼레빗만 한 날개가 돋아 있었다.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아기가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걸 보고 우투리의 부모는 아이를 그냥 두면 큰일 나겠다 싶어 기름틀에 넣고 호박돌로 눌러 죽이려 했다. 그래도 아이는 금방 죽지 않았다. 나락 세 섬을 올리자 자신을 죽이려거든 날개를 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왕이 될 준비를 하던 이성계가 방방곡곡에 산제를 올리며 힘을 얻고자 했다. 그런데 지리산 산신만이 우투리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이성계의 등극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는 우투리를 찾아가 죽인다. 이때 우투리는 때가 되어 군사를 이끌고 용마를 타고 막 세상으로 나아가려던 참이었다. 그 뒤 왕이 된 이성계는 지리산 산신을 전라도로 귀양 보냈다.

반쪽이처럼 몸이 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났지만 우투리는 경멸보다 경계의 대상이었다. 반쪽이에게는 몸이 반밖에 안 되어도 힘도 세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우투리에게는 몸이 반밖에 안 되고 날개도 날린 이상한 아이인 데다가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경계가 깔렸다. 온전하지 못한 신체에 기대와 경계의 관념이 동시에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순적인 존재가 된다.

우투리와 반쪽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다. 우투리의 부모는 세 섬(곡식 따위를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 사진 상단 왼쪽)의 나락('벼'의 방언)으로 자식을 죽이려 했다. 반쪽이는 형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형들은 그들을 쫓아오는 반쪽이를 바위에 묶기도 하고, 칡으로 묶어 호랑이 앞에 버리기도 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pixabay]

우투리와 반쪽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억압을 받았다. 우투리의 부모는 세 섬(곡식 따위를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그릇, 사진 상단 왼쪽)의 나락('벼'의 방언)으로 자식을 죽이려 했다. 반쪽이는 형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형들은 그들을 쫓아오는 반쪽이를 바위에 묶기도 하고, 칡으로 묶어 호랑이 앞에 버리기도 했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pixabay]

기성세대가 보기에 아래 세대는 뭔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패기도 없어 보이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른 채 방황하는 것만 같고, 하고 다니는 꼴도 요상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은 현란하고 시끄럽기만 하고 아무 뜻도 담지 못한 것 같다. 책보다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유아적인 이기성에 머물러 있는 존재이기만 하다.

그러면서 취직하기 힘들다고 징징댄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런 이들에게 그냥 나라에서 돈을 준다고도 하니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그저 제대로 훈육해 바른길로 이끌어야 하는 미숙하기만 한 존재다. 그래서 그 모자란 부분을 얼른 채워 이 사회를 위해 충실하게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온전한 인간이 되길 바라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마구 들이민다.

부조리 엎을 영웅에 대한 민중의 기대

그러나 반쪽이는 몸은 그래 보여도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다 하는 아이였다. 우투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보이는 모진 생명력은 그런 영웅이 언젠가는 반드시 이 세상에 나타나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어엎어 주기를 바라는 민중의 기대가 담겨 있다. 반쪽이에게는 '모자라 보이지만 분명 자기만의 힘이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우투리의 너무 이상해서 두려움까지 불러일으키는 모습엔 '우리를 구원해 줄 만큼 신성하기까지 한 힘을 보여주는 걸 거야'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기대보다 경계가 너무 컸고, 세상의 견고한 권위는 우투리를 강하게 억압했다. 날개를 꺾고 쌀가마니로 눌러 죽인 것이다. 우리는 경계와 억압보다 기대와 희망을 안고, 얼레빗만 했던 우리 아이들의 날개가 더욱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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