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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대훈의 직격인터뷰

“보훈이 정권 이념·성향에 따라 정치화하면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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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고대훈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1국장

김원봉 서훈 논란을 보는 ‘보훈 전문가’ 목진휴 국민대 명예교수

김원봉(1898~1958)이 또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그의 공적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 촉발됐다. 문 대통령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했다.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하라는 ‘지시’로 해석됐다. 이후 거센 비판이 일자 청와대는 일단 후퇴했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 및 적극 동조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정부 수립 이후 반국가 활동을 한 경우에는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제외된다”며 진화했다. 그러나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등은 오는 8~11월 ‘김원봉 서훈 대국민 서명운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 문 대통령이 2015년 영화 ‘암살’를 보고 “김원봉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는 아니다.

문 대통령, 김원봉 독립운동 인정 #사회주의 독립운동 평가 좋지만 #대한민국을 부정한 인물은 곤란 #‘보훈의 정치화’ 탈피해야 할 때

“보훈(報勳)이란 국가의 존재를 위해 희생한 분을 위한 보답 행위다.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목진휴(67) 국민대 사회과학대학 명예교수는 2006년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처 2017년 말 문재인 정부까지 10여년간 국가보훈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한 보훈 전문가다. 국가보훈위원회는 보훈정책의 방향과 전략, 시책을 자문하고 심의하는 정부 기구다. 김원봉처럼 일제 하의 사회·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보훈 대상 여부도 이 기구의 주요 관심사다. 지난 11일 중앙일보에서 김원봉 서훈 논란에 대해 들었다.

목진휴 교수는 11일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했다는 이유로 김원봉에게 건국훈장을 준다면 정부가 상훈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목진휴 교수는 11일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했다는 이유로 김원봉에게 건국훈장을 준다면 정부가 상훈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대한 논의는 언제 시작됐나.
“노무현 정부 때다. 사회주의적 사고를 가졌어도 독립운동을 했다면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가 처음 나왔다. 그 이전까지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인물 대부분은 민족주의 계열이었으나, 노무현 정부는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했다. 2005년 3·1절에 몽양 여운형에게, 그해 60주년 광복절에는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에게 각각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서훈이 본격화됐다.”
보수정권에서도 사회주의자 서훈이 이어졌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두 정부는 호국과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선양사업에 집중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6·25 전쟁 60주년 행사에 역점을 뒀다. 박근혜 정부 때는 박승춘 보훈처장이 주도한 ‘나라사랑 교육’이 핵심이었다. 안보교육이었는데 ‘극우 우편향’이라며 야당(현 민주당)이 죽기 살기로 반대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불허해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박승춘은 ‘적폐청산 1호 경질인사’가 됐고, ‘나라사랑 교육’ 담당 부서도 폐지됐다.”
보훈이 이념과 뒤섞여 있다.
“보훈도 체제 유지의 수단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만 보훈을 하는 게 아니라 공산주의 국가도 보훈을 한다. 체제 유지와 수호를 위해 죽은 사람들을 보훈하는 건 당연하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우익적 체제(자유민주주의)를 갖고 있으면서 좌익적 독립운동가까지 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 굉장한 포용정신이다. 그러나 남북으로 나눠서 이념적 대결을 하는 한 쉽지 않을 거다. 그래서 김원봉 문제는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

경남 밀양 출신인 김원봉은 20살이던 1918년 만주로 건너간 뒤 45년 해방 때까지 27년간 중국 대륙을 누비며 독립투쟁에 헌신했다.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해 무장항쟁에 나섰고,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부사령 등 화려한 경력을 거친 ‘가장 뛰어난 조선인 테러리스트’로 평가된다. 해방 후 남한으로 귀국해 ‘인민공화당’ 대표 등을 지내며 좌익 정치활동을 벌이다 48년 4월 자진 월북했다. 이후 김일성 정권 수립에 참여해 초대 내각의 검열상(장관)을 지냈고, ‘조국 해방 전쟁(6·25) 공훈’으로 훈장까지 받았으나 58년 숙청됐다.

