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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김대중·이희호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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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

제목을 보고 갸웃했을 수 있겠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부부와 60년 동고동락한 동교동계 한화갑 전 의원이 그제 이희호 여사의 빈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 여사의) YWCA 선배들이 눈물 흘리며 ‘소중한 인생을 그런 초라한 사람한테 바치려 하느냐’며 (DJ와의 결혼을) 말렸지만 이 여사가 ‘그분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분이다. 내가 그분 곁에 있어야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했었다”며 “김 대통령의 탄생은 이 여사의 내조와 동지애의 결실”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공동 정부라고까지 한 연유였다. 헌사(獻辭)다. 하지만 일정 부분 진실도 담겼다.

사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의 부인은 일종의 ‘제도’다. 자신이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인물이다. 경우에 따라선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센 사람으로 여겨진다. 대통령으로의 상승, 대통령의 결정·정책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사적이다. ‘어떻다더라’는 전언과 함께 힘의 강도가 관찰될 뿐이다.

공개적 자리에선 하지만 비정치적으로 보여야 한다. 일종의 가장(假裝)이다. 병원 부원장까지 지낸 변호사 미셸 오바마는 평생 처음으로 텃밭이란 걸 가꾸었는데 백악관에서였다. 대중도 대통령의 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느냐보다 무엇을 입었느냐에 더 관심을 보이곤 한다.

유권자가 뽑은 건 대통령이지 그 배우자가 아니란 당위와, 허업(虛業)인 정치에서 결국 믿을 건 가족 특히 배우자란  현실 사이의 간격이다. 둘 사이의 줄타기는 대통령의 부인들에겐 숙명적 기예다. 자칫 선을 넘었다 치면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다. 걸출한 사회 운동가였던 이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론 부당하다고 느꼈고, 때론 자책했다. 이 여사에 앞선 이들도 다르지 않았고, 뒤따르는 이들도 다르지 않을 거다. 이 여사를 보내며 든 생각이다.

고정애 탐사보도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