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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CCTV 못 믿어, 엄마는 아이 몸에 ‘녹음배지’ 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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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의심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정적 증거인 CCTV 영상을 두고 학부모와 어린이집 측의 쟁탈전이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아이의 몸에 녹음기를 달아 등원시키는 학부모들도 생기고 있다. CCTV 확보가 어려우니 처벌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증거를 잡겠다는 취지다.

2년 새 2배 증가한 어린이집 학대 #“어린이집, CCTV 증거인멸 우려” #통신법 위반 감수하고 자구책 #“학부모, CCTV 즉시열람” 주장에 #“다른 아동·교사 초상권 침해” 반론

“CCTV 확보 힘드니” 아이 가슴에 ‘녹음기’달까 고민도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주부 K씨는 최근 지인의 자녀가 다니는 서울의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K씨는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위한 배지형 녹음기 구입을 고민 중이다. K씨는 “무턱대고 어린이집에 CCTV를 보자고 요청했다가 어린이집에서 영상을 삭제하거나 훼손해버리면 증거인멸의 기회만 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아동학대 감시용 배지 녹음기. [온라인 쇼핑몰 캡처]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아동학대 감시용 배지 녹음기. [온라인 쇼핑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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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녹음기 사용을 고민하는 것은 부모가 녹음기로 몰래 확보한 음성자료를 법원이 아동학대의 증거로 인정하면서부터다. 지난 2017년 9월 대구의 한 아이돌보미가 아동에게 욕설을 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피해아동의 모친이 녹음기를 설치해 학대 상황을 녹음한 것이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보호하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판단해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이에 따라 아이돌보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아이돌보미가 아동을 상대로 하는 말은 타인 간 대화로 보기 어렵다”며 녹음자료를 학대의 증거로 인정하고 해당 아이돌보미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섣불리 녹음기를 사용하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조기현(법무법인 대한중앙) 변호사는 “증거를 인정하는 것과 위법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영아에게 위협적인 말을 하는 보육교사의 발언이 녹음됐다면, 이는 학대 정황이 담긴 증거 자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녹음기에 보육교사 및 원장의 대화가 담겼다면 이는 제3자의 대화 녹음을 금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증가추세인데 “열람절차는 복잡”   

학부모들이 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녹음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213건이던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의한 아동학대 사례는 ▷2014년 295건 ▷2015년 427건 ▷2016년 587건 ▷2017년 840건으로 늘었다.

어린이집 CCTV 규정

어린이집 CCTV 규정

그러나 부모가 아동학대 의심 상황에서 어린이집 CCTV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은 보호자가 열람요청서나 의사소견서를 어린이집에 제출하면 원장이 10일 이내 열람 가능 여부를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원장이 “CCTV가 고장났다”거나 “운영위원회에서 열람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면 보호자는 경찰을 대동해야만 한다.

학부모에게 즉시열람권을 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부모의 즉시열람권을 제한하는 명분은 보육교사의 개인정보 및 사생활 보호인데 이는 부모가 CCTV 영상 속 정보를 외부에 유출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라며 “일시 열람으로 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전제는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학부모의 열람 요구가 정당하지 않은 경우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부모가 필요 이상의 요구했을 때 제재할 근거가 없다면 정당한 요구와 정당하지 않은 요구를 구분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도 “어린이집 CCTV 영상 속에는 학대 피해 아동의 모습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아동이나 보육 교사의 초상권 및 사생활 침해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CCTV 설치ㆍ관리 외부기관 맡겨야”   

다만 어린이집 CCTV의 설치 및 관리를 어린이집 원장에게만 맡기는 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공 대표는 “외부기관을 설립하거나 위탁을 통해 제3자가 어린이집의 CCTV를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도 “어린이집 CCTV 열람에 대한 학부모와 어린이집 측의 분쟁이 잦은 상황에서 제3자가 개입해 이를 관리하고 중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법”이라며 “어린이집은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만큼 시·군·구청에서 CCTV를 직접 관리하고 분쟁 해결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측에선 반대 입장이다. 곽문혁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모든 어린이집에 대해서 강압적으로 CCTV 열람을 가능하게 하거나 제3의 기관이 CCTV를 관리하게 한다는 건 감시 사회로 가는 것”이라며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도 우려된다"고 반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제3의 기관이 CCTV를 관리한다면 누가 맡을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생길 수 있다"라며 “각계 의견을 듣고 개선 방향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수정 : 2019년 6월 14일
법원 판례에서 거론된 아동학대 가해자는 보육교사가 아닌 아이돌보미로 확인돼 수정했습니다.

이승호·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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