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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사측 요구 다 들어줬다···노조원이 바꾼 강성노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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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백기 들고 투항한 르노삼성 노조

12일 오후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부산 = 송봉근 기자.

12일 오후 부산 강서구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부산 = 송봉근 기자.

르노삼성차 역사상 최초의 전면파업을 선언했던 르노삼성차 기업노동조합(르노삼성차 노조)이 재협상 테이블에 앉은지 3시간 만에 사측과 합의했다. 르노삼성차 노사는 12일 “2018년 임금및단체협약(임단협) 재협상에서 노사가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는 전면파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12일 부산공장 주간조 근무자의 31.0%는 실제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12일 오후 3시 40분이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이날 쟁의지침을 통해 “고용노동청의 적극적인 교섭권유로 오후 3시30분부터 전면파업을 철회하고 교섭에 임한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차 노조, 전면파업 철회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자 르노삼성차 사측은 즉시 협상 테이블을 다시 열었다. 12일 오후 6시부터 임단협 협상에 돌입한 르노삼성차 노사는 같은 날 9시 두 번째 잠정합의에 다다랐다. 전면파업을 선언하며 강경한 태세를 이어가던 르노삼성차 노조가 파업철회→즉시협상→잠정합의까지 모든 과정을 불과 6시간 만에 속전속결 처리한 것이다.

궁지 몰린 노조, 불과 6시간 만에 돌변 

이처럼 신속하게 잠정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결국 르노삼성차 노조가 ‘백기를 들고 투항한 결과’라는 평가다. 지난달 21일 노조원 대상 찬반투표에서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하자,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는 지명파업·전면파업이라는 강수를 뒀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반발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실제로 12일 오후 2시 기준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은 목표생산대수(450대)의 26.9%(121대)를 생산했다. 생산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여전히 파업 기간에 완성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르노삼성차는 12일 공장을 부분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노조가 파업 철회를 선언하면서 취소했다. 부산 = 송봉근 기자.

르노삼성차는 12일 공장을 부분 폐쇄할 예정이었지만 노조가 파업 철회를 선언하면서 취소했다. 부산 = 송봉근 기자.

이재교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파업으로 공장을 멈춰세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노조도 파업의 동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도 “노조원이 집행부에 반기를 들었고 일부 노조원이 탄핵론까지 거론하자, 궁지에 몰린 집행부가 당황해서 굴복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노조원 입장에서 2차 잠정합의안은 1차 잠정합의안과 내용의 거의 비슷하다. 이번 잠정합의안에서 르노삼성차 노사는 기본급 유지 보상금 100만원을 지급하고 중식대 보조금도 3만5000원 인상하기로 했다. 성과급은 총 976만원과 통상임금의 50%를 지급한다. 이익배분제(PS)에 따라 1인당 426만원을 지급하고 생산성격려금(PI·통상임금의 50%)을 지급하는 등 1인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러한 현금성 보상은 1차 잠정합의안과 사실상 완전히 동일하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실장은 “통상 노조원들이 투표를 통해 잠정합의안을 부결하면, 노조 집행부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차기 잠정합의안을 단돈 10만원이라도 인상해서 임금을 보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1차 잠정합의안과 2차 잠정합의안 내용이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는 건, 르노삼성차 노조가 그 정도 요구를 관철시키지도 못할 만큼 급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임금 추가 인상은커녕, 사측 요구 추가 수용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전편파업을 선언하고 플래카드를 통해 사측을 비판했다. [사진 르노삼성차 노조]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전편파업을 선언하고 플래카드를 통해 사측을 비판했다. [사진 르노삼성차 노조]

르노삼성차 노조원들이 집행부의 파업까지 막아선 건 무려 1년 가까이 이어진 줄다리기에서 다수의 조합원이 피로감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또 이번 임단협에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의 명운이 달려있다. 프랑스 본사가 검토하고 있는 물량 배정에서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신차를 받아와야 한다. 2020년에 출시 예정인 크로스오버차량(CUV) XM3 수출 물량 확보가 관건이다. 당장 오는 9월 닛산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 로그의 위탁생산이 종료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로그 생산량(10만7245대)은 르노삼성 부산공장 총생산(22만7577대)의 절반(47.1%)을 차지한다. 후속 물량 배정을 못 받으면 부산공장 절반이 가동을 멈출 수 있다는 뜻이다. 로그 후속 물량이 모두 빠진다고 가정할 경우, 이론적으로 부산공장은 약 900명의 인력 감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르노삼성차 협력업체 직원들이 르노삼성차량에 들어가는 자동차용 시트를 조립하고 있다.[중앙포토]

르노삼성차 협력업체 직원들이 르노삼성차량에 들어가는 자동차용 시트를 조립하고 있다.[중앙포토]

여기에 부산 지역경제와 르노삼성 사원대표위원회가 잇달아 전면파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공식발표한 것도 노조 입장에서는 부담이었다. 르노삼성차 노조가 부분파업에 돌입한 이후 협력사에 발생한 손실은 1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르노삼성차 노조는 사측이 요구하던 ‘노사 상생 공동 선언문’까지 채택하기로 했다. 노사 상생 공동 선언문은 노사 관계가 지역 경제와 협력업체 고용 안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신차 출시·판매를 위한 생산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가 평화기간을 선언하는 내용이 담겼다. 애초 르노삼성차 노조가 전면파업 명분으로 삼았던 내용이다. 창사 19년만에 처음으로 전면파업까지 돌입했던 르노삼성차 노조가 얻은 것 없이 오히려 사측 요구안만 하나 더 떠앉은 것이다. 르노삼성차 노조 집행부가 사측에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공장의 현장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 중인 르노삼성차 노사. [사진 르노삼성차]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공장의 현장 책임자들과 간담회를 진행 중인 르노삼성차 노사. [사진 르노삼성차]

한편 르노삼성차 노조원은 14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2차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 돌입한다. 이날 노조원 과반이 잠정합의안에 찬성하면 르노삼성차의 2018년 임단협은 최종 타결된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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