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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선고 받은 DJ 앞에서 "하나님 뜻대로" 기도한 이희호 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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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 19일 일산자택을 나서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집밖에서 기다리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997년 12월 19일 일산자택을 나서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집밖에서 기다리던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가 이날 오후 11시 37분 소천했다”고 밝혔다.

1922년 태어난 이 여사는 1세대 여성운동가였다. 이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한 뒤 미국 램버스대를 거쳐 스카렛대를 졸업했다.

젊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중앙포토]

젊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중앙포토]

서울대 사범대 재학시절 그의 별명은 독일어 중성 관사인 '다스'(das)였다. 당시 기준으로 따졌을 때 이 여사의 행동만 봐서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여사가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나선 것은 1951년이었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전쟁이라는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선 ‘대한여자청년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 그는 전쟁에 희생된 군인과 경찰의 유가족을 돕는 일을 주로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중앙포토]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던 1952년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을 창립한 뒤 남녀차별 문제에 본격적으로 천착하기 시작했다. 1954년부터 58년까지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1959년 귀국해선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았다.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사회 운동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1962년 고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부터는 정치적 동지로서 격변의 현대사를 함께했다. 1980년엔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자 이 여사는 해외 저명한 인사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등 구명운동을 벌였다. 이때 남편과 가족에게 보낸 편지는 책으로 출간됐다.

1993년 8월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1993년 8월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이희호 여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이 여사가 2년 6개월여에 이르는 김 전 대통령의 수감 기간 중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책만 600권에 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 여사가) 면회 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내 남편 살려주세요’하고 기도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하더라”며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줄 수도 있을 텐데 왜 저런 식으로 기도하나, 밖에 나가면 단단히 해주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다”며 회고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여사의 사랑은 다른 이들과 다른 방식이었다고 기억했다.

이 여사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대통령 부인으로 활동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영광의 순간에도 함께였다.

2000년 12월 11일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숙소인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오슬로시민들에게 손을 맞잡고 답례인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2000년 12월 11일 김대중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숙소인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오슬로시민들에게 손을 맞잡고 답례인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여사의 분향소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조문은 11일 오후 2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6시 세브란스장례식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여사의 장례예배는 오는 14일 오전 7시 신촌 창천교회에서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 이 여사의 소천 소식에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며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라고 추모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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