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진국의 퍼스펙티브

화살머리고지의 비극과 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민간인에 열린 DMZ

한반도의 배꼽은 철원이다. 궁예는 풍수를 따져 이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풍수장이들은 이곳의 지세(地勢)가 굉장히 세다고 한다. 궁예의 결정도 풍수를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왕건에게 쫓겨났다. 6·25 때는 이곳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앞으로는 어떤 역사가 펼쳐질 것인가.

남북 공동 유해 발굴 합의했으나 #하노이 결렬 이후 응답 없어 #국가에 헌신한 분 찾는 게 책무 #유사시 철통 방어 태세도 갖춰

남북을 잇는 길이 이곳에 열렸다. 판문점과 고성에 이어 세 번째 길이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에서 송영무 국방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4·27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때 약속한 일이다.

지난 연말 길은 다 닦았다. 그런데 아직 넘을 수 없는 길이다. 남북 공동유해발굴 TF 팀장인 문병욱 대령은 ‘남북 군인들이 서로 넘어가 만나느냐’고 묻자 터무니없는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접촉도 없다고 했다. 남쪽 사단장이 우연히 마주친 북쪽의 상좌(중령급)와 악수한 게 유일하다고 했다.

6월부터는 정부가 이 현장을 민간인에게 공개했다. 비무장지대(DMZ)를 민간인에게 처음 열어 보이는 것이다. 인터넷 두루누비(durunubi.kr)에 신청하면 추첨을 통해 하루 40명씩 방문을 허가한다. 그 역사의 현장이 보고 싶어 지난 4일 아침 일찍 나섰다.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철원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철원군 대마리 두루미 평화 공원에서 차량을 바꿔탔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소형 전투차량은 작은 창만 있는 방탄차량이다. 전투차량에 오르자 분단의 현장이라는 긴장감이 확 밀려왔다.

조그만 창으로 보이는 들판은 여느 시골 풍경과 다르지 않다. 민통선 안이지만 간혹 보이는 농민들에게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분단이 이미 습관이 된 모양이다. 민통선 안쪽 길옆이 온통 논이다. 넓은 평야가 철조망에 갇힌 것이다. 모내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어린 모가 가지런히 줄을 서서 바람에 살랑인다.

어느 달이고 역사의 기복이 넘치지 않는 달이 있을까마는 6월은 특히 큰 곡절을 겪었다. 지난주 현충일이 있었다. 69년 전 6·25의 비극이 있었던 달이다. 지금의 이 87년 체제를 만든 6월 항쟁이 있었고, 2000년에는 분단 이후 첫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다.

전쟁이 있었고,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 있었다. 철원은 그러한 비극과 평화로의 희망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땅이다. 6·25 때 가장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철의 삼각지대다. 백마고지에서는 중국군 1만4000여명과 국군 3500여명이 전사했다. 미군과 국군이 22만여발, 중국군이 5만여발의 포탄을 쏟아부었다. 나무는커녕 들풀마저 자취를 감추고,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바위는 깨지고, 산의 키가 줄어들어 밋밋해졌다. 백마고지란 이름이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판문점 선언은 이름만 남았다. 북·미 회담이 중단되면서 모든 게 얼어붙었다. 그런데도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이곳이다. 남북 도로가 이어지고, 유해발굴도 하고 있다.

방탄복 입고 비무장지대로

지난 4일 철원의 남북 연결도로 개통 기념비를 찾은 관훈클럽 회원 기자들. 도로는 지난 연말 연결됐으나 아직 왕래가 없다. [사진 국방부]

지난 4일 철원의 남북 연결도로 개통 기념비를 찾은 관훈클럽 회원 기자들. 도로는 지난 연말 연결됐으나 아직 왕래가 없다. [사진 국방부]

장갑차량이 철조망 앞에 섰다. 동서로 끝이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뻗어 있다. 통문(通門) 절차를 밟으며 처음으로 화약 냄새를 느꼈다. 휴대폰을 맡겼다.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방탄복을 입으니 어깨가 무겁다. 20㎏이라고 한다. 철모를 썼다. 플라스틱 헬멧에 철모를 덧대 쓰던 것보다 방탄효과는 더 좋단다. 유해 발굴과정에 총알이 관통한 철모가 나왔다. 그렇지만 새 플라스틱 방탄모는 더 가볍지만 총알이 뚫지 못한다고 한다.