김원봉을 조소앙에 비교하며 서훈 정당성을 주장한다.
“북한에서 높은 자리를 맡았던 조소앙(1887~1958)에게 1989년 건국훈장을 줬다. 김원봉도 북한에서 고위직을 했지만 독립운동을 했으니 왜 안 주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소앙은 남한을 괴멸시키는 6·25전쟁에 앞장서진 않았다. 김원봉은 6·25전쟁의 핵심인물로 노동상(전쟁 인력 동원 담당)이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훈장을 주겠나.”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주창한 조소앙은 광복 후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하다 6·25전쟁 중 납북됐다. 1956년 7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최고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사망 후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됐다.

김원봉의 해방 전 독립운동만 보고 대한민국 수립에 공이 있다고 한다.
“상훈법 11조에 보면,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며…’라고 나온다. 그 시기를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1948년부터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 시점을 국가의 출발로 봐야 한다. 그 전에 모여서 한 행동은 국가를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순 있어도 국가라고 볼 순 없다. 역사가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탄생에 임시정부가 도움을 준 것은 틀림없지만,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의 시작이라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한다. 법을 바꾸지 않고 서훈한다면 위법이다.”
대통령은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정부 훈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나 현재 운영에 있어 현격한 기여를 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한 인물에게 훈장을 주자는 행위는 대한민국과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김원봉은 6·25 전쟁의 핵심 멤버로 전범이고, 우리 입장에서 반역을 저질렀다.”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논리는.
“1946년 국방경비대를 별도로 창설하지 않았다면 국군은 없었을 거다. 설령 국방경비대에 광복군과 의열단 출신들이 몇 명 있었다 해도 그 사람들이 뿌리라고 할 순 없다. 화랑정신을 따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화랑대라고 하지만, 화랑이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문재인 정부의 보훈 노선이 노무현 정부와 다른 점은.
“노무현 정부는 독립운동에 사회주의만 포함시켰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사회주의+북한’까지 갔다. 북한 정권 수립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 유지 및 확장까지 기여한 사람에게는 서훈할 수 없다. 대한민국을 부정했던 것이다. 똑같이, 북한의 존재에 위협을 줬던 사람에게 북한이 훈장을 주겠는가. 예컨대, 북한이 주체사상을 정립한 공로로 황장엽(1923~2010)에게 지금 시점에 훈장을 주겠는가. 남으로 와서(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 북한을 비판하며 체제를 위협했기 때문에 안 될 것이다.”
‘보훈의 정치화’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보훈이 매우 특이하다. 독립-민주화-6·25와 월남 전쟁 등 크게 3가지 영역의 유공자가 있다. 우익과 좌익이 같이 독립운동을 했지만 북은 공산주의로 갔고 남은 자유민주주의로 간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남북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반대쪽까지 인정해줄 수 없었다. 거기에 이념 대결의 연장선에서 6·25가 터지면서 사회주의 독립운동은 대한민국 보훈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보훈 대상자와 선양사업에 이념과 정치가 개입하는 보훈의 정치성이 나타난다. 정권의 이념 성향에 따라 독립운동 평가가 달라지면 안된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김원봉을 통한 주류 세력 교체와 국가 정체성의 재정립 작업”이라고 비판한다. 보훈의 정치성을 탈피할 방법은.
“미국은 보훈 대상자가 전부 군인이다. 미국 보훈처(Department of Veteran’s Affair)의 모토는 링컨 대통령의 2기 취임사에 나온 ‘(남북)전쟁의 부상자들과 전사자들의 미망인과 남겨진 자식들을 돌본다’다. 우리도 미국처럼 국가를 위해 전쟁이나 전투, 국가 수호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좋겠다. 꼭 군인이 아니라도 국가와 사회 수호하는 방향 말이다.” 

◆목진휴 명예교수

2006년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4개 정부에서 국가보훈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국민대 행정대학원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지냈다. KBS 1라디오의 ‘라디오 중심’ 등 여러 방송도 진행했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 학사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 정책학 석·박사, 웨스트버지니아대학 행정대학원 조교수를 거쳤다.

고대훈 수석 논설위원

※ 박규민 중앙일보 인턴기자가 이 기사의 취재와 작성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