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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현충일 추념사 논란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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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문재인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의 김원봉 언급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광복군에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고, 통합된 광복군이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는 언급 때문이다. 보수 야당 쪽에서는 어떻게 6·25 전몰자를 기리는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 정권 수립 공로자이자 전쟁 가해자인 인물을 우리 국군의 뿌리인 양 떠받들 수 있느냐며 비판한다. 청와대·여당과 진보 쪽의 입장은 다르다. 추념사 내용을 보면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고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로서, 김원봉의 월북 전후 행적을 구분해 공은 공대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고, 국군 창설의 뿌리도 통합된 광복군이라 밝혔다는 것이다.

‘김원봉’ 관련 언급 후속 논란은 #분열적이고 소모적인 이념 투쟁 #정치권은 이제 정책 대안을 두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바람직

논란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보수 쪽 비판의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사회 통합을 위한 대통령의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3·1절이나 광복절도 아닌 현충일 자리에서 문제의 언급은 부적절했다’는 비교적 온건한 비평도 있다. 하지만 이번 추념사가 고도로 기획된 김원봉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를 위한 작전이며,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거나,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흔들고 궁극적으로 주류세력을 교체하고자 던진 계산된 발언이라는 혐의 몰아가기 식 비난도 제기된다. 대통령이 빨갱이라는 막말은 논의할 가치도 없다.

워낙 뜨겁고 분열적인 사안이라 조심스럽지만, 함께 고민해보기 위한 차원에서 주요 논란에 대한 필자의 단상(斷想)을 나눠보고자 한다. 우선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역사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번 추념사가 ‘김원봉 서훈 작전’인가에 대한 논란도 그만 접었으면 한다. 이미 ‘서훈은 불가능하고 국가보훈처의 관련 심사 기준을 바꿀 계획이 없다’는 청와대의 공식 발표가 있기도 했으니, 더는 논란을 증폭시키거나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지 말았으면 한다. 가령 김원봉을 첫 단추로 공산주의계 인사들을 줄줄이 서훈하려 한다는 식의 보수 일부의 선동적인 주장은 지양해야 바람직하다.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논란에 대하여, 우선 이번 대통령 추념사가 사회 통합을 바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이념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다. 단적으로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로 온 나라가 이번처럼 시끄러운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온전히 대통령의 책임인가, 아니면 보수 쪽의 대응이 더 문제인가? 아마 여론 조사를 해보면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답이 갈릴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알앤써치의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9%는 ‘공감한다’고 답변했으나 부정적 여론도 42.9%로 나왔다. 특히 보수층의 77.9%, 중도보수층의 60.3%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고 답했고, 중도진보층의 81.5%, 진보층의 72.3%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결국, ‘누구 잘못이냐’는 이념에 따라 답이 갈리는 무의미한 논란이다.

더 근본적인 논란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우리의 국가 정체성을 훼손하고 주류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인가 여부다. 이 또한 근본적으로 사실관계를 검증할 수 없는 이념적인 논란이다. 우선 추념사 내용을 한번 보자. 2019년 추념사의 핵심 메시지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습니다”이다. 2018년 추념사에서는 “일제 치하,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친 것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간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에 나선 것도, 모두 평범한 우리의 이웃, 보통의 국민들이었습니다”라고 천명한다. 한마디로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넘어 애국하는 모든 이들을 받드는 게 보훈이라는 의미다.

보훈을 통하여 사회 통합을 추구하고 평범한 이들의 애국도 중요하다는 주장을 누가 반박할 수 있나. 하지만 보수 쪽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확장된 보훈 개념 아래 ‘좌우 통합’과 ‘평범함의 위대함’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을 흔들고 보수 세력을 교체하고자 하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고 의심한다. 이 또한 이념적 확신에 근거한 터, 검증하거나 반박하기가 힘들다.

결국, 대통령 추념사 논란은 누가 옳고 무엇을 믿느냐를 두고 싸우는 이념 논쟁, 막스 베버가 말한 ‘신념윤리’의 정치다. 그러나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따르면 정치가는 선과 악을 둘러싼 ‘신념윤리’뿐 아니라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갖춰야 한다, 이제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관두고 민생을 책임지는 정치를 하자는 얘기다. 마침 자유한국당이 ‘경제대전환위원회’를 출범했다 하니 조속히 국회로 돌아와 실질적인 정책 대안을 두고 논쟁하는 정치권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기 바란다.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