문이 열리고 남방한계선(SLL) 안으로 들어섰다. 남방한계선 철조망에서 500m 정도는 나무가 없는 개활지가 펼쳐져 있다. 감시초소로 가는 길이 잘 포장돼 있다. 도로가를 따라 주렁주렁한 빨간색 지뢰지대 표지가 DMZ임을 말하고 있다.

화살머리고지 감시초소(GP)에서 보니 전방에 지뢰를 제거하는 우리 병사와 유해 발굴을 하는 병사들이 보인다. 북쪽 병사는 보이지 않는다. 북쪽 GP가 맨눈으로도 잘 보인다.

23발의 총알이 뚫고 간 수통…

동쪽으로 공작새 능선, 그 뒤로 백마고지가 보인다. 화살머리고지는 능선이 화살 머리를 닮아 6·25 때 미군들이 붙인 이름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휴전협상이 시작됐다. 협상 막바지까지 점령지를 넓히려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특히 백마고지는 주변 평야 지역을 장악하는 요충지라 수십번 뺏고 뺏겼다.

백마고지가 교착되자 중국군은 서쪽으로 3㎞쯤 떨어진 화살머리고지를 공략했다. 이 바람에 51년 11월 국군 9사단, 52년 6월 미군 2사단, 52년 10월 프랑스 대대, 53년 6월 국군 2사단이 중국군을 맞아 싸웠다. 이때 국군 200여명, 미군·프랑스군 300여명, 중국군 3000여명이 숨졌다. 이곳을 공동유해발굴 시범지역으로 정한 이유다.

GP에는 태극기와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GP 옆에는 프랑스군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GP 안에는 조그만 전시실이 있었다. 탄피, 인식표, 철모, 야전삽, M1 소총, 계급장, 군화 밑창, 반합, 수통…. 수통에는 23발의 총흔이 있다. 얼마나 많은 총탄이 쏟아졌는지 짐작이 간다.

화살머리고지 GP는 비상주 GP다. 전시실 작전도에 북측 GP가 훨씬 촘촘하다. 9·19 합의로 GP를 철수하기로 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문 대령은 “여러 가지 현대 기술을 이용해 구석구석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상주 감시 병력보다 기술력과 기동조로 그 이상의 감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진 유골

GP에서 전투차량으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유해발굴 현장이 나왔다. 지뢰 제거를 마친 곳은 노란 줄, 유해발굴 작업장은 빨간 줄을 쳐놨다.

능선 위에 한 평 남짓한 구덩이에 사람의 모습이 뚜렷한 유해가 드러나 있다. 허벅지를 한쪽으로 누이고, 왼쪽 바닥에서 수류탄 안전핀이 나왔다고 한다. 앞에 있는 M1 소총에는 총알이 장전된 채로 쇠 부분만 남았다. 두개골을 감싼 철모는 총알이 관통했다. 발굴팀장은 언덕 아래 적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직후 관통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선배님들을 반드시 조국의 품으로 모셔오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현충일 추념사에서 “9·19 군사합의 이후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를 시작으로 유해 67구와 3만여 점의 유품을 발굴했다”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마지막 한 분까지 찾는 것이 국가의 마땅한 책무”라고 말했다.

평화, 대답 없는 북한

유해가 수류탄을 던진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군사분계선(MDL)을 향해 도로가 뚫려 있다. 포장 대신 자갈을 깔아놨다. 한반도 모양의 큰 화강암 비석에 ‘평화 새로운 미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도로 개설 기념비다.

9·19 합의에 따라 지난해 10월까지 지뢰를 제거했다. 우리는 지뢰제거 차량과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를 투입해 1.7㎞의 길을 38일 만에 길을 닦았다. 그러나 사병들의 손으로 1.3㎞의 길을 닦는 북한 측 공사는 훨씬 오래 걸렸다. 300여m 앞 역곡천 앞에 작업 차량이 보인다. 거기가 경계다.

지난 2월까지 남북 공동유해발굴단 명단을 교환하기로 했다. 우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북쪽에서 반응이 없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모든 게 중단됐다. 철원에서 할 일은 공동 유해발굴뿐 아니다. 백마고지 동쪽에 있는 궁예 성터도 공동 복원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6·25 유공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하필 6·25 전사자들이 묻힌 현충원에서…. 공동유해발굴 TF 팀장 문병욱 대령은 “공동 유해발굴을 추진하면서도 유사시에는 철통방어할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대답 없는 북한, 안보에 대한 국민의 걱정까지 충분히 알고 있다는 든든한 결의로 들렸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